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오른팔, 그녀의 통역사
#11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엄마를 위하여
누군가와 같이 걸을 때마다 오른쪽을 선호한다. 자동차가 왼쪽에서 지나가는지 오른쪽에서 지나가는지는 상관없다. 누군가의 오른쪽에 서서, 나의 왼팔을 누군가의 오른팔과 부대끼며, 그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마도 좋아함보다는 익숙함에 가깝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어느 날 아침, 매일 아침밥을 차려주던 엄마가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아빠는 엄마가 몸이 아픈 것 같다고 했고 나는 걱정이 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단 하루의 사건으로 끝날 줄 알았던 그날 이후로 엄마는 갑자기, 예고 없이, 수시로 찾아오는 고통과 싸우기 시작했다.
엄마는 세상이 빙빙 돈다고 했다. 도저히 어지러워서 움직일 수가 없다고 했다. 귀에서는 이명이 들리고 구토와 설사를 반복했지만 손을 쓸 수 없었던 그녀는 자신을 죽여달라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이제는 담담하게 말하는 이야기지만, 그때의 중학생 소녀에겐 혼란스러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4년간 시골 병원을 떠돌며 난치병을 앓던 엄마는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뇌종양을 발견해 수술을 받았다. 수술 이후 고통은 사라졌지만 후유증은 남았다. 뇌신경을 건드린 탓에 얼굴엔 마비가 왔고 몸의 균형을 잡는 운동을 필사적으로 해야만 했다. 또 하나, 엄마는 왼쪽 청력을 잃었다.
마음과 다르게 처지는 눈과 삐뚤어지는 입꼬리, 들리지 않는 왼쪽 귀와 소음에 예민해진 오른쪽 귀. 그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오른쪽 귀가 상대방에게 향하도록 고개를 틀어야 했고 "내가 왼쪽 귀가 안 들려서 이쪽으로 조금만 크게 얘기해줘요"라고 당부하며 본인의 치부를 드러내야만 했다. 거울을 보는 엄마의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나는 엄마의 오른쪽에 서야만 했다. 남들보다 절반의 소리를 듣는 그녀에게 소리를 더해주기 위해, 그리고 자신감을 더해주기 위해. 그녀의 오른편에서 그녀의 오른쪽 귀에 대고 말하기를 생활화했다. 같은 언어로 나누는 대화에서도 나는 마치 통역사처럼 상대방이 말한 것을 엄마에게 한 번 더 말해주곤 했다. 제3자가 보기엔 의아한 상황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힘을 합쳐 과거와 달라진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
길을 나설 때 언제나 먼저 엄마의 오른쪽에 선다. 가끔 잊어버리고 왼쪽에 서다가도 다시 오른쪽으로 자리를 바꾼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고마워했다. 나는 기꺼이 엄마의 왼쪽 귀가 되어주고 그녀의 오른팔*이 되겠노라 다짐한다. (*가장 가까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도와주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오늘따라 왼팔이 서리다. 엄마의 오른팔에 나의 왼팔을 끼고 함께 걷고 싶은 날이다. 나는 오늘도 엄마의 오른쪽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