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6일
여혐러 프로파일 1. 아직 어리고 성충동 폭발하는 학생(링크)
여혐러 프로파일 2. 좋은 남자, 마초 사랑꾼 (링크)
여혐러 프로파일 3. 여자의 여혐
늘 말하지만 여혐은 꼭 여성에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남자만 여혐 하는 것도 아니다. 여자는 이렇다 남자는 이렇다란 편견은 우리 누구나 다 가지고 있고, 그 편견의 표출도 비슷하다. 그래서 여성의 여혐 패턴도 정말 많지만 아주 뻔한 거 - 명예 남성, 자기 합리화형 할머니/친척/어머니 등등 몇 개 빼고 가보자.
여자는 외모. 남자는 재력. 이런 기준을 완벽하게 체화하고, '남자는 예쁜 여자면 다 좋아해', '남자의 성욕은 어쩔 수 없어'를 받아들인 여성을 보자. 사회에서 여성에게 외모로 급을 매기는 방식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자신도 여성을 그렇게 급수로 매긴다. 쟤는 이쁘니까 이 정도 남자 만나겠지. 얘는 좀 덜 예쁘니까 이 정도 남자. '이 정도'라는 기준에는 남자의 재력 외모 집안 뭐 등등 엄청나게 들어간다.
'남자의 성욕은 어쩔 수 없다'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건 여자 잘못이다. 바람이 났다? 상간녀 잘못이다. 남자야 뭐 여자가 덤비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준에서 아주 세심하게 사람 급을 정해두었는데 혹시라도 어떤 여자가 자기 급수에 안 맞는 잘난 남자와 사귄다고 하면 '헤프게 굴었겠지'로 쉽게 간다. 질질 흘렸겠지. 한번 자 줄 것처럼 싸게 굴었겠지. 그러니 순진한 남자가 헤벌레 해서 저렇게 칠렐레팔렐레 하는 거겠지.
이렇게 판단하는 여성은 보통 자신은 그렇게 싼 여자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철벽을 치기도 하고, 남자들에게 심하게 틱틱대기도 한다. 성욕 주체 못 하는 남자들에게 쉽게 보이면 타깃이 될 거라 생각하니까 자기 기준에 영 아니다 싶은 남자가 작업을 걸면 너무나도 분하고 수치스럽다. 이것 역시 어떤 남자가 좋아해 주는가에 따라 여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에서, 별 거 없는 남자가 작업을 걸었다면 그건 내가 그만큼 가치 없어 보인다는 뜻이라 생각해서 그렇다(물론 모든 철벽녀가 그런 이유로 철벽을 치진 않고, 실제로 워낙 껄떡거리는 남자들, 어찌 해보겠다는 남자들이 많아서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여기서 꼭 하고 싶었던 얘기로. 의외로 연애에 환상이 많다. 사귀는 남자로 자신의 가치를 재다 보니까 사귈 남자가 없다.
연애 경험이 없으니 좀 어수룩한 남자의 작업에도 발칵 하며 반 죽여 버린다. 어설프게 한 번 찔러보면 경멸의 눈초리를 받기 마련이다. 이들은 괜찮은 남자가 첫눈에 반해서 죽자고 쫓아다니기를 기다린다. 남자도 사람인데, 그리고 그렇게 첫눈에 반해서 목숨 걸 정도의 치기가 있는 남자가 그리 많지도 않고, 그것이 정말 괜찮은 남자의 척도는 아닌데도, 나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내가 딱 원하는 방법으로 구애해줄 남자를 찾는다. 그리고 특히 연애 경험이 별로 없으면 남자 감정의 강도를 측정하는 방법이 더 빗나간다. 돈을 많이 쓰는 것이 남자 감정의 척도라고 보기도 하고 (완전 틀리지는 않다. 여성 상품화 사회에서 남자는 재력 과시로 여성의 호감을 사려고 하니까, 많이 투자한다는 것은 그만큼 여자상품의 가치를 높게 봤다는 얘기), 시간 투자를 보기도 한다.
