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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애 Dec 03. 2024

리스본에서 ㅡ 넷

28번 트램을 타고 리스본을 읽다. ​


아침 일찍 일어나 28번 트램을 타러 간다. 낮에는 대기줄이 길다고 해서 일찍 나왔더니 한산하다.

8시 6분 차를 타고 가는 길, 트램은 정말 좁은 골목길을 달린다. 어떤 곳은 집 앞이 바로 트램길이다. 집 앞에 세워 놓은 차와 부딪힐 것 같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골목길을 무사히 통과하는 여자 기사의 운전 실력이 대단하다. 마치 곡예를 보는 듯하다.

트램은 좁은 골목길을 달리기도 하지만 리스본의 여행스폿마다 정차하여 여행에 이용하기도 좋다.

28번 트램을 타 보니 리스본의 구석구석을 밟으며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골목골목이 아름답지만 생활하기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내가 살았던 성남처럼.


지도를 잃어버리다 ​


트램이 순환버스라 내가 탔던 곳에 내려줄 거라 생각했는데 낯선 곳에 내려준다,

알고 보니 편도였던 것.

그 트램을 다시 타고 집 가까운 정류장에 내렸다.

여기서 8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시티맵을 켜고 가는데 카톡 화면이 겹쳐져서 불편하다.

다시 껐다 키는 것이 편할듯해서 껐다  켰는데 유심의 비번을 입력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맞아, 이번 유심은 비번이 있었지.

그러나  비번이 적힌 종이는 호텔에 있다. 핸드폰에 찍어 놓았으나 핸드폰이 열리지 않는 지금은 무용지물이고...

갑자기 식은땀이 난다. 집을 찾아가야 하는데 핸드폰 없이 가능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일단 멀리 보이는 강변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거기에 코르메시우스광장이 있었으니..  다행히 그 생각이 맞았다

저 멀리에 아우구스타 개선문이 보인다.

휴, 다행이다.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기는 시점,

툭툭이 여자기사의 아름다운 자태가 맘에 들어서, 거리의 풍경이 멋져서 남기고 싶은 마음에 자꾸 핸드폰으로 손이 간다.

핸드폰이 안되니 여행이 심심하다.

딸아이는 아직 준비 중이다.

나는 다시 호텔 앞 광장으로 나와서 커피에 나타를 곁들이며 수아를 기다렸다.

바람이 불어오는 광장에 거리의 악사가 울리는 아코디언 소리가 정겹다.

평화롭다.

푸드코트가 모여있는 타임아웃마켓에서 점심을 먹었다.

음식점이 워낙 많아 고르기가 쉽지 않다. 12시에 개점이라 아직 안 연 가게도 있고.

어묵과 햄버거와 샐러드를 사서 가운데 탁자에 앉았다.

관광객들이 즐겨 찾아 그 넓은 공간이 벌써 꽉 찼다.

새로운 푸드코트다.


내가 사진을 못 찍는다고? ​


아센도르 비카를 찾아가는 길

골목이 참 예쁘다.

오늘로 4일째 리스본 거리를 걷고 있는데도 여전히 설레는 것이 신기하다.

세 개의 아센도르 중에 경치가 가장 예쁘다는 비카 아센도르.

예쁜 골목이 강과 어우러진 풍경이다.

그래서 리스본의 사진 스폿으로 유명하다. 딸아이도 여기서 사진 한 장은 꼭 건질 거라며 기대하고 있다.

사진 스폿답게 많은 사람들이 줄 서서 사진을 찍고 있다.

근데 딸아이가 원하는 사진이 안 나온다

내가 찍는 사진이 맘에 들지 않자 그만 찍겠다고 한다

자기가 엄마사진은 예쁘게 찍어줬는데  엄마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나?

골이 잔뜩 난 모습이다.

여기서 꼭 하나 건져주고 싶었는데...

덥기도 하고 사람들도 많고 하니 더 찍고 싶지 않단다.

특히 엄마가 노력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못한다고 하는 것이 맘에 안 든다고.

내가 그랬나?

딸아이를 통해 알게 되는 나의 모습이 많다

그게 부족한 모습이라 서글프기도 하고.

어디 가서 사진 못 찍는단 소린 안 들었는데...


굴벤키안 미술관에서 마음을 다스리다 ​


서로 골이 난 채로 우버를 타고 굴벤키안 미술관으로 갔다.

여기는 원래 내가 가고자 했던 여행코스이고 수아는 따로 공원에 가겠다 했는데 미술관 정원이 마음에 든다며 목적지를 바꾼 것.

