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 기 홍 Apr 22. 2020

피고 질 것인가, 다시 필 것인가.

" 때가 늙어버리면 돌이킬 수가 없다 "

" 언젠간 가겠지 푸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산울림이 부른 "청춘"의 도입부 노랫말이다.

흔히 꼰데라 말하는 세대들의 특징의 단어가 "라떼는 말야 "로 굳혀진 이유 중 하나는 그땐 그랬어의 회상과 더불어, 오롯이 혼자 헤쳐나가야만 했던 역경과 고난들을 지내오면서 갖춰진 일종의 자기 확신 성향에서 나온

걱정과 안타까움도 얹혀진, 라떼이다.

그러한 라떼가 바로 그들의 청춘이었다는 것도 한참의 혼돈 속에서 벗어날 때쯤 알게 되었다.

" 너는 늙어 보았느냐, 나는 젊어 보았다 " 치열한 삶을 살아오다 어느 날 문득 꽉 막힌 벽처럼 세대차이를 빗댄  자조적인 감정이 내포된 문구에서 또 한 번 잊고 있었던 "청춘"을 떠올린다.

"청춘"은 모든 게 왕성하다. 기운도, 체력도, 열정도, 의지도, 희망도 그 밖에 모든 것이 봄의 기운이다.

어느 날 "전엔 안 그랬는데 " 하고 되뇌면, 그때는 여지없이 청춘을 이미 배웅하고 돌아온 길이라

생각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친구들과 만나면 즐겁다. 좋아하는 당구게임도 자주 하고, 술 한잔 하면서 나누는 친근한 말투의 오랜 표정들이 편안하다. 때론 어긋나기도 하지만 그리 오랜 시간을 멈추게 하지 않고, 이전의 끈끈함과 다정함으로 돌아온다.

나이를 먹으면서 대화의 주제가 변해가는데, 단연 으뜸이 "건강"이다.

간간히 자녀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도 있지만, 친구들 모두가 공유할 수 없는, 서로 말은 안 하지만 자녀의 이야기는 듣기에 아주 민감한 부분도 혼재하기에 가능한 필요할 때 살짝 스치는 정도로 끝낸다.


-요즘은 무릎이 시큰거려서 잘 때 좀 힘들어.

-나도 일어날 때 자동으로 끄~응 하는 신음을 내는 게 늙었나 봐.

-말도 마라. 난 이가 부실해져서 임플란트를 8개 했어.

-이 친구야 난 3년 전에 다 했어.

-난 당뇨약과 고혈압약을 먹고 있는데.

정신없는 자기 하소연을 듣고 있노라면, 순간 자랑처럼 들리는 착각을 하기도 했었다.

결론은 " 건강하지 못하다 " 였다.

사업을 하는 친구들, 직장에 근무하는 친구들, 장사를 하는 친구들, 개인택시를 하는 친구, 그리고 소위 백수인 친구들. 다양한 삶의 모습 속에서 각기 다른 환경을 영위하고, 각기 다른 사정을 갖고 살아간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한잔의 얼큰함 속에서 툭 하고 던져 놓는 애환으로, 속내가 짙게 베인 외로움과 허무함을 엿볼 수 있었다.


 "아빠가 어렸을 때 계란은.... 이란 말에 아들의 반응이 왜 안 먹어, 먹으면 되지"라는 말에 헛헛함을, 평생, 종일 일을 하고 들어오면 마누라, 아이들은 모두 제각각 TV, 핸드폰. 이게 뭐지 하는 공허함.

돈이 필요할 때만 다가온다는 자식들, 마누라. 이런저런 일로 늦은 밤 식탁 불만 켜고 막걸리 한잔하면서 더 늙어가는 자기를 봤을 때 불쌍해서 눈물이 왈칵했었다는 말에 좌중은 일순 조용했었다.   

나이 50이 넘어가면 같은 일, 같은 말, 같은 모습, 같은 생각들이 더 이상 같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 책임질 것도 많다. 지금 하는 것을 놓기엔 너무 아까워서. 형편이 안돼서 도저히. 등 많은 이유가 있다.

그럼 생각해보자. 물론 절대적 수치는 아니지만, 평균수명 남자 85세. 50세면 35년이 남았고 그중에 85세

가까운 5년 정도는 질병으로 인해 주거지에 있을 가능성이 크고, 75세부터 79세까지는 체력 저하와 질병으로 인해 행동 제약 가능성이 있고, 65세부터 74세 시기에는 각종 약물과 병원 등을 전전하며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는 시기라 볼 때. 50세부터 64세의 대략 15년 정도 개인의 차가 있지만, 나름 생의 마지막 황금기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다. 그것도 평소에 잘 관리한 사람들이 더 많은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 일만 한다.

가장의 의무와 책임을 앞 세대에서 이어받은 마지막 세대가 지금의 50대를 보내는 나와 친구들, 그리고 우리들이다. 우리의 또 다른 이름은 " 희생과 무한한 책임이다 "   


"시간을 잡고, 세월을 앞세워 죽음으로 향한다"   문득 떠오르는 구절에 자문해 본다.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가?


점차 줄여가며, 잊고 있었던 것들을 채워가는 인생을 시작할 수 없을까?

놓을 순 없지만, 줄여 갈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 볼 방법은 없을까?

多   가질 순 있어도, 모두 가질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미니멀 디자이어를 실행해 볼 용기를 내볼 순 없을까?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하는 질문에 답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주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한말은  " 그때 왜 그것을 하지 못했을까? " 였다고 한다.

 나와 우리들의 50대에겐 더 늦기 전에 달라진 삶의 궤적에 따른 내면의 변화를 시도할 때이다 

  때가 늙어버리면 다신 돌이킬 수 없기에....

유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생을 나누어 보자.


유년기는 새롭게 받아들이며 성장할 준비를 갖추는 더하기 ( + )의 시기.

청년기는 준비한 것으로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더 많은 성취를 향해 열정을 쏟아붓는 곱하기 ( X )의 시기.

중년기는 그간에 이루었던 결과물에 대해 정리하고, 줄여가면서 탄탄함의 반석을 다지는 빼기( -- )의 시기.

"노년기는 부풀었던 희망과 욕심과 미련을 나누고. 가진 것들을 나누며 점점 비워가는 나누기 ( / )의 시기다 "

매거진의 이전글 50~ 쯤 되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