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대한민국은 마치 러닝공화국처럼 보인다. 주말 아침, 집 앞 하천을 따라 뛰면 삼삼오오 모여 뛰는 사람들, 코치와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사람들, 혼자 유유히 뛰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반듯한 열은 꼭 어미 오리를 따라가는 아기 오리들의 대열같다. 물론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여 뛰기로 한다. 지난주가 바로 10km 러닝 대회였기 때문이다.
월드비전에서 주최한 10km 대회날 아침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이 느껴졌다. 좋은 기록으로 보답하라며 오늘은 아이와 자신이 자겠다는 와이프의 응원에 힘입어 깊은 잠을 잤지만, 왠지 모를 긴장감에 계획한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깼다. 가볍게 배를 채우고나서 결전지로 향했다. 같이 뛰기로 한 사람들은 이제 막 출발할 시각쯤에 이미 도착했던 나는 몸을 가볍게 풀고, 오늘의 러닝 계획을 머릿 속으로 그렸다. 출발 시각이 다가오고 사회자의 억지 텐션에 왠지 모를 감탄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끼며 레이스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초반부터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 대열에 합류하며 시계를 보니 내가 계획한 페이스보다 30초가 더 빨랐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내 페이스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3km 쯤 뛰자, 숨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고, 이제부터 박자감이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울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처음 뛰는 풍경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고, 하루 만에 푹해진 날씨가 나의 뒤를 받쳐주고 있었다. 하지만 곧 위기가 왔다. 반환점을 돌고 7km 때쯤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부터 외로운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러닝을 하다보면 나의 끈기를 시험대에 올리는 습관이 생긴다. 이 정도로만 가도 충분히 잘한거라고 생각이 들며 정신없이 뛰는 내 심장과 근육에 합의의 신호를 보내기로 한다. 그 순간, 내 뒤에 경쾌한 발소리가 느껴졌다.
한 여성분이었다. 딱 봐도 고수의 향이 느껴지는 주법과 페이스였다. 나를 앞서가는 그 분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더 이상 오버페이스를 하다간 완주가 불투명해질 수도 있으므로, 애써 욕심을 내려놓으려는 찰나, 그분이 속도를 줄여주며 말을 건넨다.
"개인 기록이 어떻게 되세요?"
숨이 턱끝까지 찼지만, 대답을 하지 않을 수는 없기에 거친 숨을 섞어 개인 기록을 말했다.
"그럼 오늘 깨시겠네요. 같이 화이팅해요. 아자아자!"
그러면서 자신의 페이스를 늦춰주기 시작한다. 마치 자신의 속도를 잘 따라오라는 듯이
정신 없는 화이팅으로 맞장구를 쳐주며 계속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10km까지 그 분과 함께 들어왔다. 나 혼자 뛰었을 때 감히 상상할 수 없던 기록을 그 분 덕에 갈아치웠다. 레이스를 마치고 이미 사라진 그 분을 찾아헤맸고, 먼 발치에서 스트레칭 하는 모습을 보았다. 생전 처음 본 그 분께 진심을 담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나의 레이스는 끝이 났다.
개인 기록을 깨면 맥주를 먹겠다는 호기로운 목표를 성공했으므로 집에 돌아갈 때 편의점에 들렀다. 맥주 4캔을 들고 계산대에 올렸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말을 거셨다.
"아기가 많이 컸겠어요. 이유식 언제부터 해요?"
와이프의 육아교육덕에 대충 6개월부터 이유식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음달부터 이유식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씀드리니 계산대 아래에서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꺼내신다. 아이 간식 "떡뻥"이었다. 아이가 좀 크면 좋아할 거라고 집에 챙겨가라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셨고, 난 사진을 찍어 와이프에게 자랑하며 집으로 복귀하였다.
이 모든 일이 하루만에 일어난 일이다. 혼자라면 절대 성공하지 못했을 일도 누군가의 댓가 없는 호의 덕에 해낼 수 있었고, 아주머니의 예기치 못한 선물 덕에 주변이 따뜻한 곳임을 여실히 느꼈다. 티비나 인터넷을 보면 잔인한 사람들, 인간 이하의 사람들도 많지만 내 주변에는 이상하리만치 참 많은 사랑들이 있다. 어느 날 와이프가 앞으로 열심히 보답하며 살아야겠다고 카톡을 보내왔다. 무슨 말이냐 했더니, 아이가 주는 사랑이 너무 큰데, 그 사랑이 자신이 살아온 날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기에는 과분할 정도로 크단다.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늘에서 선불로 준 사랑을 남은 생의 할부로 갚아나가려고 한다. 누군가의 예기치 못한 호의들이 나의 하루, 우리 가족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줬듯이, 나도 누군가의 예기치 못한 호의로 삶을 채워나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