미술관에 도착하여 수아는 정원으로 나는 미술관으로 향했다

짙은 시멘트건물의 미술관은 나지막하니 편안하다

석유사업가인 굴벤키안이 수집한 이집트 로마 동양의 유품들, 그리고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수아와의 일로 머릿속이 와글와글 했는데 고요한 공간 속에 들어오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집트 로마의 물품들을 보며 깊이 침잠하는 느낌이다

오랜 시간 이 낯선 곳에 있는 저들은 어떤 마음일까

그 영겁의 세월을 생각하면 지금 나의 이 와글거림은 아무것도 아닌 듯싶다

카펫 도자기 책 장식품 등의 유물전시관보다 그림전시가 역시 좋다

루벤스 터너 르누아르 밀레 마네 모네 등의 그림을 발견하고 그것을 알아보는 자신을 흡족해하며 그림을 눈에 담는다.

그림감상은 참 좋다

그림 속의 대상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을 짐작해 보고

그림 속의 인물의 표정을 보며 그의 마음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화가가 구현해 놓은 풍경과 색채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나도 예술인이 되어간다.

미술관밖으로 나오니 햇살과 호수가 어우러진 미술관 건물 또한 작품으로 보인다

미술관밖 철골로 된 설치물에 굴벤키안의 말이 적혀 있는데 인상적이다

자신은 몽상가였고 어려서는 천문학을 배우고 싶었다고. 그러나 아버지가 사업을 원하셨다고. 그러나 그는 아직까지 먼 수평선 ㅡ지식등에 대한 시야 ㅡ 과 관념을 추구하고 있다고.

미술관 앞 호숫가 잔디밭에 딸아이가 앉아 있다.

호수 건너편에서 그러한 딸아이를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 때문일까? 평온해진 딸아이가 이젠 가자고 전화를 해왔다.

자식과의 싸움도 칼로 물 베기인 것 같다.

전처럼 다시 다정하게 여행을 하게 되니.


리스본의 시작과 끝을 조르주성에서 ​


리스본 성당으로 가는 길에 오래된 통조림가게를 방문하였다.

통조림 통도 예쁜 데다 만들어진 연도대로 진열을 해 놓아서ㅡ1960년대부터 있는 듯 ㅡ 구매욕구를 한껏 자극한다. 거기에 친절한 청년의 말에 기분이 좋아 60유로어치나 샀다. 우리는 호갱 맞다. 하지만 포장케이스와 쇼핑백까지 예뻐서 만족스러윘다.

딸아이는 성당보다는 성당 앞을 지나는 트램에 더 관심이 있다. 성당 앞의 트램길이 여러 갈래라 교차하는 트램을 성당배경으로 촬영하면 꽤나 근사한 사진을 건질 수 있단다.

리스본에서의 여행을 시작한 조르주성에서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조르주성으로 향하는 길, 교통카드에 충전한 것이 남아 있어 버스를 탔다.

도시가 크지 않아 거의 걸어 다니다 보니 15유로 충전한 것이 아직도 남아 있다.

탁 트인 시야는 역시 조르주성이 최고다.

두 번째 방문이니 좀 더 여유롭게 앉아서 노을을 감상하게 된다.

부드러운 바람과

깊어지는 노을과

딸아이가 들려주는 음악과 함께 하는 시간.

또다시 맞이하는 심쿵의 순간이다.

일찍 내려오자 했으나 우리는 또 어둠이 내릴 때까지 성에 머물렀다.

초승달이었던 달이 볼록해지는 것을 바라보며

그만큼의 여행의 시간을 느끼며

딸아이와 손을 잡고 성을 내려왔다.

조그맣고 차가운 딸아이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저녁밥과 함께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저녁은 해물요리

문어 조개 그리고 해물밥에 에스트렐라 맥주를 곁들였다.

저녁식사시간은 딸아이와 여행의 느낌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다.

조르주성에서의 아련함을 이야기하고

더가든의 내일의 우리라는 노래에 대한 느낌을 나누었다.

나는 엄마의 마음으로 자식을 돌보는 생각을 했는데 딸아이는 자식이 엄마를 보살피는 마음으로 들었단다.

사랑이야기는 대상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듯하다

밥을 먹으며 대화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맛있음을 표현하는 딸아이의 진실의 미간을 보는 것도 좋고

그것을 보면 나도 더 맛있게 먹게 된다.

좋다.

마땅한 어휘를 찾지 못해서 좋다는 말만 나오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 여행 참 좋다.

늦은 시간에 돌아온 아우구스타거리에는 버스킹이 한창이다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학생들의 공연에 기꺼이 기부하고

기타 치며 나라별로 노래를 불러주는 아저씨의 유도에

자기 나라의 춤을 추며 맘껏 즐기는 여행객들 속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나타 마그넷과 행운을 상징한다는 수탉마그넷을 사서 돌아오는 길. 노곤한 행복이 가슴에 차오른다.


#28번 트램 #타임아웃마켓 #아센도르 비카 #굴벤키안미술관 #조르주성 #아우구스타거리 버스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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