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별했던 등산화는 2012년~2014년도에 <EBS 극한직업> 프로그램을 제작을 했을 때다. 당시 카메라를 들고 힘들고 어려운 현장을 누볐다. 촬영을 나갈 때마다 항상 신었던 것이 바로 등산화였다. PD로 일하며 등산화는 꼭 산에 가야만 신는다는 고정관념을 깨게 했다. 산 약초꾼을 촬영하며 산을 오를 때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지역에서 땅 밑에서 금을 캐는 광부를 촬영할 때도, 택배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촬영할 때도, 호스피스 병동이 있는 병원 안에서도... 늘 내 손에는 카메라와 그리고 내 발에는 등산화가 함께 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어떤 촬영 현장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잠시 발밑을 보니 등산화는 어느새 낡고 투박해져 있었다. 구멍도 났고 실밥과 실밥 틈새가 벌어져 있기도 했다.
값싼 브랜드의 등산화였지만 값어치 이상의 활약을 했던 녀석이었기에 이별을 고하려고 하니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이제는 이 등산화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45미터 조명탑 위에서 일하는 사람을 촬영하기 위해 조명탑 안에 있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했다. 조명탑 안이 어둡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때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때 의지했던 것은 바로 등산화였다. 이 녀석이 사다리를 한 발 두 발 딛게 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45미터 조명탑 위로 올라갈 수 있었고 안전하게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간 갈치 잡이 배를 타고 촬영을 했을 때도 미끄러운 배 위에서 넘어지지 않고 나를 지탱해 주게 했던 것도 이 녀석 때문이었다. 그만큼 많이 의지했고 정도 들었었는데...
2년을 넘게 험한 촬영 현장을 함께 동고동락을 해서 였을까?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이 녀석과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아 슬프도다.
'너의 몸 바쳐 안전하게 나를 지켜주어서 고맙구나 잘 가거라'
두 번째 이별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였다. 2016년 9월 34일간 산티아 순례길 780KM를 걸었다. 10년 동안 방송 제작일을 하며 휴식 없이 달려온 결과는 잔혹했다. 나에게 현타와 멍 때리기를 선물했다. '번아웃 증후군'으로 4년 6개월간 다니던 제작사까지 그만두게 했다. '번아웃 증후군'은 한 가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에너지가 방전된 것처럼 갑자기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다. 방전된 내 에너지를 다시 채우기 위해 홀로 배낭을 메고 등산화와 함께 스페인으로 떠났다. 두 번째 등산화와 34일간의 머나먼 여정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이 녀석이 이번에도 나를 잘 지켜주겠지?'
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등산화와 함께 했지만 이번만큼은 좀 느낌이 달랐다. 일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여행으로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지금 이 시간이 나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나를 위해 떠났고 나를 찾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발밑에서 등산화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순례길 도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너는 이번 여행을 통해 다시 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고맙다. 등산화야. 나도 너를 믿고 780KM를 걸어보련다. 780KM. 까짓것 부산에서 신의주 거리라는데 네가 있으니까 든든하다. 첫날 프랑스 생장에서 시작된 순례길 도전이 시작됐다. 그동안 바쁘게 살며 느끼지 못한 느림의 시간들이 이어졌다. 아침 8시에 길을 나서며 해가 뜨는 풍경을 감상하고 지저귀는 새와 대화도 하고 얼굴 큰 해바라기와 인사도 했다. 지나가는 고양이에게 가족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각국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걸으며 즐거운 추억도 쌓았다. 그렇게 늦은 오후에 순례자 숙소로 들어온다. 매일 숙소에서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등산화들이 가로로 길게 줄을 지어 있었기 때문이다. 등산화의 주인이 다르듯 등산화의 생김새도 전부 달랐다. 크기와 모양 그리고 냄새까지 달랐다. 다들 어떤 사연으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
'그래 너도 걷느라 힘들었지? 무거운 나를 업고 다니느라 더 힘들었을 것 같다. 다른 등산화 친구들과도 대화도 나누고 피곤한 몸 좀 쉬거라'
시간이 흘러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도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0KM 비석이 있는 스페인 땅끝 마을인 피네스테레로 가기로 했다. 이곳은 어촌 마을인데 그림 같은 구름과 멋진 배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순례자들에게 0KM 비석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이곳에서는 갈 길이 없으며 다시 새로운 너의 길을 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이곳까지 와서 0KM 비석과 함께 인증샷을 촬영한다. 또한 이곳을 둘러보면 주인과 이별한 등산화들이 보였다. 예전부터 순례자들이 순례길을 다 걸으면 이곳에 와서 옷과 신발을 태웠다고 한다. 다시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절대 불태우지 말라고 경고 문구가 쓰여 있다.
이 땅 끝에 와서 어떤 마음으로 순례자들은 등산화와 이별을 했을까? 바다를 바라보며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 오로지 들리는 건 파도 소리와 내면의 소리뿐. 그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매일매일 자연의 작은 변화를 감지하며 아무 걱정 없이 걷기만 했던 나날들이었다.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내 인생의 전환점에서 이 길을 걸은 건 행이었고 축복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등산화와 이별을 할 시간이 다가왔다. 고맙다. 이 힘든 여정 함께 해주어서. 알레르기 증상으로 다리가 부어서 걷기 힘들었을 때 이 녀석이 위로를 많이 해주었었는데.. 또다시 이별을 해야 하는구나.
다음 날 나는 바로셀로나로 가서 새 신발을 샀고 등산화와 또다시 이별을 했다. 새 신발을 신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내 인생길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