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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혜영 May 10. 2017

기억술사를 아세요?

『기억술사1』오리가미 교야/ 아르테

누구나 한번쯤 혹은 여러 번 기억을 지우고 싶은 적이 있을 것이다. 주량이 약한 나는 주로 술자리가 끝난 다음날 아침이면 그런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운이 없게도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고, 내 주변 사람들은 친구의 실수를 너그럽게 넘어가는 것과는 담을 쌓았다. 두고두고 안주거리로 오르내릴 때마다 속으로 모두의 기억이 지워졌으면 하는 상상이 들곤 했다. 맘대로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기억술사처럼 말이다. 

    

『기억술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도시괴담처럼 떠도는 이야기다. 실제 기억술사를 만났다거나 기억이 지워졌다는 사람은 없었다. 평소 기억술사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료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자의 기억이 지워진 것을 눈치 챘다. 더불어 자신의 기억도 일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기억술사의 존재를 찾아다녔다. 

     

기억술사는 해질녘에 녹색 벤치에서 기다리면 나타나고, 얼굴을 봐도 그 기억조차 사라지기 때문에 그의 정체를 아무도 모르고 기억술사가 한 번 지운 기억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연애에 실패하거나 심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남은 이를 배려하기 위해 기억을 지우고 싶어 했다. 원하지 않는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경우는 없다. 그렇다면 기억술사는 싫은 기억을 지우고 괴로움으로부터 의뢰인을 해방시켜준 은인인걸까?     


“기억이란 과거에 있었던 일의 조각 같은 거잖아. 그것이 쌓이고 겹쳐져서 경험이랄까, 그런 게 되어서 사람을 만드는 거잖아. 그 조각이 쌓이고 겹쳐져서 하나의 형태를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갑자기 사라지면 원래 모양도 잃게 되는 거라고 난 생각해. 그 한 조각 위에 겹쳐져 있던 다른 조각까지 모두...흩어져서 형태가 바뀌고.” (321쪽)     


내 안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다. 지금껏 보고 듣고 만난 사람들과의 기억이 ‘나’란 형태를 이룬다. 그런데 아프다고 힘들다고 기억의 고리를 쑥 빼버리면 어떻게 될까? ‘나’란 형태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거나 무너질 수밖에 없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다 기억하는 데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보다 서글픈 일이 또 있을까?     


처음 책을 받았을 땐 일본 호러소설 대상 독자상 수상작이라는 호기심이 컸다. 막상 뚜껑을 여니 무섭다기보다 아프고 슬펐다. 기억술사는 의뢰인의 지운 기억을 혼자 간직해야 한다. 기억을 하나 지울 때마다 기억술사의 가슴에는 기억이 하나 더 쌓인다. 모두 다른 이가 지우고 싶었을 정도로 아프고 슬픈 기억들뿐이다.     

 

기억술사의 다음 이야기에선 어떤 기억들이 지워지고 바뀔까?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술사의 사랑이 이어질 수 있을까? 기억술사의 다음편이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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