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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철 Oct 12. 2020

맺음말을 쓸 수 없는 글

습관은 망각의 대체제인가?

2020. 1. 20 4월에 아빠 보러 온다는 딸의 말과 함께 귀국!  겨울을 미국서 나서 그런지 다행히 올해는 미세먼지란 말은 별로 듣지 못했다.  손주들과는 곧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화상통화를 하며 희희낙락!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잊고 있던 육 개월의 정기검진.  딸이 선물한 옷과 신발로 멋을 내고 병원 행.  늘 듣던 말. 

 “아무 이상 없습니다.  육 개월 뒤에 뵙겠습니다.”

이상이 있으면?   한숨이 푹!   

  

전혀 예상 밖의 일 하나!  코로나 바이러스!  지금까지 괴롭히던 미세먼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독종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관계 단절.  비행기 표 예매까지 마쳤던 딸의 귀국 취소!  나이에다 정기검진까지 해야 하는 나는 오래된 경유차라고 차까지도 포기했다.  엎친데 덮치고, 설상에 가상까지!  별 수 없이 집 콕.  새 옷과 신발은 제 방에서 고이고이 주무신다.     


손주들 돌보기 힘들었던 아내는 “내가 없으면 애들 어쩌나?”  걱정!

기우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쓸 데 없는 걱정!  손자 녀석은 벌써 게임에 빠져 전화 끊어라고 칭얼댄다.  역시 인간은 망각의 장점과 현실 적응이란 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정기검진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피 말리는 일인지? 특히 나는 마지막 검진을 통과 하지 못 해 애를 먹었다.  그런데 걱정을 별로 하지 않는 성격인지,  병원 가기 며칠 전부터 걱정이지 이상 없단 소리만 듣고 나면 태평천하가 되어버린다.  내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생각. 물론 자기 발전에는 무지 방해가 되는 성격.  인정!  출세,  부의 축적. 어느 하나 옳게 한 게 없는 지금이다.     


그래도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지금 상태에서 얼굴까지 찌푸리고 있다면 나뿐 아니라 식구 모두 힘들 것이란 생각!  하긴 잡생각 나지 않게 쉴 새 없이 무엇인가 하기는 한다.  친구들 역시 마찬 가지인 듯.  만나지는 못 하고 전화나 문자, 카톡 등을 하면 자주 듣는 말. 

“뭘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바쁘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맞다.”   



"오늘 과로사 한 번 해보자."  

"괞쟎겠나?"

"영화 본지 오래됐지?"

"미국서 택시 운전사 보았잖아."

"마나리 우리 얘기다."




미나리가 오스카상 여섯 부문에나 노미네이트 되었다.  그중 압권은 윤여정 배우의 여우조연상!  배우의 소감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그 말에서  노배우의 진심을 느낀다.  나?  미국 원조 옥수수 먹고 자란 일흔 넘은 라떼.   “오스카상은 리즈 테일러가 타고 아카데미상은 엘리자베드 테일러가 탔다.”란 우스갯소리를 하며 자란 세대다.  노래의 빌보드 차트니 영화의 오스카상이니 하는 것은 그냥 남의 잔치!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대한민국의 말로 만들어진 영화를 미국인들이 자막을 통해서 본다?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세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남몰래 눈물 흘렸던 기억.  단지 나이 탓만은 아니란 생각. 


기생충과 달리 미나리의 국적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미국에 얼마간 살아본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근본적으로 미국은 이민 국가이다.   미나리는  너무나 유명한 브래드 피트가  제작하고 미국 시민인 “아이삭 정”이 각본과 감독을 맡아 한예리와 윤여정이란 한국 배우를 출연시켜 만든 미국 영화이다.  한국어가 많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현실이다.    이민 1세대들은 자국어를 쓰고 그 자식들은 영어에 더 익숙하고,  1,2세대 간의 대화는 영어와 자국어가 혼용된다.  나도 손주들에게 영어 발음 배우고, 손주들끼리 대화는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내 생각을 말하면 미국 영화 정도가 아니고 한국의 두 배우가 한국적 정서로 표현해낸 미국의 역사다.  미국의 역사에 더해진 이국적 정서, 그것이 독립영화 수준의 저예산 영화인 미나리에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것 아닐까 생각!   


미국의 역사는 유럽인들의 이민으로부터 시작된다.  1,600년대 미국 이민의 시작은 두 가지의 유형을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문자 그대로 아메리칸드림을 좇아온 농업이민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뉴잉 그랜드 쪽으로 온 청교도들의 정착이다.  땅과 종교적 신념!  



미나리를 보며 나는 두 편의 영화를 떠올렸다.  하나는 존 포드 감독의 “역마차”  그리고 엘리아 카잔 감독의 “에덴의 동쪽”  역마차는 개척,  에덴의 동쪽은 성서!  정이삭 감독이 존 포드와 “분노의 포도”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에덴의 동쪽의 원작자가 “분노의 포도”를 집필한 “존 스타인벡”이다.     

역마차는 서부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영화다.  우리 세대가 기억하고 있는 초기의 서부 영화!  그가 들면 장총도 권총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큰 체구의 존 웨인이 말을 타고 혹은 역마차를 몰아 서부로,  서부로  정착지를 찾아가는 화면.  그리고 황량한 언덕에서 활을 쏘며 쫓아오는 인디언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신나는 나팔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기병대.  인디언들이 도주한 다음에 나타나는 장면.  방패 삼아 눕혀 놓은 역마차 바퀴에 꽂혀 있는 화살들.  소위 말하는 “호스 오페라!”   수많은 클리세를 만들어낸 고전이 바로 역마차이다. 미국의 역사의 한 축은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뻗어가는 개척의 역사다.   


