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는 병원 생활에 몸도 마음도 지쳐 거의 모든 생활이 습관이 되다시피 했을 즈음. 그날도 의무적으로 병원을 한 바퀴 돌고 병실로. 입원 초기에 한 번 만났던 코디 분. 아내가 그 분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한 없이 밝은 미소와 함께. 순간. 수술 날짜가 잡혔구나! 아! 살았구나. 안도의 한숨! 휴게소에 들러 커피 한 잔. 커피가 달다. 술이 달단 말은 들어 보았지만 커피가 달 줄은! 수술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희망이 먼저다. 병실에 들어서니 아내의 말!
“수술 날짜 잡혔다. 내일 집에 들러 준비해 오겠다. 하루만 혼자 있어라. 힘들면 딸애 오라 할까?”
“뭔 소리! 고생했다. 며칠 푹 쉬고 와라. 딸은 절대로 부르지 마라.”
“어떻게 그러나? 준비만 하고 올게. 하루만 고생해라.”
그날 밤은 모처럼 단잠!
다음 날 직장의 친목회장님의 면회. 직장 소식도 궁금하고 고맙고 반갑다.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행정실에서 이야기 들었습니다.”
수술 날짜가 잡히니 보험 일로 아내가 행정실에 연락을 한 것이다. 우리는 직장에서 일괄적으로 보험을 든다. 다른 말로 강제 보험. 때론 불평도 했지만 대단히 잘 된 일이다. 한 달 입원에 링거와 각종 검사. X선, PET/CT 검사. MRI 등을 하고도 병원비가 200만 원이 안 되었다. 병에 대한 국가의 혜택과 보험에 감사. 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의료 보험에 대해서는 비교가 안 되는 선진국이다.
아내는 기어이 하루 만에 다시 병원으로 부부의 정이란 것인가? 지금 생각해도 아내가 너무 고맙다.
수술 전야! 큰 딸이 병원에! 동의서에 두 사람의 서명이 필요하단 얘기. 큰 수술 실감. 서로 고집 겨루다 내가 이겨 딸은 집으로.
드디어 수술한다는 실감. 그것도 두 사람의 동의가 필요한 큰 수술. 아내에게 그동안 비밀로 하던 비자금 통장과 비밀 번호를 넘기다. 책갈피에, 기발한 장소에 숨기는 것들과는 크기가 다르다. 내가 생각해도 큰 액수지만 아내는 별 생각이 없는 듯. 하긴 이 상황에서 돈이 대수겠는가. 퇴직 후에 무엇이던 해 보려던 돈인데 지금은 비자금이 아닌 그냥 자금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뒤숭숭한 마음은 단전에 집중하며 극복. 병 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는 데다 정신을 분산시키니 것이 두려움이나 걱정 같은 다른 느낌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다음 날 몽롱한 상태로 입원실 간호사분들의 응원에 힘을 내며 드디어 수술실로! 아내의 손을 꼭 잡은 것은 당연지사!
수술실에서 간호사와 몇 마디 한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눈을 떠보니 생판 모르는 곳이다. 몸에는 줄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회복실이란다. 간호사 한 분과 나 단 둘이다. 보호자는 아내가 밖에서 마취 깨는 것만 보고 병실로, 수술실 들어간 후부터 마취가 깨기까지 여덟 시간 정도 걸렸단다. 수술 후유 증이 지금까지 남아 있으니 내 생애 가장 긴 여덟 시간이었다.
마취가 덜 풀렸는지 아직까지 아픈 것은 못 느끼겠다. 한 번씩 간호사 분이 몸 상태를 확인. 약간 불편한 것이 있어 간호사를 부르려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포기. 대신 불편을 잊기 위해 단전호흡.
