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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2. 2018

"여자의 적은 여자 2"

2017년 1월 17일

액션 영화 시퀀스 보면 싸움할 때 주위에 있는 거 잡아서 때리는 장면 많죠. 물론 무기를 왕창 들고 와서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 환경을 잘 사용하는 씬도 참 많습니다.     


다른 사람 욕할 때도 비슷합니다. 사람들 그렇게 창의적이지 않아요. 맨날 주위에서 들었던 욕을 합니다. 자기가 들으면 모멸감 느끼거나 기분 나쁠 욕을 상대에게 합니다. 중학교 여자아이가 아이돌 팬클럽에 가입하고 자기 오빠를 욕하는 사람을 만나서 엄청 열이 받았습니다. 이 아이는 뭐라고 욕할까요? 주위에서 들은 욕, 자기가 들으면 기분 나쁠 욕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욕은 여혐 욕이 많습니다. 뭐 가지고 팰까 둘러보니 마침 빗자루가 보여서 그거 들고 패는 거죠. 타격감 느껴지니까요. 그래서 못생긴 x, 뚱뚱한 x, 너 같은 애를 누가 좋아해 줘도 안 먹어, 혹은 성폭행당해라 이렇게 갑니다. 그게 자기가 들은 욕이고 협박이거든요.

     

역사적으로 외교관들의 사상검증이 많았는데요, 적지에서 오래 살다 보면 그 문화에 동화되어서 그렇답니다. 친일파들도 뭐 처음부터 일본 숭배했겠어요. 일본인들과 어울리면 어울릴수록 그들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지고, 동의하진 않더라도 하도 옆에서 자주 듣는 말이니까 익숙해지죠. 그러다가 싫은 한국 사람을 만나면 '역시 조센징들은...'이 나오는 거겠죠. 옆에 맨날 굴러다니던, 친숙한 빗자루 잡고 패는 겁니다. 

    

남초 직장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여자를 봅시다. 이 사회에서 제일 스트레스 적게 버틸 수 있는 방법은 '나는 여자지만 다른 여자와 달라'입니다. '여자들은 못났다'라는 기존 선입견에서 벗어나지는 않으면서 자신만의 특혜 포지션을 만드는 거죠. 그러면 주위 남자들이 '너는 여자지만 다르다!' 로 인정해줍니다. 이 사람은 여자 패는 논리에 아주 익숙해져 있어서, 그걸 완전히 체화합니다. 이것은 윈윈인데, 기존 질서에 반항하지 않으면서도 '나는 보통 여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라 그렇습니다. 그렇게 십몇 년을 보내고 이 여자는 말합니다. '저도 여자지만 여자들은 참 xyz 해요...' 화자는 여자일지 모르나 그녀가 쏟아내는 여혐은 십 수 년간 그녀의 주위 환경이 쌓아온 빗자루 무더기 입니다. 그거 들고 패는 거죠.     


소위 '여적여'라는 프레임, 여자가 여혐스럽게 다른 여자를 욕하는 메커니즘이 그러합니다. 여성을 비하하는 욕, 개인의 잘못은 종특으로 규정하고 전체의 고통은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하는 방법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그것이 마침 자신의 자리의 보전과 얼마 되지 않은 권력을 휘두르는 데 도움이 되니까 그걸 씁니다. "며느리의 도리는 해야지" "그래도 애 엄마가 그래서 쓰나". 짠한 케이스로는,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할 때입니다. "여자가 대들면 맞을 수도 있지" "임신해서 관계 못 하면 남자가 바람피울 수도 있지 뭐 그런 걸 가지고 또 달려드냐".     

경제문제와 아이 때문에 이혼을 못 하고 버틴 주부는, 이혼하는 여자들을 여혐논리로 비난할 수 있습니다. 남자들 사이에서 버티고 올라간 여자는 주부들을, 경단녀를 비난합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욕하고, 며느리는 동서를 욕합니다. 이들의 주장에는 우리 모두를 억누르는 여혐 사상이 짙게 배여 있습니다.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닙니다. 사람 사는 데서 부딪히는 일 당연히 있고 그게 여여 남남 남녀 뭐 여러 가지 있는데 여자들끼리 부딪힌다면 여적여하는 것도 웃기고, 그들이 공격할 때 쓰는 패턴을 보면 슬퍼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지저분하게 쌓여있는 여혐 빗자루 다 쓸어버립시다. 대청소합시다.


https://brunch.co.kr/@yangpayangpa/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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