스토킹을 범죄라 하면 볼멘소리 나오는 남자들 나오는 이유가, 사실 그것을 사랑의 증거로 보는 여자도 있거든. 얼마나 좋아했으면 밤새 기다릴까. 얼마나 좋아했으면 저렇게 감시할까. 이 시나리오에서 여성은 상품이고, 그녀의 의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 상품을 남자가 얼마나 원하는지만 부각된다.
(드디어 본론) 그래서 강간 판타지로 연결된다. 남성이 성욕이 강하다는 것은 완전하게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나는 나만을 좋아하는 남자를 원한다. 그러므로 판타지 내에서의 남자는 차갑고 냉정해서 다른 여자들에게는 눈을 주지 않지만 나를 보면 성욕을 주체할 수 없어 터지는 사람이다 (...). 너무너무 나와 하고 싶어서 완력을 쓰기도 하고, '거친 섹스'가 강간으로 가기도 한다. 이걸 보고 '여자도 강간당하고 싶어 한다' 어쩌고 하는 사람들 있는데, 그런 시나리오에서 잘난 남자 주인공은 여성이 엄청 끌리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있고 (여자가 좋다고 하면 싼 여자가 되니까 -_-), 하지만 그런 반대까지도 극복하는 미친 듯한 사랑으로 (...) 여성을 제압한다.
아, 그리고 돈지랄도 한다. 여성을 너무 좋아해서 스토커 짓도 한다. 재력과 시간을 엄청나게 투자하며 이 여자를 보면 정상인으로서의 성욕 컨트롤도 놓쳐버린다. 그게 판타지다.
나는 싼 여자로 보일 짓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먼저 좋다고 달려들지도 않았다. 나는 내가 가치가 낮은 여자라고 믿었는데, 이 슈퍼 잘난 남자가 나를 보면 이성을 잃는다. 뭐 그렇다고 곧바로 침대에 뛰어들 건 아니고 (그러면 내 가치가 낮아지니까)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점점 마음이 열리고 해서 남자는 정말 이 여자에게 올인하게 결심한다...가 클리셰. 그러니 베드신이 꼭 필요하진 않은 로맨스도 많았다. 남자가 얼마나 원하는가, 얼마나 투자하는가만 봐도 충분할 수 있어서.
여기서 안 좋은 궁합. 스토킹이나 남자의 여러 가지 폭력을 애정의 강도로 보고, 여자가 예쁘면 다 해결된다고 믿고, 남자는 그냥 그런 동물이다를 받아들였다 보니 학대당하는 상황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네가 살쪄서 내가 바람을 피운다 하면 겉으로는 화낼지 몰라도 속으로는 받아들인다. 그래, 여친이 살찌면 그럴 만도 하지. 남자 입장에서는 아주 편리하다. 네가 안 이뻐서 그래. 네가 남자라도 다른 여자에게 눈이 갈 거야. 내가 너 어딨는지 늘 확인하고 전화기 감시하는 건 내가 널 너무 사랑해서 그래. 사랑하면 다 그래. 내가 널 때린 건 내가 감정이 욱해서야. 널 너무 사랑하는데 네가 그런 말을 하면 난 참을 수가 없어. 너 없으면 난 죽을 거야. 그만큼 내가 널 사랑해. 이런 말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런 감정의 분출을 자신에 대한 격렬한 사랑으로 본다.
이 시리즈의 포인트는 '이런 사람도 있어요 욕합시다'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여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거. 그래서 아주 뻔한 여혐의 케이스보다는 우리 전부 조금씩은 자신에게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을 많이 넣었다. 나도 로맨스 드라마 좋아하고, 조금 스토커스러운 행동도 나를 좋아하는 감정으로 받아들인 적 있다. 아마 다들 야하게 입은 여자나 대놓고 유혹하는 여자를 보고, '남자야 뭐 어쩔 수 없이 넘어가겠지만 그걸 알고 악용하는 여자가 더 사악해' 생각해본 적 있을 거라 믿는다.
그게 꼭 틀리다, 우리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란 말이 아니다. 남자는 자기 통제 못 하는 동물이고, 여자는 그런 동물에게 미끼라는 식의 세계관이 얼마나 널리 퍼져있는가가 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