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애say

#행복처럼 그리움을 따를 때

by ean
봄인가, 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와
저만치서 웃고 있다.
찡긋.
살랑대나, 봄.


물이 좋은 마을.
밤하늘 잔별이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불을 끄면 방안으로 반딧불이가 들어와 빛을 내주는,
내가 사랑하는 한 노부부가 정다움으로 사는,
어쩐지 가슴 먹먹해지는 마을.


기-인 길 끝에 자리잡은,
머-얼리 바다가 보이는 산 밑, 집. 이곳에 왔다.
기-인 길. 그 위에 어린 내가 서 있다.
이마에 비친 노을빛으로 볼이 발그레해진 채,
그 빛만큼 빨간 가방을 메고 서 있다.
삐리를 불고, 소꿉을 하고, 꽃잎 따기를 하며, 길고 긴 길을 걷고 또 걷고 있다.
내색 없이 무심하다.
끝없이 걷다 보니, 희미하게 코를 찌르는 산 내음이 먼저 온다.
조물주가 세상에 만들어 낸 모든 빛과 깔을 가진 산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마침내 밝아진다.


봄에는 다채로운 꽃들이,
여름에는 유록빛 나뭇잎들이,
가을에는 잎을 다 태운 단풍들이,
겨울에는 소복소복 쌓인 눈이,
병풍이 되어주었던 곳.
외롭고, 한편 풍요로운 곳.

불현듯 길 위에 선 어린 내가 너와 겹친다.


네가 있을 리 만무한 이곳에서, 어쩐지 나는 너를 더듬고 있다.
시공간을 넘어 너를 추억하고 있으니,
익숙했던 곳이 순간 낯설고, 또한 공허해진다.
존재 자체가 그리움을 부르고, 사랑을 부르는,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사람.
남은 시간 이곳에서, 기꺼이 행복처럼 그리움을 따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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