단전호흡이란 게 무슨 대단한 것이 아니고 몽롱한 상태에서 정신을 단전 쪽으로 분산시키니 고통이나 불편한 점이 조금은 나누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 그러다 잠 속으로. 깨니 간호사 둘이 인수인계를 하고 있다. 간호사분들 정말 고생이 많다. 무슨 인수인계할게 그렇게 많은지 제 시간 퇴근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바퀴 달린 침대에 실려 중환자실로 이동. 병원에서 더러 보이던 모습. 말 그대로 무거운 병의 병자 모습이다. 사실 병원에서는 운동 외에는 내 의사대로 하는 게 거의 없다. 사실은 운동조차 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간호사 분의 말. 아프면 진통제의 버튼을 누르란다.. 진통제가 몸에 좋을 리가 없을 것 같다는 그냥 내 생각. 실제 폐를 늘리기 위한 기구 불기 운동 외에는 거의 진통제를 사용하지 않았다.
폐 수술은 문자 그대로 폐를 잘라 내는 수술이다. 폐 용량이 줄어드니 생활이 불편해질 수 있다. 따라서 줄어든 폐를 늘리기 위한 운동. 입으로 불어 공을 띄우는 기구가 있다. 폐활량 운동. 갑자기 힘을 주니 수술 부위가 아플 수밖에. 처음에는 진통제의 힘을 빌렸지만 나중에는 낫겠다는 의지로 내가 생각해도 운동 참 많이 했다. 줄어들지 않는 진통제 양에 간호사분이 운동을 해야 된단다. 아내가 수시로 한다고 하니 진통제 없이?
아내는 지독하다 하고 간호사 분은 대단하단다. 나아야 한다는 내 의지와 단전호흡의 힘이 아닐까 추측!
중환자실을 나오면 2인 병실이다. 그 분위기는 정말 숨 막힌다는 상투적 표현이 딱 어울린다는 생각.
2인 병실에 와서야 아내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마음의 평화와 함께 단잠에. 그런데 잠이 깨니 분위기가 이상하다. 대화가 있고 간간이 웃음소리도 들리던 6인 실과 달리 한숨소리와 함께, 표현하기 힘든 냉랭한 분위기. 병이 깊은 환우인 모양이다. 일어나 나가고 싶지만 아직은 움직일 수조차 없다.
나는 평소에도 TV 오락프로를 즐겨본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건강에 좋다는 말을 믿으며. 2인실에는 TV가 있다는 것이 6인 실과 다른 점이다. 그런데 텔레비전 켜자는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니다. 그쪽으로라도 신경을 돌릴 수 있으면 좀 나으련만. 단전으로 생각을 분산시킨다. 그러다 다시 잠 속으로.
다시 간호사의 몸 점호. 살기 위한 아침 식사. 조금 있다 아내가 억지로라도 먹으라며 삶은 달걀 대령. 내가 처음 병원에 간 것은 위궤양 검사 때문이었다. 그때 하늘의 뜻인지 생각 밖의 폐종양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따라서 몸이 많이 허약했다. 수술 전 아내의 가장 큰 걱정도 체력이었다. 수술을 견뎌낼 수 있는 체력. 아내의 배려, 간식으로 가장 많이 먹은 것이 계란과 육포였다. 딱딱한 육포는 아직. 계란만. 진통제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아픔은 견디겠는데 아직 몸은 못 움직이겠다.
입원 전 체중, 45킬로! 남자로서 창피. 속 때문에 많이 먹지도 못 하면서 등산 등 움직임이 많아서 그런 듯. 위장병은 치료로 호전. 계란에 육포. 많이 먹었지만 힘든 병원 생활에 체중은 그대로다. 줄지 않은 것만도 다행! 병원 생활은 그만큼 힘들다.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수술 후 친구들이 면회를 왔다. 말하기도 힘든 상태지만 반갑고 고맙다! “두고두고 말 들을 것 같아서 왔다.” 농담처럼 던지는 말속에 친구 걱정이 들어 있다. 병원 이름만 듣고 큰 병인 줄 알고 온 친구들!
한 달간의 대기 끝에 수술! 수술 후 사흘 만에 강제 퇴원. 집으로!
진짜 병과의 투쟁은 지금부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