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온이가 세상에 울음을 뱉은 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매일 사진을 찍고 업로드 한 사진들을 차근차근 넘겨보면 하루하루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한 달 전 산부인과에서 찍은 예온이의 인생 첫 컷과 비교하면 체감상 두 배 이상은 자라 보인다. 와이프와 함께 잠을 설쳐가며 모유와 분유를 부지런히 먹이고 마음 한편에 항상 자리 잡은 먼 날의 걱정들을 고민하는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은 보람이었음에 고마움과 안도가 섞인 숨을 푸 내쉰다.
예온이는 엄마 뱃속에서 예정일보다 일주일이나 먼저 나왔다. 엄마 뱃속에 있는 예온이가 세상을 거꾸로 보고 있어야 자연 분만을 할 수 있는데, 엄마와 같은 세상을 보려는 마음이 앞선 나머지, 제왕 절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왕절개의 장점은 출산 날짜를 미리 정할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출산 일정에 맞춰 학교의 방학, 대학원 일정 등을 오밀조밀하게 맞춰놨는데, 마음 급한 우리 딸은 이 일정을 일주일이나 당겨 왔으니, 무한한 감동과는 별개로 개인 일정은 꼬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 학기 중이었고, 새벽부터 시작된 주기적인 진통에 우리는 출산 시간을 아침 시간으로 정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학교는 출근할 수 없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복무 변경으로 학년 부장님께 먼저 양해를 구했다. 부장님은 너무나 감사하게도, 지금부터 내가 신경 쓸 것은 학교가 아니라 산모와 아이라면서 학교는 아무 걱정 하지 말라시며 마음 한쪽에 무거웠던 짐을 감동스러운 말로 한움큼 걷어주셨다. 다음은 교감선생님이었다. 신호음이 울리고 수화기 건너편에서 무슨 일이냐는 물음이 들렸다.
"와이프가 출산을 할 것 같아서요, 오늘 복무 관련해서 미리 말씀드립니다."라고 정중히 말을 전했다. 그리고 생긴 짧은 정적의 순간에 내가 내심 기대했던 말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 향해가는 길목에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된 담임으로서의 불편한 책임감을 덜어주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오늘, 복무는 학년 부장님께 말한 건가요?"라는 기계음 같은 말이었다. 책임감을 덜어주기는커녕,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복무 이야기부터 꺼내는 어른의 말에 조금이라도 있던 마음을 굳게 닫았다.
출산은 성공적이었고, 난 때 이른 출산휴가로 불편한 3일을 쉬고 등교했다. 그동안 밀린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평소보다 한 시간가량 일찍 출근하여 책상을 봤는데, 알록달록한 종이 몇 장이 있었다. 뒤집어보니, 포스트잇에 우리 반 아이들이 한 땀 한 땀 출산을 축하한다는 말들을 써 놓았고, 걔 중에는 이제 우리들은 신경 덜 쓰셔도 되니, 새로 태어난 아이를 많이 사랑해 주라는 아이의 말도 있었다.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받아왔지만, 익숙한 교실에서 학생들이 주는 이러한 낯선 감동은 항상 코끝을 찡하게 한다.
어른한테 받은 관계의 상처를 아이들이 위로해 준다니 초등학교 교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어른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사회적으로도 많이 성숙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꼭 그만큼 상처를 쉽게 내는 방법도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로 필요한 한마디 대신에 굳이 해도 되지 않아도 되는 말들로 상처를 주는 어른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고 있는가? 아이들의 순수한 눈과 마음을 되새기자.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필요한 말만큼만은 아주 잘 알고 있고, 그 말 안에 거짓 없는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눈앞의 아이들이야말로 어른이 다시 끄집어내야 할 자신의 어린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