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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얀 Dec 05. 2022

이 여인의 집은 어디인가

길치의 대만 상륙



vol 4. 이 여인의 집은 어디인가







순조로웠다.

국광 버스(공항에서 타이베이 시내까지 오는 공항버스)에서 내렸다. 타이베이 처잔 역까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mrt(지하철)를 타고 다시 숙소가 있는 역으로 이동했다. 지하철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 어려움이 없었다. 참, 순조로웠다.

한여름의 대만이란, 덥다. 밖으로 나오니 대만의 습한 날씨가 격한 인사를 한다. 숙소 빨리 가자.지도와 주소를 척 펼쳐 한참 본다.흐음, 모르겠다. 캐리어를 끌고 걷기 시작했다. 주변 주소를 보다 보면 아마 촉이 올 것이다. 두리번두리번 좀 걸었다. 그리고 나는, 똥촉이네.


서둘러 행인 1 만났다. 주소를  집어 물었다.

"여기에 가고 싶어요. 이곳이 어디인지 말해줄  수 있나요?"

"......"


영어 불통은 공항에서 시내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유심히 주소를 보고는 한 방향을 가리켰다.

"고마워요!"(쎼쎼)

상대도 웃어준다. 헤헤.


그리고 얼마 후, 행인 2에게 말을 건다.

"실례해요. 나 여기 가고 싶어요. 어디로 가야 하죠?"

"아...... 잘 모르겠는데요."

행인 2가 지나가는 아줌마, 행인 3을 붙잡는다. 이 주소 아느냐, 대충 런 걸 묻고 있는 것 같다. 모르는 눈치다.


행인 4, 행인 5...... 행인 8...

귀찮아하거나 무심한 대만인은 없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서도 영어 못해요, 하고 가버리는 사람 역시 없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한국인을 어떻게든 도와주려 했다. 애석하게도 길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모른다고 그냥 지나치는 이도 없다. 다들 나름으로 애를 써줬다. 아마도 저 쪽 인 것 같다, 며 되려 미안한 얼굴을 하는 착한 사람들에게 어두운 표정을 보일 수는 없다.


곧 찾을 수 있을 것처럼,

"쎼쎼!"

하고 웃었.




사실, 숙소 예약은 99프로의 충동과 1프로의 이성으로 이루어졌다. 침구가 예술이었다. 인터넷으로 본 이불이 마치 호텔의 것처럼 하얗고 포근해 보였다. 비용, 호텔 감성을 욕망하는 무뢰한에게 딱이었다. 그 어렵다는 싸고 좋은 숙소를  만 거지.


역에서 가까운 숙소야 당연히 있었다. 역 앞 컷 1분, 세계의 배낭여행객이 모인다는 게스트 하우스도 있었다. 매일 밤 파티가 열리고, 처음 만난 사람 모두가 친구가 된다는 떠들썩하고 익사이팅한 곳이라는데! 문제는 내가 그런 곳을 전혀 안 좋아한다는 데에 있었다. 사람 가리고, 예민하고, 강한 아싸의 기운을 풍기는 나는 '뭐 이런 끔찍한 데가 다 있어!', 하고 황급히 그 멋진 숙소들을 제외했다고.


역에서 먼 것이미 알고 있었다. 걸음이 잰 편이니 빨리 걸어 시간 손해를 줄이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산책도 좋아하는걸.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은 단점이 될 수 없잖아.

몰랐다. 숙소를 찾느라 애 먹을 수 있다는 생각 해야 했다.  발이 무척 빠르지, 그런 생각을 할 게 아니라.




이제, 도움을 준 현지인의 수 세기를 포기한다. 동네 사람을 다 만나고 있다. 커플, 할아버지, 친구 무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 만남이 이어졌다. 가라는 데로 이리저리 몸뚱이를 움직인다. 그리하여 한 시간 넘게 헤맸다. 온통 말에 의지할 뿐, 현재 위치에 대한 아무런 자각이 없다.  숙소는 대체 어디인가.


