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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골목길을 걸으며 낭만을 줍다

골목길에서 작은 카페를 우연히 발견하는 것처럼, 내 글이 그런 글이었으면

by 밝을 명 가르칠 훈 Feb 11. 2025

1장. 도쿄에서 낭만을 발견하는 법


아침의 빛이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었다면,

골목길은 하루를 채우는 또 다른 낭만의 공간이다.


나는 도쿄의 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한다.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는다.

길을 잃어도 괜찮다.

오히려 길을 잃을수록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


길을 잃는다는 것의 설렘


도쿄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역 이름도, 거리 이름도, 건물들도 모두 읽을 수 없는 글자들로 가득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두려웠다.

길을 잃으면 어쩌지?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하지만 어느 순간, 생각을 바꿨다.

어차피 모든 것이 낯선데, 차라리 그 낯섦을 즐겨보기로 했다.


그때부터 나는 일부러 길을 잃어보기로 했다.

구글 맵을 끄고, 지하철 노선도도 보지 않았다.

그저 직감대로, 끌리는 방향으로 걸었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고, 햇빛이 비치는 길을 따라가고,

때로는 고양이를 따라 걷기도 했다.


어느 날은 시부야에서 무심코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가,

작은 신사 앞에서 멈춰 섰다.

커다란 빌딩 숲 사이에 숨은 듯한 작은 신사.

그곳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짧게 기도하는 회사원들이 있었고,

신사 한쪽에서는 고양이가 햇빛을 받으며 졸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아, 도쿄에서도 이런 순간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다른 날에는 우에노 근처에서 길을 잃었다.

번화한 거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옛 정취가 남아 있는 골목이 나온다.

작은 선술집,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가는 주인아저씨,

가게 앞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화분들.

그날따라 유난히 바람이 좋았고, 나는 그 길을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벽에 붙어 있는 오래된 포스터를 발견했다.

살짝 찢어진 채 남아 있는 오래된 영화 광고,

누군가 몇 년 전에 붙여놓고 그냥 잊어버린 듯한 느낌.

그 순간, 나는 시간이 멈춘 듯한 감각을 느꼈다.




목적 없이 걷다가 발견한 작은 가게.


도쿄에서는 지도에 나오지 않는 작은 가게들이 많다.

골목 깊숙이 숨어 있는 서점.

길을 잃고 걷다가 우연히 스시집.

이름을 알 수 없는 커피숍.


아사쿠사 근처의 어느 조용한 거리에서 발견한 낡은 책방이었다.

간판도 희미했고, 가게 안에는 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문이 열려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니

오래된 책 냄새와 함께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책장에는 일본 소설뿐만 아니라,

영어와 프랑스어로 된 오래된 책들도 놓여 있었다.

나는 한 권을 뽑아 들었고, 표지를 넘기자 누군가 적어둔 메모가 보였다.

어떤 한자들이었는데, 읽을 수는 없었다. 아마도 이전 주인이 남겨둔 흔적이겠지.

나는 책의 원래 주인과 시간을 공유하는 느낌이 들었다.


책방을 나오며 문득 생각했다.

애니메이션처럼 이 가게를 나오면 그대로 가게가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


목적 없이 걷다가 발견한 것들은,

그 순간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감각을 남긴다.

찾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값지고,

계획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낭만적이다.


그렇게 길을 잃다 보면,

도쿄에서도 가장 도쿄답지 않은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우연히 발견한 도쿄의 비밀스러운 공간.


어느 날, 긴자의 번화가에서 살짝 벗어난 골목에서 특별한 곳을 발견했다.

‘すし(스시)’라고만 쓰여 있는 작은 간판.

안으로 들어가니,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 펼쳐졌다.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온 가게.

낡은 목재 카운터에는 숙성회가 가득했고,

유리 케이스 안에는 손님에게 전해질 멋스러운 접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내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반갑게 맞아주며 이것저것 설명해주셨다.

자신의 아들과 함께 운영하다가 독립한 이야기,

가게가 오래됐어도 음식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는 자부심.


가게는 오래되어 낡았지만,

속 안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운 손길이 담긴 요리가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습니다.”


그 말에 담긴 따뜻함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키치조지에서 만난 오므라이스 가게인 줄 알았던 카페.


키치조지의 좁은 골목을 걷다가 우연히 오므라이스 그림이 그려진 가게를 발견했다.

그림이 너무 정겹고 따뜻한 느낌이라,

“오므라이스를 정말 맛있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문을 열고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

작은 공간에서 풍기는 익숙한 달걀과 버터 향이 나를 반겼다.

그리고 그보다 더 반갑게,

주인 할머니가 환한 얼굴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어서 와요!”


나는 메뉴를 고민할 필요도 없이 오므라이스를 시켰다.

그리고 늘 식당에서 하던 대로 콜라를 함께 주문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한 가지를 알아차렸다.

이곳은 식당이 아니라, 카페라는 것.


콜라는 내가 예상했던 200엔짜리 음료가 아니라,

커피 한 잔과 맞먹는 500엔짜리였다.

나는 뒤늦게 메뉴판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아… 이거 카페였구나…’


너무 웃겨서 그냥 웃음이 터져버렸다.

할머니는 내가 왜 웃는지도 모르고 함께 웃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콜라 한 모금을 천천히 마셨다.


“그래도 오므라이스는 정말 맛있었으니까.”


버터가 듬뿍 들어간 부드러운 계란,

적당히 새콤한 케첩 볶음밥,

그리고 정성껏 끓인 브라운 소스까지.

완벽한 한 접시였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할머니께 “정말 맛있었어요.”라고 인사했다.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음엔 느긋하게 커피 마시러 와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음엔… 음료 가격도 먼저 확인하고 시켜야지.”




낭만은 길을 잃는 순간에 찾아온다


어떤 날은 완전히 길을 잃어 몇 시간을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날일수록, 더 특별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오래된 신사의 돌계단에 앉아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우연히 들른 작은 베이커리에서 갓 구운 빵을 맛보기도 하고,

골목 어귀에서 마주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제 나는 안다.


낭만은 계획할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계획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낭만이 찾아온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도쿄의 골목을 걷는다.

지도 없이, 목적지 없이,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어쩌면 오늘은 또 다른 비밀스러운 공간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새로운 소리를, 향기를, 그리고 이야기를 만날지도 모르겠다.


당신도 언젠가 낯선 골목길에서 길을 잃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신만의 특별한 순간을 발견하기를.


때로는 길을 잃는 것이,

우리를 더 특별한 곳으로 인도함을 느껴보는 즐거움.


낭만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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