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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라 Nov 17. 2019

까짓 거 내가 만들어주지

표고버섯 간장조림

사람 많은 곳도 별로 안 좋아하고 바다보다 산을 좋아한다. 남편과 거의 유일하게 겹치는 취미가 등산이라 종종 함께 산을 찾곤 했다.

한 번은 여주에 있는 마감산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산을 가게 되었다. 말 그대로 데드라인(deadline)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해도 긴장감이 느껴지고 왠지 인생을 마감할 만큼 험준한 산일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남편은 왜 이 산을 추천한 걸까. 찾아보니 다행히 그 마감이 아니라 '말감산'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어느 장군의 말이 간 산이라는 뜻이란다. 산세도 험하지 않고 가족끼리 가기 딱 좋은 가벼운 트래킹 코스였다. 근처에 작은 온천이 있어서 가벼운 산행 후 뜨뜻하게 몸도 데워줄 수 있는, 여러모로 노부부 콘셉트의 우리에게 딱이라 남편이 골랐던 것 같다.

산에도 온천에도 우리처럼 산을 타고 오신 어르신들이 많고 우리 또래는 정말 없어서 약간 이방인이 된 기분이긴 했지만, 왠지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르신들이 보기 좋다고 한 마디씩 덕담도 전해 주신다. 등산에 온천욕까지 하고 나오니 건강해진 듯한 기분이라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근처 사찰음식 전문점을 찾아 밥을 먹었다. 떡볶이와 피자에 환장하지만 이런 건강식도 좋아하는 우리는 정말 하나하나 다 맛있게 먹었다. 고기는 없지만 나물들이 어쩜 그렇게도 다 맛있던지 지금도 가끔 생각날 정도다. 남편은 여기에서 표고버섯 간장조림을 먹어보더니 대뜸 집에서 반찬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사찰음식 전문점에서 파는 음식을 집에서 만들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집에 시댁에서 가져온 건표고버섯이 있었다. 건어물, 건나물 등 각종 말린 음식 도매를 하시는 시댁 덕분에 우리 집에는 비싼 건표고버섯이 항상 쌓여 있다. 꽉 찬 냉장고도 정리할 겸, 까짓것 내가 대충 만들어주지 하며 남편을 바라보니 잔뜩 기대에 찬 눈이 반짝거린다.

레시피는 알 턱이 없지만 호기롭게 선언을 했으니 입맛의 기억에 의존해서 그냥 내 맘대로 만들어봤다. 따뜻한 물에 불려서 통통해진 표고버섯의 물기를 짜고, 딱딱한 기둥 부분은 잘라낸다.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간장과 매실액, 약간의 물을 넣고 졸이듯이 볶아준다. 마지막에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통깨도 솔솔 뿌려주면 끝이다. 이렇게 간단할 수가. 그동안 육수 우리는 정도로만 썼었는데 왜 진작 이렇게 해 먹을 생각을 못 했던 걸까. 저걸 언제 다 먹지 하며 냉장고에 깊숙이 방치해놨던 게 후회되었다.

고소하고 달고 짭조름한 냄새가 집안에 퍼져서일까. 어느새 옆에 다가온 남편이 한 개만 먹어보면 안 되냐고 아이처럼 졸랐다. 원래 먹성이 좋은 편도 아닌데 이건 맛있는지 '하나만 더' 하면서 계속 집어먹었다. 남편이 너무 좋아해 준 이 반찬 덕분에 집에서 밥해먹는 횟수도 늘어났다. 그렇게 자주 밑반찬으로 해 먹으니 그 많던 표고버섯이 금방 떨어졌다. 그래서 지난 명절에는 내려가서는 시댁에서 표고버섯을 또 한 무더기 가져왔다. 어머니가 챙겨가라고 하실 때마다 아직 많이 있다며 마다했던 내가 표고버섯을 가져가겠다고 하니 조금 놀라셨다. "OO 씨(남편)가 이걸로 반찬 해주면 정말 잘 먹어요 어머니." 하고 설명하니 기뻐하시며 더 좋은 품질의 버섯으로 가져가라고 듬뿍 챙겨주셨다. 이렇게 늘 더 주고 싶어 하시는 우리 어머니, 이 음식을 할 때마다 생각난다. 어머니께서 주신 재료로 내가 만들어준 반찬을 타지에 사는 아들이 제일 좋아하고 잘 먹는다니 얼마나 기쁘셨을까. 그러고 보니 죄송하게도 정작 어머니께는 만들어드린 적이 없는 것 같다. 문득 어머니도 함께 전에 갔던 코스 그대로 마감산과 온천, 이 맛을 처음 알게 된 사찰음식점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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