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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Jul 27. 2024

나의 해방일지 - 바나나편

폐렴에 걸린 호두. 이번주 내내 가정보육 중이다. 나흘 치 약을 지어왔는데 이 약으로 증세가 잡히지 않으면 입원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호두 간호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안 먹어."


잘 먹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호두는 밥을 거부하고 있다. 평소에 좋아하던 소고기도 소용없고. 밥 먹는 시간마다 나와 사투를 벌는 중이다.



그렇게 밥을 안 먹더니 본인도 배가 고프긴 했는지 우유만 연신 찾다.


(제발 우유만은 안돼. 그걸로 배를 채우면 안 된다고.)


우유 때문에 배가 부르면 밥을 안 먹을 것 같아서 나는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우유를 줬다, 안 줬다, 아이와 밀당을 하면서 하루를 버텼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어 남편이 (내가 고대하고 고대하던) 퇴근을 했고, 호두는 역시나 밥을 안 먹고 아빠와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는 이렇게 외쳤다.


"바나나 먹고 싶어!"


(아싸.) 나는 그 말 한마디에 너무 신이 났다. 호두가 무언가 먹을 것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도 그렇지만 나를 더욱 신나게 한 것은... 따로 있었으니...



집에서 탈출!!



(소리 질러~~) 나는 바나나를 산다는 명분 하에 공식적인 외출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말을 들었을 때의 해방감이란?! 이루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다.



혹시 몰라 말씀드리지만 감금되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 때문에 외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집에 바나나가 없네? 엄마가 나가서 사 올게."



나는 부랴부랴 지갑만 챙겨서 얼른 집을 나섰다. 혹시라도 엄마 껌딱지 호두가 울까 봐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달려 나왔다. 그렇게 집 밖에 나오니 . 숨통이 트였다. - '살 것 같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걷다 보니 씨가 습하고 꿉꿉한 것도 모르겠고 집 밖 공기는 너무 상쾌했다. 집 근처 마트가 있었지만 굳이, 일부러 옆 동네 슈퍼마켓으로 갔다. (남편은 이건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바나나가 다 떨어지고 없었다. 빈손으로 집에 가자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애가 먹고 싶어 하던 바나나인데... 대체품들을 사봤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바나나가 다 떨어졌노라고. 그 말은 들은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쪽 마트 다녀와~ 거긴 있을 수도 있잖아."



(오예! 남편 땡큐!!) 남편이 내 마음을 읽은 걸까? 나는 신나게 다시 집을 나왔다. 그리고 애타게 찼던 바나나를 사들고 다시 집으로 왔다. 결국 필요한 것도 사고 밤마실도 다녀오고 일거양득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게는 잠시나마 힐링이었다.



가끔 이렇게 잠깐이라도 저녁에 외출을 하면 하루 스트레스가 풀린다. 이렇게 좋은 것을... 남편 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아 쉽게 할 수가 없다. 종종 회식도 있고.


아무래도 호두가 조금 더 커야 가능한 일인 걸까? 남편의 협조 하에 나만의 저녁 시간이 확보되길 바랄 뿐이다. 그러면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고 하고 싶은 일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을 텐데. 육아맘의 소박한 바람이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엄마는 그냥 저녁에 장을 보고 오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두야, 아빠가 집에 오면 먹고 싶은 거 줄줄이 얘기해 봐~ 엄마가 사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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