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프로그램 편집에 대한 나의 단상

독한PD 에세이

by 독한PD



12월 28일

나는 올해 12년째 방송 프로그램 제작 PD로 일하고 있다. 지금 수일째 편집하느라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편집이 뭐 그리 어렵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편집은 구성과 영상 문법을 이용해 컷트를 배열해서 스토리를 만드는 기술적인 작업이다.

컷트 하나하나에 다 의미가 있어야 한다. PD가 현장에서 엄청 고생해서 담은 멋진 영상도 편집에서 구성 흐름상 필요 없다면 컷트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사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PD들은 본인이 고생해서 촬영했기 때문에 잘 버리지 못한다. 버리지 못하면 편집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예전에 같이 일했던 선배 PD도 편집은 '버리는 기술'이라고 했다.

방송 프로그램 편집에서 잘 버리다 보면 결국 본질의 의미만 담긴 컷들만이 남아 유기적으로 이어져 배열되고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생기는 것이다.

3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10여 일째 걷다가 배낭 안에 있는 짐을 버리기로 했다. 배낭이 무거워서다. 배낭 안에 있던 물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지금 당장 필요 없는 물건들이 많았다. 30일을 넘게 걸어야 하는데 여러 벌의 양말과 속옷 그리고 바지도 사치였다. 갈아입을 딱 한 벌의 옷과 속옷, 한 켤레의 양말만 빼고 다 버렸다. 필요 없는 물품도 버렸다.

과감하게 버리니 배낭은 전보다 훨씬 가벼워졌고 내 발걸음도 훨씬 가벼워졌다. 이렇게 쓰지도 않는 물건들을 배낭에 짊어지고 다녔던 것이다.

방송 분야에서 10년을 넘게 일하면서도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이 방송 프로그램 편집이다. 필요없는 물품들을 버렸듯이 편집 작업하면서도 잘 버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편집할 때는 오로지 여기에만 몰입한다. 여기에만 몰입되어 있다 보니 오히려 편집이 더 되질 않는다. 어떻게 편집하면 좋을지 생각하며 바람도 쐬면서 여유도 부렸으면 좋겠다.

어쨌든 꾸준히 하다 보면 편집이 쉬워지는 그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러면 배낭 안의 필요없는 물건들을 버렸던 그 가벼움으로 조금 더 여유있게

삶을 살 수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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