열기에 숨통이 조이고, 목은 쩍쩍 갈라지고, 옷이 들러붙어 찝찝하다. 대만을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여름만 피하면' 괜찮다고 한다. 다음에는 남의 말을 들어야 할 때를 아는 지혜로운 인간으로 거듭나야지. 화려한 치장은 아니어도 적당히 예쁜 모습으로 현지인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과욕은 아닐진대. 공항에서 덕지덕지 바른 선크림이 죄다 흘러내리는 것 같다. 얼굴이 어떨지... 어우, 상상만으로도 무섭다.



그리고, 를 만난 것은 한 건물 앞이었다.

" 실례합니다. 제가 이곳을 찾고 있어요. 혹시 어딘지 알고 계실까요?"

" 아, 알 것 같은데...... 어디서 왔나요?"

오,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잖아.

"한국에서 왔어요."

"일단 따라와 봐요."

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순간, 멈칫했다. 초면에... 그냥 따라오라고? 당황하긴 했지만 건물 안에는 직장인들로 보이는 사람이 많았다. 잠시, 여기서 내가 뉴스에 날 일이 있을지 가늠한다. 이내 조금 떨어져 순한 양처럼 쫓아갔다. 그리고 도착 순간, 놀라 심장이 쪼그라들 뻔했다.


증권거래소, 같았다. 사람이 엄청 많고, 층고가 높고, 벽면을 채운 숫자는 실시간으로 바뀌고 있었다.는 본인의 책상에 빠르게 앉아 내 주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옆자리의 동료에게도 물어보더니, 종이를 꺼내 쓱쓱 적어가며 모니터를 뚫어지게 본다. 료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힐끔 봤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사람들의 시선 한 몸에 받으며 쭈뼛쭈뼛 서있다. 여기까지 도와주길 바란 건 아니었어. 얼굴이 타들어 간다고 하지, 딱 그 문장이 글 속에서 두더지처럼 튀어나와 내 얼굴을 마구 주어 패고 있다. 누가 봐도 자산이 있거나 주식에 관심이 있어 온 행색이 아 것이 괴롭다. 근무 시간에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에 캐리어를 쓸데없이 꽉 쥐고 그를 대신해 열심히 눈치를 봤다. 그리고 한참을 끄적거리던 그가 마침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요. 멀지 않은 것 같아요."


와, 직접 그린 지도잖아. 현 위치에서 내 숙소까지 그려진 지도에는 찾기 수월하도록 편의점 등의 포인트까지 신경 써 표시되어 있었다. 그 성의와 능력치는 놀라웠다.


"와. 감사해요! 저 이제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은 너무나 친절한 사람! "

숨겨지지 않는 감동과 감사함을 양껏 발사했다. 그는 씩, 웃는다. 그리고 아래층까지 다시 나를 데려다주었다.

" 조심히 가요. 대만에서의 여행이 즐겁길 바랍니다."


하아, 좋은 사람.



그의 지도는 나를 주택가 골목으로 안내했다. 도중 아까 나를 도와주었던 분과 마주치기도 했다. 그 얼굴은 한결같이 '헉, 이 여자가 아직도 길을 못 찾았어.' 하는 안타까움이 가득 배어있다. 부끄럽구나. 그리고  역시 몹시 안타까웠다. 받은 도움이 충분했다고 말하고 었는데. 세상에 하나뿐인 멋지고 따뜻한 지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 후에도 행인을 만날 때마다 더블체크를 했다. 곤죽이 되어 이 이상 실수를 하면 웃음보가 사라질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숙소 앞에  있다. mrt에서 내리고 두 시간이 지나있었다. 게스트하우스를 본 순간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그냥 집이었다. 파란 대문 집. 대문에 열쇠 꽂아 열고 들어가야 하는 그런 주택. 상업시설의 냄새가 전혀 없었다. 응팔의 정환이네 같은 정겨운 집. 이 집을 누가 알고 있다면 더 수상한 일이었다. 도착했다. 수십 명 대만인들의 보살핌으로 대만 첫 집, 에 왔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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