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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Aug 17. 2024

8월의 헬(hell)모닝

감기로 가정보육을 해야했던 8월의 어느 날. 호두는 일어나자마자 우유를 달라고 졸라댔다. 나는 우유를 주는 대신, 아침 밥상을 차리며 시간을 벌어봤다. 가뜩이나 소식좌인 애가 우유로 배를 채우고 밥을 안 먹을까 봐서. 그런데 쿠쿠는 밥이 완성되려면 십 분 정도가 남았다고 한다. 이를 어쩐담.


일단 유산균도 먹이고, 맛있는 영양제도 먹어고, 좋아하는 책도 좀 읽어보라고 세이펜도 쥐어줬다. 호두는 잠시 잊을만하다가 우유를 또 찾았다. 그러다가 계속 달라고 울고불고 짜증을 내길래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산으로 멸균 우유 하나를 쥐어줬다. 그러자 징징이는 평상시의 호두로 돌아가서 우유 한 팩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엄마가 밥을 제 때 안 차려줘서 배가 고팠을 거라는 생각에 미안했다.


그러는 사이 밥은 완성되었지만 호두는 영 밥을 먹을 기미가 안보였다. 차라리 씻기면 그 사이에 허기가 질 것 같아서 일단 목욕물을 준비했다. 그리고 애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파트 방송에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 한 관계로 잠시 후 9시부터 온수가 중단될 예정입니다. 작업이 마치는 대로 온수가 공급될 예정이오니 입주민분들의 많은 협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시간 8시 57분. 도대체 온수가 안 나온다는 공고가 어디에 붙어 있었지? 요즘 엘리베이터에 애 데리고 탈 때, 모기 쫓고 하느라 공고를 하나도 못 봤던 것이다. 어디든지 나가려면 빨리 씻기고 나도 샤워를 해야 하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뭐 찬물로 해도 되지만 감기에 걸린 호두는 그러면 안 되었기 때문에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그래도 나는 목욕을 강행했다. 어디 한 번 해보자! 보통 9시가 된다고 바로 온수가 뚝 끊기지는 않았었기 때문에 도전이었다. 일단 뜨거운 물을 여러 군데에 받아두고, 애를 욕조에 앉혀 씻기기 시작했다. 다행히 십여 분 동안 따뜻한 물을 쓸 수 있었고 아이와 나는 샤워를 완료했다. 일단 애 옷을 입히는 게 먼저여서 뒷정리는 잠시 미뤄둔 채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목욕탕에서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었으니... 옷 하나 입는데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호두. 장난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난리 부르쓰를 췄다. 겨우 옷을 입히고 머리를 말려주려고 하니, 이번엔 드라이기가 싫단다. 겨우 젤리로 어르고 달래서 드라이기를 갖다 댔는데 5초도 못 견디고 또 도망이다. 한참 씨름을 벌이다 내 몸은 다시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래도 겨우 애만큼은 보송하게 말려 놓으니 다행이다 싶어 남은 뒷정리를 하러 가는데... 그 순간 호두는 또 외쳤다.



"나 우유 줘."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인데? 누가 도돌이표를 해 놓았나? 다시 호두님이 기상한 그 시간, 그때, 그 상황으로 타임슬립한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10시. 우유로 또 배를 채우면 안 되니까 빨리 밥이나 차려주자 했는데 그 순간 빨래가 다 됐다고 세탁기가 나를 부르네? 아침이 너무 고되고 피곤했다. 혼자 몸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사건의 연속. 그래도 빨리 밥을 먹이고 대충 집 정리를 하고 외출을 하려고 다시 한번 힘을 냈다.



밥을 안 먹으려는 아이를 앉혀서 또 겨우 밥 한술 떠서 먹이고, 욕실 치우고, 마지막으로 놀던 장난감만 치우고 나가보자 했는데... 그 사이 호두는 거실과 모든 방 모두에 책을 다 꺼내놨다. 엄마 좀 살려줘ㅠㅠ 그 사이 남향의 아파트는 뜨겁게 달궈져서 도저히 에어컨 없이는 버티기 힘든 총체적 난국이 되어 있었다. (하필 소아과에서 호두 감기 때문에 에어컨을 되도록 틀지 말라는 자제령이 내려졌었다.) 나는 이 상황을 도무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버틸 힘이 없었고, 결국 난장판이 된 집을 뒤로하고 호두를 데리고 친청으로 탈출했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어찌나 시원하던지! 그렇게 그 짧은 아침 시간 동안 벌어졌던 고통의 연속은 끝이 났다.



(8월의 고온다습한 공기가 얼마나 상쾌했겠냐만은 상대적으로 느꼈을 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옆 동네 친정집으로 가는 길은 청량함 그 자체였다. 도착해서 친청 엄마랑 아이랑 놀 동안, 나는 방 하나에 에어컨을 틀고 뻗어버렸다. 그제야 나는 천국에 온 것 같았다. 그리고 어린이집의 중요성, 감사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호두가 빨리 감기에서 낫길 빌고 또 빌었다. 기침과 콧물이 멈추고 등원을 하면 절대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었기 때문에. 정말이지 이런 난리부르쓰 아침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가 않다. 참고로 이 말인즉슨, 둘째는 없다는 소리다. 이 글을 읽을 남편이라는 독자님은 참고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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