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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J Nov 07. 2021

11-2. 잉카 왕의 별장과 동심원의 모라이

[성스러운 계곡투어]


색감이 고운 천연 염색


새 아침이 밝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판초를 걸치고, 아르마스 광장으로 향했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우리의 여행길을 축복이라도 해주듯 태양은 눈부시게 빛났고, 하늘은 쾌청했다. 언제 흐렸냐는 듯 날씨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덕분에 흥이 한층 더 올라갔다. 커다란 배낭이 무겁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 만큼 흥겨웠다. 여행사 앞에서 모여 10분 정도 기다린 후,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얼마 이동하지도 않았는데, 기념품 가게로 보이는 곳에서 하차했다.


전통 의상을 착용한 현지인이 천연 염색과 잉카 전통 샴푸를 제작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면서 직접 시연을 했다. 선인장, 옥수수, 여러 곡물이나 흙 등 자연 재료로부터 색감을 추출해낸 다음, 가늘게 뽑아낸 알파카 털에 색을 입히고 뭉쳐서 실뭉치를 만들었다. 많고 많은 실 중에 알파카 털을 쓰는 이유는 색감이 잘 물들고, 오래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천장에 달려 있는 실뭉치들은 색이 선명하고 알록달록한 색감이 예뻤다. 인위적으로 색을 넣은 제품과는 확연히 다른 질감이 느껴졌다. 



천연 염색, 색과 재료들
천연 염색 시연중



관람을 마치고 자유시간을 가졌다. 천연 염색한 실뭉치로 만든 기념품들이 많았는데, 쿠스코 시내 기념품 샵에서 파는 상품보다 훨씬 품질이 좋아보였고, 그만큼 가격도 비싼 편이었다. 기념품을 둘러보다 단체로 팔찌를 구매했다. 나는 여기에 더해 붉은색 모자를 하나 더 구매했다. 살까 말까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덥석 집어 들었다. 전시장에 걸려 있을 때는 멋있어 보였는데, 모자를 써보니 썩 그렇게 예쁘진 않았다. 때마침 붉은색 판초를 입고 있었던 터라 모자를 쓰고 보니 왠 무당벌레 한 마리가 보였다.



잉카 왕의 별장, 친체로


이제부터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되었다. 밴을 타고 쿠스코 외곽 지역에 위치한 친체로로 향했다. 매표소 앞에서 내린 우리는 각자 티켓 한 장씩 받았다. 이 티켓은 성스러운 계곡 투어를 마무리할 때까지 지니고 있어야 하는 종합티켓으로, 특정 관광지에 방문하면, 펀치로 구멍을 뚫어서 입장했음을 확인받는 과정을 통해 티켓 확인이 이루어졌다. 티켓에는 자신의 이름을 적는 칸이 있고, 그 아래 티켓을 받은 날짜가 찍혀 있었다. 워낙 많은 관광객이 찾는 투어인지는 몰라도 작은 티켓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였다. 관광지에 다녀와도 티켓을 모아두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기분 좋은 득템이었다.



성스러운 계곡투어 티켓



우리 앞에 놓인 건 오르막 골목길이었고, 그 길을 따라 쭉 올라가야 했다. 비니쿤카를 다녀온 우리에게 이런 오르막길쯤이야 이제는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여전히 호흡이 거칠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는 힘들지도 않았고 고산병 증세로 인한 어지럼증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길바닥은 ‘쿠스코’스러운 느낌(도로 곳곳에 돌이 박혀 있음)이 가득 했고, 깨끗하게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오르막을 올라 작은 광장을 지나니 드넓은 초록빛 들판과 돌담, 계단식 모양의 산이 눈에 들어왔다. 뻥 뚫린 풍경이 아주 시원시원했다. 마치 제주도의 푸른 초원을 가져다 놓은 듯 바라보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저 멀리 고산에 구름이 걸려 있었는데, 산신령이 살고 있을 것처럼 신묘한 분위기가 서려 있었다.





산의 경사면 부분은 계단식 구조로 네모 반듯하게 정비되어 있었고, 흙이 흘러 내리지 않도록 돌담을 쌓아 놓았는데, 오랜 세월을 견뎌온 견고함이 느껴졌다. 그 옆에 큼지막하게 세워진 돌담을 유심히 살펴보니, 쿠스코 시내에서 보았던 12각돌의 재질과 같은 돌들로 축조되어 있었다. 도대체 그렇게나 거대한 바위를 어디에서 가지고 왔는지, 또 어떻게 그걸 운반하고, 조각한 다음 짜맞출 수 있었던 건지 궁금한 것 투성이였다. 잉카인에게는 비밀스럽고 신통방통한 능력이 있었던 걸까?





친체로는 잉카 제국 왕의 휴양지로 사용된 곳이라고 한다. 안쪽으로는 고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천연 요새 역할을 하고 있었고, 푸른 들판과 하늘이 탁 트여 있어 풍경을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했다. 경치를 감상하고 있자니, 잉카 왕이 왜 이곳을 휴양지로 정하고, 별장을 지었는지 납득이 갔다.



친체로의 들판



친체로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풍경은 감상하는 맛이 있었다. 이곳은 쿠스코 특유의 멋과 운치를 잘 보존하고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처럼 느껴졌다. 소박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에 마음이 편안했다. 도시의 치열한 경쟁 속에 찌든 현대인에게 치유와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친체로에서 내려가는 길



뱅글뱅글 신기한 모라이


이곳은 동심원의 계단식 구조로 된 독특한 지형이 돋보이는 장소다. 잉카 시대에는 농업기술 연구소의 역할을 했던 곳으로, 각 고도에 따른 온도와 배수 정도에 따라 어떤 작물이 잘 자라는지 실험을 통해 척박한 환경에서 가장 효율적인 농사법을 찾고자 했다고 한다. 잉카인의 과학 기술이 돋보이는 지역이다. 멀리서 보니 원형으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계단식 구조로 지어진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가까이 내려가서 중심부에서 위를 올려다보고 싶었지만, 여전히 복원 작업이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모라이 내부에 접근할 수 없었고, 그저 멀리서 내려다 봐야만 했다. 층 간의 간격은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을 정도로 높아 보였다. 



모라이 입구에서 본 구름덩어리
동글동글 모라이



모라이를 자세히 보니 곳곳에 돌무더기가 보였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자연재해로 유실된 부분을 복원하기 위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복원하기가 어려워 수년째 진행 중이라고 했다. 엄청난 지식혁명과 과학 기술의 발전을 거쳐왔음에도 21세기 현재까지도 잉카인의 건축 기술을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하다니.. 그 당시 잉카인의 지혜와 기술력이 고도로 발전된 수준이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또한 어떻게 그러한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30분밖에 없었기에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채 서둘러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모라이는 현재 복원작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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