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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Apr 13. 2023

나는 나비





언제부터였까…? 내 취향이 사라진 게.

언제부터였을까…? 엄마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한 게.

거울 속 나는 늘 이상했고 엄마 앞에 선 나는 언제나 부자연스러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의 석연찮은 눈빛이나 표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엄마의 눈으로 바라본 내 남편은 한심했고 엄마의 눈으로 바라본 내 살림은 초라하고 볼품없었다.


"강서방 바지 그거 네가 산 거니? 마른 사람이 그렇게 꼭 맞는 바지를 입으니 더 없어 보이는구나."

안다. 나도.

하체가 유난히 마른 체형인 남편에게 아무 바지나 사서 입히면 안 되는걸.

나름 고심하며 산 바지가 어울리지 않지만 이미 환불가능한 날짜를 놓쳐서 그냥 입고 다니는 건데 그렇게 콕 집어서 얘길 안 해도 되는데 말이다.

아이의 저렴이 점퍼를 보며

"그거 누가 사준 거니?" 하며 묻자 아이는 그랬다.

"엄마가 사준 건데요 엄청 따뜻해요. 할머니!"

자랑스럽게 대답하는 아이 앞에서 차마 뭐라 하진 않았지만, 이것도 옷이라고 사 입히니? 하던 그 눈빛을 잊지 못한다.


식구들의 차림새며, 아이들 식단이며 내 살림 방식까지 엄마 마음에 쏙 드는 구석은 없었다.

매일 술을 마시고 밤새 담배 피우느라 현관을 들락거리는 남편을 못 견뎌하며 분노했다.

어디 남자가 없어서 저런 인간을 만났느냐며 화나는 대로 나에게 퍼부었다.

그것도 모르는 사실이 아니다. 내 결혼인데 내가 왜 모르겠는가….


엄마의 비난에 나는 점점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의 결혼과 살림살이와 육아와 그 모든 것에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다못해 쇼핑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분명 혼자 하는 쇼핑인데 나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지나가다 우연히 맘에 드는 옷을 보고도 선뜻 결제하지 못했다. 그 옷이 진짜 괜찮은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눈을 씻고 봐도, 보면 볼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다. 급기야 진땀이 흐르고 가게 주인 눈치도 보이고 엄마의 목소리까지 환청처럼 들려온다.

"무슨 그런 옷을 다 샀니? 눈도 참 이상하구나."

"어머…. 이건 잘 샀네. 너한테 잘 어울린다 얘."

어떤 말을 해줄지 헷갈렸다.

결국, 도망치듯이 매장을 빠져나오거나 아니면 결제를 하거나 둘 중 하나지만 둘 중 어떤 걸 해도 개운치 않았다. 그렇게 결제한 옷은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입고 다녔다. 엄마 표정이 시원치 않거나 아무 말이 없으면 그걸 입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하는 게 그렇지 뭐….

쇼핑을 안 하고 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코칭을 받게 되었다.

그날, 나는 엄마에 대한 내 감정이 어떤 것인지 낱낱이 알게 되었다. 그렇게 복잡 미묘한 줄은 몰랐다. 그 감정들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보고 그것들이 차지하는 크기를 숫자로 표현해 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의 크기를 내 마음대로 줄이고 키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에겐 이 사소한 훈련마저 쉽지 않았지만 해보고 나니 깨달음이 왔다. 그동안 나는 엄마에 대한 뿌리 깊은 죄책감으로 옴짝달싹 못하고 철저하게 조종받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내 안에 나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내 마음은 이미 내 것이 아니어서 무엇하나 혼자 결정 내리지 못하고 자꾸 누구에게 허락받아야 할 것 같은 강박증에 시달렸다. 결국 이 간단한 훈련 하나도 쉽지 않은 지경이 된 것이다.

코칭하는 분의 질문들에 답하며 나는 진심 엄마로부터 자유로워지길 원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미션을 받았다. 내가 원하는 그걸 상상하며 쇼핑을 하라고 했다. 자유롭게!



그렇게 긴 시간의 상담이 끝나고 쇼핑몰로 향했다.

무겁게 짓누르던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나는 훨훨 나는 나비처럼 익숙한 그곳에 사뿐히 도착했다.


어둡던 마음에 반짝 불이 켜지는 순간이었다. 홀린 듯이 청바지와 봄 점퍼를 샀다. 아무런 고민도 고통도 없이. 거울 속 내가 맘에 들었다. 즐거운 쇼핑이 오랜만이라 감격스러웠다. 미친 여자처럼 정신없이 쇼핑몰을 헤집고 다녔다.

옷이 그저 옷으로 보이기 시작하며 아! 저 옷 참 이쁘네 하는 감탄도 절로 나왔다.


구두 파는 가게에서 반짝이는 구두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눈물이 났다.


반짝이는 것들이 이렇게나 예뻤던가….


흐르는 눈물에 씻긴 걸까? 항상 내 시야를 가로막았던 정체 모를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음을 가슴 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 모른다 그날….

심봉사가 눈 뜬 기쁨이 이랬을까…. 오랜만에 찾은 내 감각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고 웃었다.







이제 나는 거울 속 내 모습에서,

소박한 살림살이에서, 쇼핑몰의 수많은 물건 속에서 더는 엄마를 떠올리지 않는다.

이제 거기엔 완벽하게 혼자인 내가 있다.

조금 지쳐 보이지만 고요해진 나를 보며 오랜만에 안도의 숨을 쉬어본다.

소란하던 주변도 어느새 질서가 잡히고 그제야 나는 온전히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코칭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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