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나는 늘 이상했고 엄마 앞에 선 나는 언제나 부자연스러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의 석연찮은 눈빛이나 표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엄마의 눈으로 바라본 내 남편은 한심했고 엄마의 눈으로 바라본 내 살림은 초라하고 볼품없었다.
"강서방 바지 그거 네가 산 거니? 마른 사람이 그렇게 꼭 맞는 바지를 입으니 더 없어 보이는구나."
안다. 나도.
하체가 유난히 마른 체형인 남편에게 아무 바지나 사서 입히면 안 되는걸.
나름 고심하며 산 바지가 어울리지 않지만 이미 환불가능한 날짜를 놓쳐서 그냥 입고 다니는 건데 그렇게 콕 집어서 얘길 안 해도 되는데 말이다.
아이의 저렴이 점퍼를 보며
"그거 누가 사준 거니?" 하며 묻자 아이는 그랬다.
"엄마가 사준 건데요 엄청 따뜻해요. 할머니!"
자랑스럽게 대답하는 아이 앞에서 차마 뭐라 하진 않았지만, 이것도 옷이라고 사 입히니? 하던 그 눈빛을 잊지 못한다.
식구들의 차림새며, 아이들 식단이며 내 살림 방식까지 엄마 마음에 쏙 드는 구석은 없었다.
매일 술을 마시고 밤새 담배 피우느라 현관을 들락거리는 남편을 못 견뎌하며 분노했다.
어디 남자가 없어서 저런 인간을 만났느냐며 화나는 대로 나에게 퍼부었다.
그것도 모르는 사실이 아니다. 내 결혼인데 내가 왜 모르겠는가….
엄마의 비난에 나는 점점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의 결혼과 살림살이와 육아와 그 모든 것에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다못해 쇼핑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분명 혼자 하는 쇼핑인데 나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지나가다 우연히 맘에 드는 옷을 보고도 선뜻 결제하지 못했다. 그 옷이 진짜 괜찮은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눈을 씻고 봐도, 보면 볼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다. 급기야 진땀이 흐르고 가게 주인 눈치도 보이고 엄마의 목소리까지 환청처럼 들려온다.
"무슨 그런 옷을 다 샀니? 눈도 참 이상하구나."
"어머…. 이건 잘 샀네. 너한테 잘 어울린다 얘."
어떤 말을 해줄지 헷갈렸다.
결국, 도망치듯이 매장을 빠져나오거나 아니면 결제를 하거나 둘 중 하나지만 둘 중 어떤 걸 해도 개운치 않았다. 그렇게 결제한 옷은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입고 다녔다. 엄마 표정이 시원치 않거나 아무 말이 없으면 그걸 입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하는 게 그렇지 뭐….
쇼핑을 안 하고 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코칭을 받게 되었다.
그날, 나는 엄마에 대한 내 감정이 어떤 것인지 낱낱이 알게 되었다. 그렇게 복잡 미묘한 줄은 몰랐다. 그 감정들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보고 그것들이 차지하는 크기를 숫자로 표현해 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의 크기를 내 마음대로 줄이고 키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에겐 이 사소한 훈련마저 쉽지 않았지만 해보고 나니 깨달음이 왔다. 그동안 나는 엄마에 대한 뿌리 깊은 죄책감으로 옴짝달싹 못하고 철저하게 조종받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내 안에 나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내 마음은 이미 내 것이 아니어서 무엇하나 혼자 결정 내리지 못하고 자꾸 누구에게 허락받아야 할 것 같은 강박증에 시달렸다. 결국 이 간단한 훈련 하나도 쉽지 않은 지경이 된 것이다.
코칭하는 분의 질문들에 답하며 나는 진심 엄마로부터 자유로워지길 원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미션을 받았다. 내가 원하는 그걸 상상하며 쇼핑을 하라고 했다. 자유롭게!
그렇게 긴 시간의 상담이 끝나고 쇼핑몰로 향했다.
무겁게 짓누르던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나는 훨훨 나는 나비처럼 익숙한 그곳에 사뿐히 도착했다.
어둡던 마음에 반짝 불이 켜지는 순간이었다. 홀린 듯이 청바지와 봄 점퍼를 샀다. 아무런 고민도 고통도 없이. 거울 속 내가 맘에 들었다. 즐거운 쇼핑이 오랜만이라 감격스러웠다. 미친 여자처럼 정신없이 쇼핑몰을 헤집고 다녔다.
옷이 그저 옷으로 보이기 시작하며 아! 저 옷 참 이쁘네 하는 감탄도 절로 나왔다.
구두 파는 가게에서 반짝이는 구두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눈물이 났다.
반짝이는 것들이 이렇게나 예뻤던가….
흐르는 눈물에 씻긴 걸까? 항상 내 시야를 가로막았던 정체 모를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음을 가슴 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 모른다 그날….
심봉사가 눈 뜬 기쁨이 이랬을까…. 오랜만에 찾은 내 감각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