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에다 장마까지 2중고! 슬리퍼 신고 집 앞 강가 공원으로. 이른 시간인데도 운동하는 분들이 꽤 된다. 일요일이면 젊은이들도 많이 보이지만 장마라 거의 어르신들이다. 복장도 비슷. 우산과 슬리퍼. 나도 신 젖지 않게 슬리퍼. 저마다 사연?
2차 수술 후 몸 추스르기 무섭게 체력단련장으로. 참 열심히 했다. 과학적인 것은 잘 알지 못 하지만 근육이 열과 물을 저장해서 암에 좋고 운동 시 나오는 아드레날린이 종양을 잡는다는 친구들의 말에 개열심! 운동의 강도도 조금씩 높여가며. 주로 근력운동. 1달 정도 지나서 동네 뒷산 등산. 등산이 폐활량 늘이는데 적합.
350m 정도의 야산. 중간쯤, 약간 가파른 곳에서 발을 떼는 순간. 눈앞이 캄캄 해지며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이 산은 1차 수술 후에도 많이 다녔으며 2차는 그렇게 힘든 수술도 아니니 아마 심리적인 것이 아닌가 추측. 육체적인 것은 아니란 자신감과 함께 완등.
산소 부족이라면 숨이 차면서 다리에 힘이 빠진다. 후지산 등반 시 경험.
빨리 움직이니 눈앞이 캄캄해지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숨을 고르고 천천히 완등. 3,600m 조금 넘는 높이였다. 여기는 동네 야산. 아무리 폐가 작아져도 산소 공급이 부족할 정도의 높이는 아니다. 숨은 차지 않고 다리만 풀린 것이다. 몸이 적응해 가는 과정이라 추측.
아니면 등산에 겁을 잔뜩 먹고 출발. 더하기 투병생활에 약해진 마음. 얕은 의학 지식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트라우마 정도. 병원에 간 것도 아니고,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은 나만의 생각. 이건 정말 아는 게 병이다. 그 후로도 몇 번 완등 했지만 별 이상이 없었다. 허파를 단력 시키기 위해 달리기 대신 생각날 때마다 등산을 한다.
오늘은 대장암 수술한 친구와 전화 통화. 친구는 역시 묵은 놈이 좋다. 범절 차리는 체육관 어르신과 달리 속마음 개방. 코로나 때문에 오래 모이지 못 한 아쉬움까지 남자 치고는 꽤 수다.
“숨 안 쉬고는 못 산다.”
“넌 안 싸고 사냐?” 위 수술한 친구는 먹어야 산다. 저마다 고생이다. 이 나이가 되면 멀쩡한 친구가 오히려 귀한 것 같다. 그래도 속이 시원하다. 동병상련이란 말이 이유 없이 생긴 게 아니다. 서로의 속 걱정까지 다 털어놓으니 스트레스가 쏵! 나이가 있어도 자존심, 민폐 끼치기 싫은 마음 등. 마음 한 쪽은 감추고 산다. 같은 암 수술 동지끼리 수다. 어떤 약 보다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 역시 묵은 친구가 좋은 것이여!
오늘은 소나기라 걷기를 적게 하고 근 운동을 좀 더 했더니 피곤! 내일도 해가 뜨면 강변으로 가겠지. 비 오지 않기를. 아니 해결책은 코로나가 물러나 복지관이 문을 열기를! 운동은 계속된다. 꾸준히!
두 번의 폐암 수술! 고생하고 걱정 끼친 아내와 딸에 대한 자그마한 선물. 유럽 여행. 다행히 현역 시절 비자금을 조금 조성해 두었다. 함께 가자는 아내에게 한 말.
“나는 손주들 보러 미국 갈 거다!”
세 달만의 정기 검진 후 이제 육 개월마다 와도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 미국행 준비. 혼자 가라던 아내의 마음이 바뀌었다.
“남자 혼자 가면 딸에게 짐이고, 내가 가면 도움이 된다.”
나야 라떼 말로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다. 무엇보다 아내가 있으면 든든하다. 미국은 의료비가 대단히 비싸다. 치과 한 번에 10만 원이 날아 간 적이 있다. 의료 민영화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석 달이지만 몸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아내는 내 주치의 같은 존재.
아내와 석 달 예정으로 미국행! 손주들을 보니 시름이 싹!
그런데 손주 돌보미 아내를 보니 “짐”이란 단어가 영 마음에 걸린다.
요즘은 백세 시대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 때문에 10년여를 고생한 친구도 있다. 나 역시 과거 같으면 호상 소리 들을 나이다. 그것도 큰 수술을 두 번씩이나 한. 짐 되기 싫으면 건강 조심. 또 일흔 나이에 자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행복이란 생각을 하는 나다.
하루를 운동으로 시작한다. 다행히 사위가 집에 작은 체육관을 만들어 놓았다. 30분여의 근력 운동과 달리기는 못 하지만 경사진 길 걷기 만보! 미국 청소기는 위력이 센 만큼 힘도 많이 든다. 청소기로 하는 일은 내가 담당.
그런데 가고 보니 겨울이다. 19년 11월부터 20년 1월까지. 이 때는 미국은 거의 파장 분위기다.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까지 즐길 것이 넘쳐난다. 핼러윈, 땡스기빙, 크리스마스, 거의 매일이 축제다. 딸 덕에 정말 호강.
계획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치밀한 성격이 못 된다. 가장 큰 것은 미세먼지를 피했다는 것이다. 축제와 사위와 함께 한 샌디에이고, 레고 랜드, 디즈니랜드 불꽃놀이 등은 여벌. 내게 가장 큰 것은 건강 걱정 없이 겨울났다는 것이다. 미세먼지는 겨울이 심하고 날이 따뜻해지면 덜 한 것 같다.
귀국하니 미세먼지보다 훨씬 더 애를 태우는 코로나가 기다리고 있다.
이겨야 한다. 짐 된다는 아내의 말이 내 의지를 불태우게 하고 있다. 장대비를 뚫고도 칠 천보 걷기는 매일. 근력 운동은 집에서라도 꼭.
그게 암 투병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장마에 태풍까지. 걱정이 태산. 그래도 내일 눈 뜨면 나는 운동 가방을 챙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