간호과 앞에서 왁자지껄 요란스런 소리가 들린다. 두 주먹으로 간호과 책상을 내리치는지 쿵쿵 소리가 들리더니 영태 할아버지의 흥분한 소리가 건물이 떠나갈 것 같다.
“당신지금 뭐 하는 사람이요? 내가 내 집으로 가겠다는데 왜 나를 안 보내 주는 게요. 나를 감금하고도 멀쩡할 것 같소? 내가 신문 기자 불러서 불법으로 사람감금하고 집에 안 보내주는 이곳 요양원 아주 문을 닫게 만들어 버릴 거야.”
그는 소리를 지르며 간호사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틈만 나면 집에 가겠다고 보채는 그는 요양보호사나 간호사들에게는 골치 아픈 요주의 인물이다.
그는 한때 아내와 함께 요양원에 같이 입소했다가 아내는 집으로 가고 혼자 남은 것에 대한 분노를 간호과에 찾아가서 거세게 항의하곤 했다. 2인실 생활실에서 할머니와 함께 지냈는데, 공동체 생활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생활 수칙을 지키지 못 하고 자기 집으로 착각하고 할머니의 침대에서 함께 자려하는 바람에 부부싸움으로 번져서 가끔 할아버지의 얼굴에 두 줄로 그어진 손톱자국이 나곤했다. 할머니의 불평이 많아지자 아예 부부를 각각 다른 층으로 떨어져서 생활하게 했었다. 견우와 직녀처럼 낮에 한 번씩 만나서 얼굴 보는 애틋한 그리움을 품고 생활 하던 중 할머니의 치매증상이 심해지자 함께 살던 큰 아들이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갔다.
갑자기 할머니가 집으로 가버리자 아들을 불러오라며 간호과에 요청해도 별다른 조치가 없자. 할머니가 있는 집으로 보내 달라고 틈만 나면 간호과에 와서 난리를 쳤다.
“이런 불효막심한 놈, 지는 지 아내하고 같이 살면서 제 어미만 데리고 가고 아비는 요양원에 내팽개쳐서 이산가족을 만들어놓고 오지도 않은 나쁜 놈이야. 내가 쫒아가서 집구석을 때려 부셔 버릴 거야.”
“어르신, 할머니 많이 보고 싶어요.? ”
“그럼요 우리 할머니 키도 크고 얼굴도 아주 예뻐요. 아들놈이 못돼서 이 애비혼자 외롭게 살고 있는데도 얼굴도 안 비쳐서 화가 나서죽겠소”
시간만나면 아들에게 전화 해 달라고 보챈다. 아들전화번호 몰라서 못 한다고 하면 큰 소리가 나온다. 이요양원을 다 때려 부숴버려야겠다며 보행용 워커를 문짝에 내리친다.
“어르신, 이렇게 기물파손하면 경찰에 잡혀가요.”
“내가 이렇게 때려 부셔야 아들이 올게 아니에요. 나도 어쩔 수 없어요. 아들 오게 하는 방법이니까요”
살살 달래서 생활실로 모셔 가서 이야기하면 젊은 시절 지나온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한다.
동네에 키 크고 예쁜 처녀가 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 처녀하고 결혼을 하고 싶었다. 아들의 마음을 눈치 챈 아버지가 하루는 처녀를 불러왔다.
“너 우리큰며느리 삼고 싶은데 괜찮지?”
처녀도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처녀에게 날마다 구애를 해서 허락을 받아내서 결혼을 하게 됐다며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으며 이야기하면서 할머니한테 가고 싶다고 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고 나자 침대에 누워 있다가 밤10시가 되자 침실 문을 살며시 열고 나온 영태 할아버지가 얼굴을 내민다. 거실 소파에 앉으며 냉장고 쪽으로 자꾸 눈을 돌린다.
“어르신 간식 드실래요?”
“먹으면 좋죠. 그렇잖아도 배가 고프던 참인데...”
두유 한 개와 바나나를 꺼내서 앞에 놓자 고맙다는 목례를 하고는 맛있게 드신다. 요양원에 오신 어르신들은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생활하는데 기본적으로 불편한 것 없고 영양을 고려해서 음식도 잘 나온다. 규칙적인 생활과 프로그램에 맞춰 활동할 수 있다. 물리치료, 노래교실 영화감상 등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어도 집에 대한 향수는 끊임없이 따라다닌다. 웬만한 가정보다 편리한 시설을 갖추어져 불편 할 것 같지 않지만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그들은 날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영태 할아버지도 명절에 집으로 모셔갔다가 아들이 모시고 요양원에 들어선 순간 다시 집으로 되돌아간다며 옷 보따리를 싼다. 어떻게 설득을 해야 될지 모르고 쩔쩔매고 있으면 일단 아들을 보내고 나서 할아버지를 붙들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들이 눈에 안 보이면 슬며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유독 부침이 심한 아버지를 모시고 집에 간 순간부터 요양원으로 다시 돌아 올 때 까지 시달려야 하는 아들의 마음도 편치 않아 보인다. 언제쯤 다시 집으로 돌아갈거나 하고 기회만 기다리는 할아버지도, 그런 아버지를 떼어놓고 발걸음을 옮기는 아들도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비극의 한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