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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 기 홍 Aug 25. 2020

중년을 넘어가는 여행

나의 노년으로 가는 여정은....

이른 아침,

나뭇가지 위의 새 우는 소리에, 불현듯

그리운 친구 생각나 몸종에게 길 떠날 채비를

하라 이르고, 주인준비하는 몸종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먼저 길을 나섰습니다.


어디로, 얼만 큼의 여정을 듣지 못한 몸종은

대충 여장을 꾸리고, 잰걸음으로 앞선 주인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밤이 되어버린 주막집 앞마당에서, 달을 바라보고 선 주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주인님.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주인은 달만 쳐다볼 뿐, 말이 없었습니다.

"주인님 얼마나 가야 하는 거리입니까?"

역시 아무 말없이 밤하늘만 보고 있었습니다.


집을 떠나온 내내, 말없이

걷기만 하길, 천리길이 되어 갈 즈음,

넓은 강가에 도착했습니다.

건널 배는 조그만 널판 배로 건넌다 치지만,  

막상 건너다 줄 사공은 온데 없었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주인, 이내 노를 저어

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서툴긴 하나, 이미 마음은

건너에 있는 터라, 중간중간 위험을 겪으면서,

기어이 강을 건넜고, 또다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봄에 떠난 여행어느덧 여름 중반을

지나는 중이라, 강렬한 햇빛을 피할 곳

조차 없는 들판을 지나는 것도 죽을 맛이오,

비명을 지르며, 거칠게 쏟아지는 폭우를

피 할 곳 없이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것도,

지랄 맞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날도 여전히 걷기만 하다 보니 어느새, 

인가 조차 없는 산 중턱에서 하룻밤을 노숙하게

되었습니다. 몸종은 다시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주인님.

"도대체 어디로, 언제까지 가시는 겁니까?"

그 말에 주인은 손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습니다.

"저 멀리 서쪽의 노년에게 가는 길이니라.

앞으로도 족히 5천 리 정도는 걸리 것이니

그리 알거라" 하고 말한 뒤 나무 등걸에 앉아 고요한 어둠을 마주하며 깊은 상념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로, 수없이 많은 곳과,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하며, 주인과 몸종은 오로지 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걷고, 또 걷길 반복했습니다.

때론, 그 낯선 지방에서 낯선 이들과 낯선 일들을 하면서, 앞으로도 그 무수히 많은  섬들을

만나며 겪어갈 다짐을 하면서 걸어갔습니다.

     

어느덧, 가을의 여물지 않은  찬서리로 신발을 적실 무렵, 주인과 몸종은 깊은 계곡 위에 걸쳐있는 긴 다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평소처럼 몸종은 주인의 뒤에서 주인의 움직임을 기다리며

있었습니다.


주인은 물끄러미 다리와, 깊은 계곡을 내려보며 건널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다음날, 그다음 날을 보내고, 그 후로 여러 날들을 것보다

더 많은 여러 날들을 보내면서 꼼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날 중. 어떤 날, 주인은 말없이 안쪽 깊숙이 간직했던 비단 조각을 꺼내 무언가를 적었습니다. 아주 짤막한 글귀였습니다.

그리고, 몸종을 불러 말하길,

"너는 이것을 갖고, 저 다리 건너 3천리를

더 가서 노년에게 전하거라. 그걸 전하고 

너는 이제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거라.

너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구나."


그는 처음 집을 나설 때와 마찬가지로 몸종을 뒤로하고, 지나온 길을 향해 되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노년에게 전하라는 말은 이렇습니다.


지금껏 긴 세월, 긴 여정을
지나오면서 보고팠던 그대를 이미 만났소.
달을 보고, 강을 건너면서,
때론 고독하고 외로운 들판을 가로지르며,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눈 그대기에,
그대를 보지 않아도 이미 지나온 길 위에서
더 많이 보게 되었오.

그대. 나 지금은 돌아가오.
하지만, 내 돌아갈 끝에도 그대가 있기에
결국은 그대에게 가는 길이라오.
시작은 끝과 함께 있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구려. 이젠 알게 됐구려....


지나온 길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으니.

서둘러 그의 노년이 되기 전에도

그를 알 수 있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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