미나리의 첫 장면!  짐을 실은 트럭을 운전하는 제이콥의 뒤를 모니카의 승용차가 따른다.  바퀴 달린 정착지를 찾아가는 길.   말이 몰지 않을 뿐,  개척 시대의 그 모습이다.  바퀴가 달려 높은 집.  남편의 도움을  한사코 거절하는 아내.  갈등을 암시하는 장면.  개척 시대의 인디언이나 무법자의 등장을 대신하는 열악한 자연환경,  계약 문제에 불까지.  그 시대보다 더 힘든 삶이 아닐까.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가 미식축구.  그 룰이 땅따먹기란다.  정착지를 향한 개척정신!   이것이 미국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미나리의 힘이 아닐까! 


제임스 딘의 이름에 가려진 감이 없지는 않지만 “에덴의 동쪽” 역시 대단한 영화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존 스타인벡의 원작에 엘리아 카잔 감독.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렐 것 같은 느낌.  선과 악이 뚜렷이 대비되는 미국 영화에서 선과 악의 구분을 모호하게 표현한 최초의 영화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기독교를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출연자들의 이름도 성서에서 따왔다. 아버지는 아담.  선악을 모호하게 하듯 아들들의 이름을 살짝 비틀었다.  모범생이자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큰아들의 이름이 아론.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동생이 칼이다.  너무나 청교도적인 아버지를 못 견뎌 타락한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모습에 절망하는 아론.  치부처럼 생각하는  아내를 들켜버린 절망에 반신불수가 되는 아담.  부자의 극적인 화해.  미국의 한 영화 평론가는 이 영화는 동양적인 요소가 장점인 영화라 평했다 한다.  


아이삭 정이나 정이삭에서 알 수 있듯,  각본, 감독을 맡은 사람이 기독교와 뗄 수 없는 사람이다.  출연자들의 이름 역시 성서에 나오는 이름.  아버지의 이름이 제이콥,  감독의 퍼소나인 앨런 킴의 극 중 이름이 데이빗,  모니카 역시 성녀란 뜻이 있다고 한다.  영화 중 미나리가 자라는 곳.  수확물 중 유일하게 손에 쥘 수 있었던 미나리.  순자 씨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 등장하는 뱀.   교회는 당연히 등장하고,  한국전 참전 용사인 폴이 주일마다 메고 다니는 것이 십자가.  이 영화는 미국 역사의 다른 축인 기독교를 표현한 영화임이 분명하다.            

한국 배우들이 등장하는 미국 영화.  그렇다고 내게 미나리의 의미가 퇴색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니 그 반대다.  코리안 아메리칸.  모국을 잊지 않는 그들이 글로벌 시대를 사는 우리 민족의 힘이다.  이스라엘을 생각해 보라.  백범께서는 가장 좋은 나라가 문화가 융성한 내 조국이라 말씀하셨다.  세계로 뻗어가는 K컬처.  굿이다.  오스카 시상식이 다가오고 있다.


다시 극장을 갈 자신은 없다.  그래도 별 어려움 없이 영화 감상.  한 때는 영화광이었다.  그런데 수술 후는 모든 것이 두렵다.   


이렇게 글 쓰는 것도 두려움 극복의 다른 방법이 아닐까 생각!






오늘도 우산을 쓰고 운동 간다.  지금은 건강 염려하는 것도 아니다.  병원 신세 후 얼마간은 근육량도 신경 쓰고 했지만 지금은 거의 습관이다.  밥 먹으면 운동 가방부터 챙긴다.  운동 중독?  내 생각은 그냥 습관이다. 담배도 의사 말이면 끊는다.  몇 번이나 실패한 금연이지만 아무런 금단 현상 없이 성공! 건강 생각해서 하는 행동이 아닌 그냥 습관!     


그 습관이 지금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침에 어깨가 뻐근해 늦장.  아내가 채근한다.

“웬 일로 안 일어나냐?”

“어제 좀 심 했는 모양이다.”

“적당히 해라. 나이 생각해야지.”     

비 때문에 며칠 근력 운동을 적게 했다는 생각에 모처럼 맑은 날 약간 무리했더니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그래도 힘을 내어 강변 체력단련실로.

이제 운동이 완전히 몸에 배었다.     

입이 짧은 탓에 편식을 하려니 아내가 쌈을 입에 넣어 준다. 

“밥이 보약이다. 골고루 먹어야지.”

완전 아들 취급.  이런 일이 계속될 것 같은 예감.  아니 계속될 것이 확실.  

   

처음 들어가는 말을 쓰면서 이 글은 맺음말이 없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노인복지관 친구들 중에는 수술을 네 번씩 하고도 체력단련실에 출근하는 분이 계신다.  복싱 선수 생활을 하셨다는 분.  나 보다 8살 윗길이지만 근육 량은 내 몇 배는 되시는 분이다.  근력 운동이 암 극복에 큰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노력 중의 하나란 생각. 나도 두 번째.  

     

별 묘약,  별 치료법 들이 유혹하지만 운동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굳게 믿으며 강변의 체력단련실에서 코로나 물러가기만 기다린다.  

    

샤워를 마치고 선풍기 앞에 누우니 온 몸이 노곤하다.  기분 좋은 피로감. 이 기분이면 암 정도는 가볍게 이길 것 같은 마음!     들어가는 말을 쓸 때도 이미 절망을 극복한 시점이었다.  암 정도는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은 두 번의 수술을 이겨낸 후 얻은 과실이라 하겠다.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분들,  내 곁을 지켜준 아내와 가족들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과 함께 내일도 운동 가방을 챙길 것이다.   맺음말을 쓸 그 시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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