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PD 에세이
2020년 1월 23일
방송 프로그램 편집으로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다. 지금은 담배를 끊었지만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일정한 시간에 맞춰 나가 바람을 쐬곤 했었다. 하지만 담배를 끊은 이후로는 밖으로 잘나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더 편집에 집중이 되는 것도 아니다. ‘몰입’과 ‘산만함’이 시소질을 해대며 버리는 시간이 더 많을 때도 있다.
어느새 새벽 1시. 산만함을 몰아내고 더 몰입하고 집중했다면 퇴근했을 시간. 설 명절을 앞두고 집중이 되질 않는다. 잠시 머리를 비우러 밖으로 나간다. 오늘 오래간만에 밖으로 나왔다. 공기가 싸늘하지만 상쾌하다. 잠시 걸으며 탁구공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생각들을 하나씩 잡아본다. 어제 출근하면서 유튜브로 법정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왔다. 2003년 광주 초청 강연회 영상이었는데 법정 스님의 말씀이 바쁜 일상 속 나에게 잠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오로지 도착만을 위해 그 과정을 소홀히 합니다. 목적만을 위해서 수단을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지나간 과거, 오지 않은 미래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나요?"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아무리 일이라고 하지만 내가 나를 놓치고 산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편집하다가도 잠시 짧게라도 시간을 내 산책을 하려는 이유다. 산책을 하며 잠시 놓치고 있었던 ‘나'를 깨운다. 움츠렸던 허리를 펴고 몸을 푸니까 익숙한 소리들이 먼저 들려온다. 버스가 서는 소리와 가로수 나무 냄새 그리고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눈에 들어온다. 내 오감이 다시 서는 기분이랄까?
다들 각자의 삶으로 오늘을 살아가겠지?
삶의 '여행길'에서 나는 어디쯤 와 있을까?
무사히 잘 가고 있는 걸까?
앞으로도 잘 갈 수 있을까?
스스로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지며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문득 2016년 9월 홀로 배낭을 메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10년 동안 쉬지도 못하고 방송일을 하며 완전히 방전된 나를 다시 채우고 충전하기 위해 떠났다. 34일간 홀로 걸으며 나는 어떠한 생각들을 했었을까? 매일 20킬로미터씩 걸으며 느꼈던 그 느림의 시간들이 이제는 그리운 추억으로 남았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온전한 ‘나’를 느끼기 위해서라도 잠시라도 산책하며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