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나무 / 김영하]
지금, 당신은 나무를 보고 있다. 후텁하고 질척한 땅에 발을 디딘 당신 앞에는
오층 빌딩은 족히 덮을 만한 무화과나무가 버티고 있다. 한때 새의 깃털쯤에 묻
어온 씨앗에서 발아되었을,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그 근원을 어림할 수 없을 웅
대한 생명체 앞에서, 당신은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를 듣고 있다.
구름이 빠르게 흘러간다. 우기를 맞이한 이곳의 바람은 비의 냄새를 전해준다.
그 기미를 먼저 맡은 검은 나비들은 떼를 지어 숲으로 몰려간다. 맨발의 소년들
이 그 나비들처럼 후룩거리며 당신 주위를 유영한다. 당신은 생각한다. 무엇이
당신을 이곳으로 오게 했는가. 어쩌면 그것은 바로 이 무화과나무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바다를 건너온다는 저 검은 나비떼들?
앙코르에 가야겠다고 처음 생각하던 날, 당신은 거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포장을 뜯은지 오래되어 아무 맛도 느낄 수 없는 커피였다. 사위는 조용했고 아무도
당신을 방해하지 않았다. 일순 도시의 모든 자동차들도 운행을 멈춘 것 같았고 아이
들은 모두 학교에 붙잡혀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적요를 깨고, 돌연 건조대 위에 쌓인
그릇들이 어떤 미세한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딱 한 번, 아무 작은 소리로, 덜커덕,
소리를 내며 아래로 무너져내렸다. 그러나 그 이동거리란 눈으로 식별할 수 없을 만큼
짧았고 그 이동이 그릇들의 심각한 균열을 가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 덜컥거림이란
당신 집 건조대뿐 아니라 다른 어느 집에서나 날마다 일어나는 일이며 어쩌면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발생하는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그날의 당신은 그 일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다. 당신은 생각했다. 물에 젖은 그릇들은
미끄럽게 마련이고 그것들을 쌓아두었으니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구조를 변경하게
마련이겠지만, 어쩌면 세상에는 그런 순간들이 있는 것이 아닐까. 궁극에는 엄청난 일을
초래하는 아주 사소한 덜컥임, 당신은 바로 그 연쇄의 시작을 보았다고 느꼈다.
그런 걸 나비효과라고 한다지. 북경의 나비가 벌럭이면 캘리포니아에선
폭풍이 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당신은 계속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저 덜컥거림이 어쩌면 내 인생의 파열을 가져올지도 몰라.
아무 근거도 없지만 그 생각은 당신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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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의 글을 읽으면 여러 나라에서 구입한
원두의 향이 떠올랐다.
혀를 뺏긴 쿤타킨테의 어린 후예가 아프리카의
고산에서 채취한 원두에서 나는 뜨거운 불의 향과
베트남의 다람쥐가 싸지른 배설의 선뜩함이 고루 섞여 있어
어느 부분을 집어도 맘에 드는 한 잔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게 그의 매력이었다.
핸드드립.
내 머리속에서 조제하고 섞고 우려내어 취할 수 있는 맛.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길이의 문장에서
취할 수 있는 수많은 표현을 그는 무한히 알고 있었고,
나는 그 문장을 따라 읽는 재미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 캄보디아의 앙코로와트 앞이다.
사라진 당신을 찾아나선 나를
오래된 사원과 사원을 덮친
거대한 판야나무 한 그루가 가로막는다.
그들이 당신과 나와 같은 사랑이라면,
나무와 돌같은 사랑이라면,
나무는 돌을 파괴하려 한 것일까?
아니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준 것일까?
그것을 묻고 있다.
사랑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