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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Jan 01. 2019

어버이날과 카네이션의 추억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32

어버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순우리말이라 그런지 참 정겨운 어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발음을 하면 할수록 실제로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묻어나오는 말이다.  


사실 유교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한국인들이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이 '효'다. 사시사철 늘 '효'를 중요시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본다면 굳이 매년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별도 지정할 필요까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버이날'은 원래는 '어머니날'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날'의 유래는 서양의 기독교 국가에서 비롯되었는데 우리나라도 1930년 무렵부터 구세군 가정단에서 어머니 주일을 지키기 시작한 것이 그 유래의 처음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부터 '어머니날'을 제정하여 기념하기 시작했고, 그 후 아버지와 어른, 노인들을 포함하여 '어버이날'로 개칭한 것은 1973년의 일이다.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는 풍습은 미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미국의 한 여성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하나씩 나눠 준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 후로부터 살아계신 어머니에게는 빨간 카네이션을 드리고, 어머니를 여읜 사람은 어머니의 무덤에 흰 카네이션을 놓았다고 한다.


나는 '어버이날'의 의미를 알게 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2년 동안 거의 매년 5월 8일에는 여동생들과 함께 부모님을 위한 빨간색 카네이션을 준비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조화도 마치 생화처럼 잘 만들어진 것들이 많지만, 예전에는 생화와 조화의 차이가 많이 나서 가급적이면 생화를 사전에 준비했다. 어떤 날은 생화를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 매우 어설프긴 했지만 여동생들과 같이 색종이로 손수 만든 카네이션을 달아드린 적도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의 가슴에 직접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행동까진 잘하지 않는데 내가 어릴 때엔 옷 핀 같은 것을 활용해서 카네이션을 직접 달아 드리는 게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특히 아버지께서 아침 출근길에 나와 동생들이 직접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면 무척 기뻐하셨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는 풍속은 바로 그다음 주에 예정되어 있는 '스승의날(매년 5월 15일)'까지 이어져서 내 학창 시절의 5월은 카네이션과 함께 하는 달이었다.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매년 5월 8일에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리는 것으로 카네이션을 대신했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는 안부전화와 함께 간단한 선물이나 용돈을 드리는 것으로 갈음해왔다. 요즘은 선물보다도 필요한 데 쓰시라고 적은 금액이지만 용돈을 드린다.  


사실 그 날 하루 휴가를 내서라도 직접 찾아뵙고 밥 한 끼라도 모셔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한두 번인가 밖에 그렇게 하질 못했다. 죄송한 마음이 매우 크다. 더군더나 언젠가부터는 이런저런 사유로 인해 찾아뵙지 못하는 게 점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되어가서 마음이 더욱 불편하다.   


그렇다고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대신 내가 평소에 부모님께 살가운 대화로 기쁘게 해 드리는 것도 아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 마음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진리임을 알면서도 실천이 참 어렵다.       



여진이와 지훈이가 둘 다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어버이날'에 카네이션과 함께 짧은 편지를 써서 준다. 대단한 내용도 아니고 긴 글도 아니지만 아이들의 진정어린 마음이 담겨 있어서 매번 참 기특하단 생각이 든다. 내게 꼭 필요한 목 캔디 같은 자그마한 선물을 주는 때도 있었다.   


나도 아이들이 내 가슴에 카네이션을 직접 달아줄 때 뭔가 흐뭇하면서도 기분이 참 좋다. 근래엔 카네이션보다 짧은 편지와 간단한 선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둘 다 성인이 되고나서는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을 벌다 보니 제법 두툼한 용돈 봉투를 내밀기도 한다.

 



부모가 되어서 아이들에게 카네이션을 받아보니 내가 어릴 때 아버지 어머니께서 따로 말씀은 안 하셨지만 행여나 그날 아무것도 없이 지나갈까 봐 티 안 나게 관심을 보이셨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꼭 무엇을 바란다거나 받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바쁜 일상 속에서 그날 하루만이라도 '어버이날'을 핑계 삼아 부모 자식 간에 소통하고 정을 나누고 싶어서 그런 것이리라.    


부모의 마음은 부모가 되어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했는데 적어도 나의 경우엔 틀림없는 말인 것 같다. 카네이션보다도 아버지 어머니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왜 그때는 몰랐을까. 아니 알면서도 왜 제대로 실천을 못했을까. 남은 날이 많지 않다. 마음먹은 것을 늘 실천하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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