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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Aug 10. 2024

엄마는 두고 볼게!

feat. 어마무시한 잠투정

잠투정이 유독 심한 호두. 잠에 예민한 기질이어서 졸려도 끝까지 버텨낸다. 몇 달 전, 내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온 그날도 호두는 안 자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간이 새벽 2시였다.


심지어 얼마 전에 또래 친구들과 키즈 카페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약 2시간 정도 신나게 논 뒤 점심을 먹니 딱 낮잠 타이밍이었다. 20분 정도 차를 타고 오다 막판에 잠이 든 녀석. 옳다구나 싶어서 차에서 내려 집 침대에 눕히는데, 고새 불편함을 느꼈는지 호두는 벌떡 깨버렸다. 뭐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친다. 그런데 잠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로 깼기 때문에 피로가 덜 풀렸는지 비몽사몽, 비틀비틀했다. 잠을 이어서 자주면 좋으련만... 호두는 그 컨디션으로 저녁 9시까지 버티더니 결국 밤잠을 잤다.


참고로 이렇게 비틀거리며 쏟아지는 잠을 버티다가 넘어져서 입술이 찢어진 사건도 있었다. 그래서 호두가 잠을 제 때 자지 않으면 나는 마음을 졸이게 된다. 애가 잘 동안 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화가 나는 건 둘째치고 안전 상의 문제가 발생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낮잠/밤잠 불문하고 호두가 갓난아기 때부터 잠을 거부해서 생 에피소드는 차고 넘친다. 그런 와중에 어제 외갓집에서 방점을 찍어버렸다.


한창 외갓집에서 놀고 자고 하는 데에 재미를 붙인 호두는 본인 집으로 가기 싫다며 할머니, 할아버지랑 잔다고 떼를 쓰기 일쑤였다. 그러고는 종종 엄마와 아빠 없이 외갓집에 홀로 남아 잠을 잤다. 밤이 되면 제 때 자기를 강요하는 우리와는 달리, 할미와 하비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놀아주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런 특수를 노리며 늦게까지 tv도 보고 뛰어노는 맛에 엄마와 아빠를 집에 보내 버렸다.(다행인지 불행인지 친정집이 1층이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어제도 친정에 있다가 저녁이 되어 호두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더니,


"엄마 혼자 가. 나는 할머니랑 잘 거야."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집에 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어서 호두를 두고 혼자 돌아왔다. 평소처럼 잘 잘 테니 다음 날 아침에 데리러 가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게 왠 걸? 새벽 3시 반에 전화가 울렸다. 친정아버지였다.


"지금 데리고 간다."


애를 데리고 가니 주차장으로 내려오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호두는 집에 왔고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알고 보니, 호두는 낮잠을 패스한 탓에 저녁 8시 잠이 들었다가 3시간 뒤쯤 일어났다고 한다. 계속 이어서 잤으면 좋았을 것을 어중간하게 깨버린 것이다. 잠을 자며 에너지를 충분히 비축했는지, 그 후 새벽 두 시까지 신나게 방방 뛰어다니며 노래 부르고 놀던 호두. 잠이 솔솔 오려고 하자 잠투정을 하며 엄마를 찾고, 심지어 울고불고 폭풍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평소에 잠투정이 심한 손녀인 걸 알고는 계셨지만, 어제는 학을 떼어버린 할아버지. 결국 애를 차에 태워 우리 집에 내려주고 가셨다. 비하인드 이야기로, 친정아버지는 그렇게 잠을 한숨도 못 주무시고 아침에 모임 약속을 나가셨다.


손녀 사랑이 끔찍했던 친정 부모님이지만 어제는 정말 학을 떼신 것 같다. 뭐 며칠 지나면 언제 있었던 일이냐는 듯 다 잊으시고 다시 손녀를 찾으실 걸 알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 없이 호두만 친정에 남아서 자는 것은 당분간 힘들 것 같다. 휴.


나이가 조금 더 차면 이런 잠투정이 사라질까? 아기들은 일찍 자야 성장 호르몬이 나와서 쑥쑥 큰다는데, 호두는 자는 시간이 거의 밤 10~11시니 걱정이 된다. 잘듯 말 듯 하다가 시간만 흘러가고... 아이가 잘 때까지 기다리는 나도 지친다. 이렇다 보니 나에게 있어서 '이른 육퇴'의 꿈은 무산된 지 오래다.


나중에는 자고 싶어도 못 자는 날들이 많을 테니 지금 충분히 자두라고 호두에게 알려줘야겠다. 그리고 먼 훗날 중고등학생이 되어서 한창 공부해야 할 때, 호두가 조는지 안 조는지 지켜볼 것이다. 졸거나 공부를 안 하고 자려고 하면 아기 때 했던 행동들을 낱낱이 다 알려줄 요량이다. 잠을 충분히 자라고 사전에 말해줬으니 엄마는 고지 의무를 지켰다는 것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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