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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Feb 23. 2024

 이별의 노래


 노란 은행잎이 춤을 추며 날아가고 있다. 밤늦은 가로등아래 옷을 벗어가는 은행나무의 초라한 모습이 유리창을 통해 눈에 들어온다. 여름날 은행잎은 푸른 잎으로 나무에 양분을 공급해 줬지만 가을이 되면 나무에 양분을 공급하지 못한 잎은 자기의 할 일이 끝났으니 나뭇가지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간다. 겨우살이를 위해 나무는 잎을 떨어낸다. 


 밤늦은 시간, 주변은 고요하고 실내조명등이 노란 불빛을 쏟아낸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가느다란 목소리가 생활실 에서 흘러나온다. 발소리죽여 가까이 갔더니 침대위에 비스듬히 앉아서 가곡 ‘이별의 노래’를 부르는 성자할머니의 목소리였다. 낙엽 지는 가을날에 떠난 사람을 못내 아쉬워하는 이 노래는 박목월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이다. 낮에 아들이 면회 와서 어머니를 보고간 뒤라 우울하게 앉아있던 성자할머니는 저녁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이곳요양원으로 들어와서 마음을 달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어르신, 왜 안 주무셔요?”

 “잠이 오지 않아서요. 주변 시끄러울까봐 혼자 조용히 부른다고 소리죽여 불렀는데 들렸어요?”

요양원에 입소할 때 아들이 모시고 왔고 잊을 만하면 아들이 다녀가곤 했다. 많이 힘들어하는 할머니 옆에 앉았다. 그녀는 가슴에 담고 있던 지난 과거 이야기를 쏟아놓기 시작했다. 


 전직 고교교사출신인 그녀는 사업하는 남편과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남편의 사업은 탄탄대로였고 슬하에 두 남매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각자 자신들의 앞길을 잘 헤쳐 나갔다. 하지만 IMF 가 휩쓸고 지나가자 멀쩡하던 회사가 연쇄 부도를 맞고 파산했다. 매출도 많고 자금도 안정적이던 회사는 거래회사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자 자금줄이 막혀서 완전히 손을 털었다했다. 살고 있던 집까지 팔아서 수습하려 했지만 결국 빈털터리가 되고 남편은 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즐기며 여유롭고 풍요롭게 살던 생활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지금은 건강마저 좋지 않아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는 생활할 수가 없었다. 고민이 많아질수록 고통의 무게가 가슴을 억눌렀다. 끌어안고 있었던 것은 허영이었고 자만이었다. 화려했던 지난 과거를 털어내고 스스로 낮아지는 자세가 필요했다. 스쳐지나가는 바람 같은 과거의 행복이 현실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단이 필요했다. 스스로 요양원을 택했다며 활발하게 사회활동 하다가 요양시설에 있으려니 답답하고 우울해서 견디기 힘들지만 적응해 가고 있단다. 피아노를 치던 손은 예술적 기능을 상실하고 겨우 밥 먹는 데만 쓰는 도구로 전락했다. 몸이 불편한 것 못지않게 마음도 불편하고 먼저 떠나버린 남편이 그리울 때면 가족들을 위해서 피아노 위에서 춤추던 손은 한번만이라도 옛날처럼 연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버지의 사업을 돕던 아들도 그 후에 취업을 했지만 원치 않게 직장에서 나와서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상황이라 실질적으로 가장이된 직장생활 하는 며느리에게 정신적으로 짐이 덜 되게 하려고 요양원에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면  밤늦게 퇴근하는 며느리를 고생 시키는 것도 미안한데 시어머니 일로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단다. 현 생활에 적응하려고 마음을 다져먹고 있다. 자신의 살림까지 돌보며 신경 쓰게 해서 부부사이에 시어머니의 짐까지 지워 줄 수는 없다며 힘들어도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견뎌내고 있다고 말 한다. 

 낮에 아들이 가을 옷을 가지고 면회 왔다. 그리운 아들이 왔지만 아들의 생활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들 며느리에게 신경 안 쓰게 잘 있는 것이 도와주는 일이란다. 미안해하는 아들에게 스스로 선택한 길인데 미안할 것 없다며 아들의 손을 잡았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기 전에 가봐야 한다며 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기위해 생활실 유리창 쪽으로 다가갔다. 떨어진 은행잎을 밟고 지나가는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요양원을 찾은 선택의 방식이 겨우살이를 위해 가지에서 떨어져나간 은행잎 같았다. 떠돌이 계절은 가을을 남기고 훌쩍 떠나버렸다. 

 밤은 고요하고 잠은 오지 않은데 집을 떠나올 때 다시 귀가 할 날을 기대 했지만 허상된 꿈을 안고 산다는 그녀는 낮에 떠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생각하면서 소리죽여 부르는 ‘이별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바람결에 날아가는 은행잎처럼 쓸쓸한 긴 여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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