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엄마는 요리를 하신 뒤 늘 같은 말씀을 하신다.
“요즘은 입맛이 무뎌져서, 간을 잘 못 맞추겠어.”
엄마의 자각처럼 음식 맛이 가끔 이상할 때가 있긴 하지만 내게 엄마의 음식은 여전히 가장 사랑스럽고 따뜻한 맛이다. 서른 해 넘게 길들여진 입맛 속에서, 엄마의 요리는 언제나 자랑이었다. 1990년대, 외벌이만으로도 가정을 지켜낼 수 있었던 시절, 엄마는 하루 세 끼를 한결같은 정성으로 준비해주셨다. 엄마가 해 주시는 대부분의 음식을 좋아했지만 그 중에서도 오징어볶음과 동태찌개는 특히 내가 사랑하던 반찬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반찬이어도 매 끼를 먹다보면 물리는 법. 그럴 때면 엄마는 신줏단지처럼 꽁꽁 숨겨둔 비장의 음식을 꺼내셨다. 그 음식은 1년에 한 두 번만 허락되던, 오븐도 없이 직접 구워낸 수제 피자였다.
밀가루 반죽 위에 치즈와 페퍼로니를 올려 구워내던 그 피자는 초등학생이던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음식이었다. 지금의 피자와 비교하면 형편없는 재료와 볼품없는 모양이었을지라도, 그 반죽 안에는 어느 마트에서도 구할 수 없는 가난한 정성과 내리사랑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 때의 피자가 주는 사랑의 맛은 지금의 피자에서는, 그리고 앞으로의 피자에서도 전혀 느끼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피자는 유난히 달콤했고, 다시는 맛볼 수 없을 만큼 특별했다. 어린 나에게 피자는 이국적인 맛인 동시에 부모님의 사랑을 증명해 주는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피자가 싫다.
재작년부터 점점 기울어가던 아버지의 건강은 최근에 와서는 결국 우리 가족의 때이른 결단을 요구했다. 그 요구 안에는 아버지에게 내 간을 이식할 수 있을지를 묻는 과정들이 포함이 되므로, 간 이식 검사를 받기 위해 나는 격주로 새벽 버스를 타며 서울로 향한다. 지난주도 길고 무거운 검진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이제 50일된 딸아이를 돌보느라 지쳐 잠든 아내가 있었고, 그 옆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식은 피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비록 식은 피자였지만, 지치고 허기진 내 배를 채우기엔 제격이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차마 손을 댈 수 없었다. 밀가루와 초가공 식품이 가득한 피자는 이제 내 몸에도, 아버지의 생명에도 되돌릴 수 없는 칼을 겨눌테니 말이다. 어렸을 적 사랑과 행복의 상징이던 피자는 지금, 아버지의 병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쓰디쓴 음식이 되어버렸다.
나를 키워낸 가족과 내가 키워낼 가족의 사이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지만,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는 삶을 생각하니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여전히 식탁 위에 차갑게 식어있는 피자를 바라보며 문득 깨닫는다. 고작 저 감정 없는 피자가 서른 해 전에는 엄마가 정성껏 해 주셨던 ‘받는 사랑’이었고, 지금 내가 먹지 않는 저 피자에는 그 받은 사랑을 다시 부모님께 돌려드리는 ‘주는 사랑’이 깃들어 있는 건 아닐까. 같은 피자지만 음식의 모양은 달라진다.
몇 해 뒤, 아버지의 건강이 회복된다면 피자는 또 다른 얼굴로 우리 앞에 올 것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피자를 나누어 먹으며 지금의 시간을 추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정성이 담긴 피자, 아버지를 위해 버려야 하는 오늘 밤의 피자, 언젠가 온 가족이 사랑으로 함께 나눌 피자까지. 모양은 다르지만 내 삶 속의 피자는 언제나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결국 식탁 위 식은 피자 대신 두유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