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 문장에 힘입어, 우리 집 가장 작은 인간의 언어 발달에 대해서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
1. 이게 뭐지?
나는 스티커 북 속 콜라병을 가리키며 이게 뭐냐고 호두에게 물었다. 호두는 대답했다.
막걸리
(양가 할아버지 두 분은 반성하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엄마는 애주가지만 막걸리는 못 먹습니다.)
2. 약 먹자!
감기에 걸린 호두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마침 약 먹을 시간이 돼서 나는 약을 먹자고 했다. 그랬더니 돌아온 말,
노우노우 (No, no.)
당시 호두가 읽고 있던 책
3. 터널 놀이를 할 수 없었던 아빠
IKEA 터널 놀이
돌쟁이일 때 가지고 놀던 터널 놀이 장난감을 펼쳐 주었다. 호두는 신나게 들락날락하더니 아빠에게 같이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0.1톤에 육박하는 아빠는 대략 난감해하며 말했다.
"아빠는 몸이 꽉 껴서 안될 것 같아."
그러자 호두는 의아해하며 받아쳤다.
충분한데?
4. 발레 수업이 끝나고
아빠랑 발레 수업에 다녀온 호두. 남편은 호두가 수업에 잘 참여를 안 했다고 내게 귀띔을 해주었다. 나는 호두에게 물었다.
"오늘 잘하고 왔어? 선생님이 하라고 하시는데 안 따라한 거 아니지?"
그러자 뺀질뺀질한 표정의 호두 왈,
했~눈~돼에?
옛날 옛적 개그콘서트에서 '어쩔 꼬온~돼에'를 외쳤던 그 개그맨의 표정이었다. 미운 4살이 확실했다.
5. 외출 준비
빨리 나가야 되는데 호두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외출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아이를 좀 움직여볼 생각으로 외쳤다.
"나가서 놀 사람 없나요?"
그러자 호두는 만사 귀찮은 듯이 대꾸했다.
없어요, 없어!
이 외에도 뒷목을 잡게 하는 그녀의 어록이 많지만, 간단한 상황들만 정리해 봤다. 두 돌쯤 말이 틔더니 이제는 수다쟁이가 되어버린 장꾸(장난꾸러기의 줄임말)다. 미운 4살까지 겹쳐서대화가 녹록지 않다. 예쁜 말도 잘하고 애교도 많지만 말이다. 가끔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도대체 누굴 닮은 거지?'
나나 남편이나 오히려 말수가 적은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뭐, 자기표현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 많은 게 마냥 나쁘지만은 않기도 하지만. 그냥 '어떻게 이런 딸이 나왔나' 의아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녀와의 슬기로운 동거 생활을 위해 적절한 수용과 가이드라인이 필요함을 느낀다. 특히 예스맨이자 딸바보인 아빠의 존재까지 감안해서 내가 중심을 잘 잡아야 할 것 같다. 아무튼 귀염둥이 장꾸 덕분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