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한 편의 옥편이라

영어는 넣어 둬

by 얀얀

vol 3. 세상은 한 편의 옥편

vol 3. 세상은 한 편의 옥편이라






" 혼자 가는 건가요?"

" 아, 네."


아저씨의 질문이 훅, 들어왔다.옆자리 신사분은 일 관계로 대만을 자주 오간다 하였다. 그렇게 자주 비행기를 타는데도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고도 했다. 비행기에서 친구를 사귀기는 처음, 이라는 말이 즐거웠다. 나는 물론 모든 게 처음이었다. 아직 숙소 가는 법도 모르는데 친구를 사귀게 되다니, 숨기려고 해도 행복한 기운이 양볼을 뚫고 나갈 것만 같다.이런저런 소개와 대만에는 왜 가는지, 등의 대화가 이어지다가,


고막이 또 말썽을 일으켰다. 산에만 가면 이랬었지. 고층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이랬어. 고도가 높아지면 매번 이 모양이다. 치아교정을 할 때 의사 선생님은 내 기도가 보통사람보다 많이 좁다고 했는데 그것 때문일 거야!(물론 의학지식은 없다) 한번 먹먹해진 귀를 뚫기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귓가에 들려오는 새로 사귄 친구의 음성은 웅웅 울리고 있었다. 새 친구는 나의 이상을 빠르게 감지했다.


" 이렇게 한 번 해봐요."

" 네?"

"코를 이렇게 두 손가락으로 쥐어 막아주고, 다시 코로 숨을 크게 내 쉬면 돼요."


성난 아기 코뿔소처럼 흥흥 되기를 몇 번, 헉. 진짜 귀가 뚫렸다. 와, 이게 된다고?

친구는 그냥 씩, 웃었다.그리고 처음 혼자 여행한다는 내가 조금 걱정이 되었는지 이메일 주소를 건넨다.


" 도착하면 알 게 될 거예요. 세상은 한 편의 옥편이라는 걸."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작다. 앞사람을 따라 우르르 쫓아가다 보니 어느새 입국심사까지 끝났다.

이제 타이베이 시내로 가는 버스만 잘 타면 된다.그런데 참, 흠. 천재적인 사람 중 길치가 꽤 있다고 한다. 하나에 너무 뛰어난 나머지 다른 것들에 좀 약한 거지. 분명 어디선가 주워 들었다. 그리고 나는, 길치다. 숙명적으로 주의해야 함을 느끼고 있었다. 길눈이 어둡다, 로 급을 나눈다면 나는 어쩌면 최상위급에 랭크인 될 수도 있다.


20년을 산 동네에서도 주변에서 조금만 멀어지면 이내 길이 헷갈렸다. 어라, 이 건물이 언제 생겼대? 하며 헤매기 일쑤였다. 그런 주제에 참견에 재능이 있어 길 잘못 알려주는 일에도 능했다. 나는 늘 우리 동네의 핸드폰 서비스센터의 위치를 찾는데 애를 먹는데, 문제는 가족들이 핸드폰을 수리하러 갈 때면 항상 내가 아는 척을 한다는 데 있다. 자주 가봤기 때문에. 한 번은 보다 못한 언니가 괴물 같은 성대로 포효했다.


"야!!! 아~ 진짜~ 얘는 맨날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네. 거기 아니라고~ 이거 바보 아니야~ 아우, 짜증 나."



하아. 잘하자.




버스는 잘 탔다. 난 잘한다. 놀란 점이 있다면 생각보다 영어로 대화가 안 되었다는 것이다. 생존 영어가 통하지 않아 좀 당황했다. 나는 분명 완벽한 영어로 질문했다, 고 생각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또박또박 다시 말했다. 곤란한 얼굴이었다.

마침내 나는 소통에 성공했다. 우리는 쌍방의 완벽한 바디랭귀지로 의미 전달에 성공할 수 있었다.


대학 입학 후 큰 깨우침이 있어 영어를 공부했었다. 33000 영단어장을 미친 듯이 파고들어 동의어, 반의어에 각각 핑크빛, 초록빛 형광펜을 좍좍 그어가며 암기한 기억이 난다. 무료하기도 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취미로 토익시험을 보러 다녔다. 토익책을 따로 공부해 본 적은 없지만 성적은 괜찮았다. 한 3년 영어를 쉬다가 갑자기 시험을 봐도, 800점 후반은 거뜬했다. 900점대는 간절한 자의 것이니, 한량의 영어는 이쯤이면 되었다.


사람이 굳이 생뚱맞게 장황한 설명을 하는 것은, 뭔가 자기 잘못이 없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겠지. 나는 영어 잘했고, 내 영어문장 조합은 소박하지만 완벽했다. 그때, 옆자리 친구의 마지막 말이 뻥 뚫린 내 귓가에 다시 속삭여왔다. 그래, 맞아. 세상은 한 편의 옥편! 이라더니.





아, 혹시 그냥 발음이 구렸던 걸까.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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