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그래도 사람이다.

by 김윤철

나는 병원에서 6인실에서 27일 간, 2인실에서 3일 간 생활을 했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아니고 병원 형편에 따라서 정해주는 대로! 병원에 가면 조심스럽다. 절에 간 색시가 될 수밖에 없다. 암 소리를 들었을 때 믿을 수 있는 것은 병원 식구들뿐이었다. 수술 전은 6인실. 수술 후는 회복실을 거쳐 2인실.


일반적으로 형편이 되는 사람은 2인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6인실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전문 병원은 병실이 모자란다. 수술 기다리는 환자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하는 일 없이 한 달을 기다려 수술하고 사흘 만에 퇴원했다. 복불복! 병실 나는 대로 입원. 나는 2인실 보다 6인실이 더 좋았다는 기억. 내 기억 속의 6인실은 수술을 기다리거나 병을 치료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곳. 2인실은 좀 더 병이 위급한 사람들이 나와 함께 했다. 다른 말로 6인실이 좀 더 활기찼다는 생각. 병원 입원실. 그것도 암 병동에 활기가 넘치다니?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특히 죽음 앞에서는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희망이다. 사실 나는 병동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모르니 내가 경험한 2, 6인실밖에 말할 게 없다. 사실은 2인실은 아픔과 두려움, 살았다는 안도감에 정신이 없었다. 6인실에서는 서로 위로를 주고받으며 동병상련을 나누었다는 기억. 함께 웃고 떠들었던 기억도!


기억에 남는 두 사람! 한 사람은 나와 동갑.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의 하나인지는 모르겠으나 붙임성 좋고 쾌활한 사람이었다. 환갑 넘은 나이에 암과 당뇨가 함께 있어 수술 전에 당뇨 치료를 하는 사람이었다. 결국은 수술을 못 하고 퇴원해서 항암 치료. 기흉관을 갈비뼈 사이에 꽂고 짐을 들고나가면서 하는 말! “어이! 김 씨! 항암 치료 오면 들를게!” 직업의 특성상 김 씨란 호칭은 매우 낯설다, 그러나 그 너스레가 전혀 싫지 않았다. 그 후 면회는 오지 않았다.


다른 한 사람은 수술을 할 수 없는 혈액암 환자. 고등학생이었다. 지금은 항암 치료가 조금은 쉬워졌다는 얘기가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힘들어했다. 치료를 받고 오면 밥도 못 먹고 넘어지기까지 하는 모습은 정말 너무나 애처로웠다. 하물며 그 부모님 마음이야! 통원 치료를 위해 퇴원하는 날 진심으로 완쾌를 기원했다.


수술을 하거나, 통원 치료를 위한 것이거나, 아니면 완치. 사람들이 바뀌어도 나는 매일 같은 생활의 반복! 점호, 식사. 운동! 가장 힘든 것은 수술 날짜를 모르는 것이었다. 하염없는 기다림! 혹시 다른 것이라도 발견되면 강제 퇴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는 오직 수술 날짜가 정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 주사조차 겁내던 내가 수술을 기다리다니!

죽음의 공포는 모든 것을 다 덮는 힘이 있다.






병원 생활 사흘 만에 생각지도 못 한 친구 부인이 면회를 왔다. 경북에서 서울까지, 다시 지하철로 1시간여의 거리. 고맙고 반가운 마음보다 미안함이 앞서는 것은 시골 생활의 어려움이다.


개미가 쳇바퀴를 돈다는 말이 있다. 발전과 변화가 없다는 의미다. 이것은 병원에 어울리지 않는 말. 아니해서는 안 될 말이다. 이런 일을 내가 겪고 있으니 라떼의 표현으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암이란 놈이 며칠 만에 차도가 있는 병도 아니고, 특히 나는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고 수술 시간 나기만 기다리는 몸이다, 매일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병원 생활이다. 이런 생활에 활력을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면회 시간이다.


바깥 소식도 듣고 음료수까지 나누어 마시며 웃고 떠들어도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유일한 시간. 단 가족면회는 예외다. 아픈 모습 보이기 싫다. 뭐 이런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자식들에게는 걱정 끼치기 싫은 부모의 마음. 서울 생활하는 그때는 미혼의 두 딸에게는 병원 오지 마라고 신신당부. 늦둥이는 시골 고3. 그래도 딸들은 몇 번 다녀갔다. 애들 앞에서 옆구리 기흉관 숨기느라 고생 심했다. 나야 낫는다는 믿음이라도 있지만 딸들은 얼마나 놀라겠는가! 허파에 바람 든 놈!

사실은 내가 병원에 입원한 것은 가족 외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직장에서는 퇴직한 것과 같은 처지. 이웃들은 검사하고 객지 생활하는 딸들 돌봐 주는 것으로 이해. 그렇다고 나 입원했소! 떠드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 포기 상태에서 찾아준 친구. 지금도 고맙다.


친구의 안부 전화. 이번 모임은 빠져야겠다는 말끝에 입원 병원 이름 들통. 알았다는 간단한 대답에 잊고 있었던 친구의 아내분이 서울까지 오신 것이다. 부부 동반 모임의 친구이기 때문에 아내들끼리도 매우 친한 사이다.


친구 아내의 말 요약! “5년 전 건강 검진에서 대장 용종 발견. 용하다는 암 병원 찾다. 잘 아는 의사의 소개로 이곳 병원에서 용종 제거와 6개월마다 정기 검진. 다음번이 5년 마지막 정기 검진이다.” 5년 동안 다녔으니 병원의 특징을 잘 알고 있다는 말. 내게는 대수롭지 않게 말한 친구가 아내에게는 심각하게 말한 모양이다. “그 병원에 입원했다면 암이다.” 걱정과 함께 다음 날 바로 병원까지. 예상하지 못 한 만남이기에 더 반갑고 고맙다.


“수술 예약을 한다면 낫는다는 말이다. 요즘은 암도 완쾌 확률이 높다. 야 병원은 믿을 수 있다. 5년만 고생하면 끝이다!” 등 응원을 받으며 수술할 큰 힘을 얻었다. 사람은 역시 관계 속의 삶이란 진실 확인!


지금! 코로나 때문에 고생하는 지금. 1차 수술 후 8년이다. 한 번의 작은 폐 용종 제거가 있었지만 별 탈 없이 4번의 미국 여행까지 다녀왔다.




미국 생활 중 느낀 점. 미국은 철저히 개인주의 사회다. 출퇴근 시간이 다르고 서부 지역은 대중교통이 거의 없으니 모이는 일 없이 “굿 잡”이란 말과 함께 집으로. 대신 개와 고양이가 친구다. 고양이는 외출이나 않지만 데리고 다니는 개는 겁도 나고 곳곳이 개똥밭이다. 곳곳에 펫이란 상점들. 반려동물이란 말. 요즘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TV에 반려 동물 없는 유명인들 보기가 힘들다. 뭐 힐링이라나? 내 개인적인 생각. 그래도 사람이다. 반려동물이 아닌 반려자. 동물의 피부보다 가족의 손길. 친구들 면회에서 절실히 느낀 점! 그래도 사람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