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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기세상 May 22. 2024

싱글 워홀러에서 부부 워홀러(2)

영어 초짜 아내의 리얼 워홀 경험기



"If you want to stay with your wife in the staff accommodation on Hamilton Island,

your wife needs to be an employee too"


해밀턴 섬으로 오기 하루 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Amy에게 전달받았다.


그렇다. 해밀턴섬의 직원숙소는 오직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다는 내부 규정에 따라 와이프와 함께 섬에서 살기 위해서는 취업을 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아내의 영어실력은 직원으로 채용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정도였고 인터뷰도 불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둘이 같이 지내기 위해서는 와이프도 채용 면접을 통과해야만 했다. 호주에 온 이래로 최대의 난관에 부딪혔다. 나는 고민에 고민한 끝에 Amy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면서 나의 상황을 잘 설명했다. 채용되면 최대한 내가 붙어 다니며 언어로 인해 업무에 방해가 가지 않도록 하며 빠른 시일 내에 동료들과 적응할 수 있도록 내가 케어를 잘하겠다는 내용으로 메일을 보냈다.


"Sam, I understand. We'll also proceed with hiring your wife, so come to Hamilton Island together."


고대하던 답변을 Amy로부터 받는 순간 또 한 번의 희열을 느꼈고 Amy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Amy는 이런 나의 사정을 잘 이해해 주었으며 와이프가 입사 후에도 최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게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적응할 때까지 최소한의 근무시간과 근무일에도 가능한 내가 파트너가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정말 워홀러에게 이런 대우는 상상하기도 힘든 파격적인 조건을 Amy는 흔쾌히 도와주었다.


Amy가 나에게 이런 도움을 주는 이유가 있었다. 1년 전 해밀턴 다른 근무지에서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House Keeping 대행 회사의 채용 담당자인 Amy가 현지 친구의 추천으로 나를 채용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때 극성수기로 정말 성실한 워크홀릭 직원이 필요하던 때 내가 추천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당시 셰프 보조 업무에 육체적 부담과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이런 제의가 반가웠고 흔쾌히 Amy 회사로 이직하여 일을 했던 경험이 있었다. 나와 Amy의 이런 관계는 와이프에게 호주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호주 퀸즐랜드 주, Great Bareer leef로 유명한 Whitsunday 제도에 있는 대표적인 섬 Hamilton 섬에서 우리 부부는 워홀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워홀러들에게 섬생활은 일상 그 자체가 낭만과 힐링이 되는 삶이다. 나 역시 그런 감정과 기분을 느끼며 지내왔고 그 경험을 와이프에게도 경험시켜주고 싶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직원이 되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지금까지 아내에게 미안한 부분으로 남아있지만 아내는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젊은 시절 한 번쯤 꿈꿔보는 호주 워홀 경험을 잠시나마 해볼 수 있었으니 좋았다고 한다.


우리 부부의 섬 생활은 특별할 것이 없는 단조로운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근무가 있는 날에는 퇴근 후 해변가가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서 한국식 저녁밥상에 병맥 하나를 들이키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쉬는 날이면 운동삼아 해밀턴섬의 전망대를 올라 탁 트인 섬의 전경을 바라보며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느낄 때면 우리가 정말 호주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또 하나의 재미는 쇼핑이나 내륙 나들이를 위해서는 페리를 타고 30분 이상 나가는 여정이다. 보통 여객선의 루프탑 좌석에 앉아 이동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가끔 바지선(물자수송선)을 무료로 이용하는 혜택도 누릴 수 있었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의 대부분은 유럽이나 호주, 뉴질랜드 출신으로 나 역시 그들과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와이프와 이곳을 다시 찾은 후 한동안은 와이프의 통역 역할을 하며 적응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말하기와 듣기가 거의 되지 않는 상태에서 동료들과 친해지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섬생활의 가장 좋은 점은 파티와 모임이 일상이다. 우린 동료들과의 소통향상을 위해 이 부분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항상 모임에 참석했고 한 달이 지날 때쯤, 와이프는 부족한 언어능력에도 불구하고 눈칫밥이 쌓여 어느새 리스닝 능력이 좋아지고 한두 단어로도 소통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Hey Sandy, Let's grab a beer after work!"


와이프 영어 이름은 Sandy인데 일하는 도중 갑자기 Sebastian이 말을 걸어왔다. 와이프의 표정이 순간 경직되었지만 금세 알아차렸는지 "beer good!"이라고 맞받아쳤다. 처음 이 섬에 왔을 땐 영어도 못하는데 호주인들의 발음까지 알아듣는데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grab을 몰라도 beer 단어만 듣고도 맥주 한잔 하자는 이런 상황들을 곧잘 받아쳤다. 이래서 한국인이 없는 외국에 혼자 던져지면 생존을 위한 영어 실력이 향상될 수밖에 없구나 싶었다. 이렇게 Sandy의 영어실력은 가랑비에 옷이 젖듯 점점 나아졌고 해밀턴을 떠날 시점에서는 내가 옆에 붙어있지 않아도 현지인들과 소통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회사 매니저, 동료들과 함께 별장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는 모습.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이 곳에서 개인 보트를 타고 일을 하러 가는 모습.


우리에게 있어 해밀턴 섬의 바닷가는 특별했다. 짧은 여행으로 잠시 다녀가는 관광객들과는 달리 우리에게 이 바닷가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하루하루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이곳에서 혼자 지낼 때는 외로움과 심심함 속에서 지냈고 혼자만의 생각에 자주 잠기곤 했지만 아내와 다시 찾은 이곳 생활은 '호주 한 달 살기' 같은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아름다운 우리들만의 추억으로 기억되는 곳이었다. 샌드위치와 간식, 비치타월을 챙겨 나가면 그날 하루는 최고의 하루가 되는 이곳에서의 기억은 내 마음속에 비타민 같은 존재로 녹아있다. 


201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매니저인 Amy는 회사소유의 별장에서 멋진 파티를 계획했다. 모든 직원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멋진 추억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파티 한 달 전부터 모두 설레어 매일 파티 이야기만 떠들어댔다. 우리가 처음 이곳에서 일을 시작할 때는 이방인 같은 느낌으로 어색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점점 서로에 대해 가까워지면서 제한적인 언어실력도 극복이 되었으며 어느새 우리는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호주생활에서 '파티문화'는 영어실력을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뿐만 아니라 호주 문화와 분위기를 느끼고 다양한 국가에서 온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 속에서 언어장벽으로 어색한 관계의 사람들과도 파티를 통해 금세 친해질 수 있고 단어 한마디라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파티를 통해 실현가능해지니 말이다. 호주에 처음 정착하여 혼자 지낼 때나 와이프와 함께 다시 찾은 호주에서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어나가기까지 '파티'를 통해 호주를 이해하고 손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해밀턴 섬의 해변가는 집 앞마당 같은 존재로 쉬는날이면 이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가끔 육지로 나가기 위해 이용했던 Fantasy Ferry 선과 바지선.




우리에게 드디어 호주 생활을 마무리해야 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워홀 비자기간이 한 달여 남은 시점에서 우리는 한국으로 들어가기 전 시드니에서 한 달 살아보기로 했다. 지역은 Chatswood (채스우드)로 정하고 Amy에게 퇴사 의사를 밝혔다. 정이 많았던 Amy는 너무 아쉬워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정이 든 동료들과 헤어질때는 언제나 힘든 순간이었다. 하지만 멋진 추억과 경험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다시는 워킹비자로 돌아오지는 못하겠지만 아름다운 섬을 가족들과 함께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시드니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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