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생활

고생 시작

by 김윤철

나의 병원 가기 전 생각: 고속버스로 병원 행. 시골 생활의 어려움이다. 조직검사 후 귀가. 검사 결과 통보를 받고 병에 대한 대처 방법 모색.


병원의 검사 방법은 전혀 달랐다. 병원 도착 후 바로 입원부터. 다음 날 세침 방법으로 조직검사와 왼쪽 갈비뼈 사이에 기흉관 삽입. 의학용어를 쉽게 말하면 침을 쏘아 폐 조직을 뜯어내어 암세포 검사를 하고 폐에 들어간 공기를 빼내기 위해 갈비뼈 사이에 공간을 만든다는 말.


젊은 의사의 말씀. “연세도 있으시고 담배를 많이 피워 허파꽈리가 약해져 허파에 들어온 공기를 내보낼 수 없으니 기흉관 삽입이 불편하더라도 참고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호흡을 하라는 말씀.” 산사나이 흉내도 내보고 쉰 바라보며 백두대간 종주도 한 몸이 폐가 망가졌다니. 젊은 사람 못지않은 주력이었는데.... 담배의 폐해 실감! 옛말에도 있다. 허파에 바람 든 놈!


훈련병 시절! "10분간 휴식!" 소리와 함께 담배 일발 장전하는 동기들을 보며 사탕 먹는 나 자신이 초라해 보여 어리석게 시작한 담배가 이렇게 끝까지 속을 썩일 줄이야! 몇 번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금연. 다시 한번 후회막급!



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 전신마취를 한 줄 알았다. 그러나 전신은 아니라는 아내의 말. 기흉관을 언제, 어떻게 삽입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수술 전 한 달 가까이 퇴원도 못 하고 아프고 활동이 불편했다는 기억뿐. 수술 후는 이틀 만에 퇴원. 참 희한한 일이다. 그만큼 수술 환자가 밀려 있다는 말. 보통은 집에서 수술 날을 기다리는데 나는 집이 시골이라 그런지 기흉관을 삽입해서 그런지 그냥 병원에서 대기. 내 생각에는 둘 다 해당된다는 생각.


그날 오후 간호사의 말씀. “떼어낸 조직의 양이 부족하여 조직검사를 다시 할 수도 있다는 말.” 무척 쫄았다. 암이 아닐 수도 있는 기쁜 소식인데도 걱정 많이 한 것을 생각하면 평범한 검사는 아니었다는 생각.

그날 저녁 교수 의사님의 정기검진! “암입니다. 수술하셔야겠습니다. 모르셨습니까?” 알고 있으면서도 표정을 숨기지 못 한 모양이다. 마지막 질문은 공손한 자세로 서있는 의사들을 질책하듯 바라보며 한 말로 기억된다. 그러나 나도 지그 마하나마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침울한 표정과 동정 섞인 말투가 아니다.

“감깁니다. 주사 한 대 맞고 가세요.”

보통 병원의 감기 진단 같은 말투다. 생각해 보니 이 곳은 암 전문 병원이다. 이런 환자를 매일 보는 사람들이다. 그 카리스마와 자신감 넘치는 어투에 암 정도는 이제 큰 병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던 기억.


다음날은 코디라는 분이 위로차 방문. "걱정 마세요. 다른 병원의 일 년 치 수술보다 우리 병원 하루 수술 분량이 더 많습니다. 모두 전문가 분들만 계십니다." 그럼 오래 기다릴수록 신뢰도가 높다는 말인가?


사실 한 달여를 기다리면서도 죽는다는 생각을 한 기억이 없다. 빨리 퇴원해야 한다는 생각에 운동 또 운동. 폐에 공기를 빼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호흡. 사실 운동이라야 별 게 없다. 갈비뼈 사이에 관이 박혀 있으니 상체를 사용할 수가 없다. 그냥 걷기 운동. 그것도 환자복에 링거줄을 꽂고, 코에 산소 줄을 넣고 있으니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병동 사이를 줄기차게 걸었다. 원래 산에 다닐 때도 무엇인가 생각하며 걷는 것이 취미이자 낙이었으니. 병원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면 행동반경도 넓어진다. 병동 사이에 발코니처럼 만들어진 공원과 좀 더 먼 다른 병동까지.


그러나 그때는 미처 몰랐다. 병원 생활은 익숙해져서도 안 되고 요령이 생길 수도 없다는 것을! “졸면 죽는다 비가 오면 적이 온다.” 는 구호와 함께 하던 반세기 전의 군대 생활보다 몇 배나 힘들다는 사실을! 병원은 입원한 나만 힘든 게 아니고 수발드는 아내와 가족들 모두 걱정시킨다는 사실! 나를 지켜준 아내와 가족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일흔 나이에 군생활 생각이 나는 것은 내 삶에서 가장 힘들었다는 기억. 직장생활을 하면서 힘이 들 때는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옛 근무지를 찾아가기도 한 기억. 따라서 아내의 고생은 챙길 여력이 없었다.


대신 지금 애교라도 부리려 노력 중!




아침이면 누구나 눈을 뜬다. 그러나 병원의 아침은 조금 다르다.


입원 환자의 아침은 간호사분들의 몸 점호로 시작된다. 체중, 혈압 등등. 검사가 끝나면 식사시간. 군필자들은 힘들었던 군 생활을 생각하면 된다.


때 되면 식사가 나온다. 침대 위에서 식사. 그런데 병원 밥은 건강식이다. 다른 말로 조미료와 자극적 맛을 최소로 사용한다. 입에 맞는 맛은 아니란 거다. 그래도 짬밥과 다른 것은 주위에 아픈 사람들을 보니 그 맛에 길들여진다는 거다. 휴가 나와서 먹던 사제 음식의 맛을 생각해보라. 그러나 건강식은 다르다. 퇴원 후 8년 지난 지금은 맵고 짠 음식을 못 먹는다. 배달 음식도 조리된 음식에 물을 더 붓고 회석시켜야 한다. 수술조차 받지 못하던 당뇨 환자를 보고는 단 음식도 거의 먹지 않는다. 한 마디로 자극적 음식 금지! 덕분에 우리 식구들은 비만이란 말을 모른다. 급하면 통한다.



식사가 끝나면 쉬는 시간. 그러나 나는 운동 타임! 링거 줄을 끌며 주위 산책. 옆구리에 기흉관이 꽂혔으니 아프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걷기밖에 없다. 수술도 하기 전 걷기 운동이 무슨 도움이 되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체력 강화 정도의 효과? 위가 탈이 났으니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 큰 수술을 앞에 두었으니 아내가 식사 사이에 간식으로 달걀과 육포를 계속 준다. 그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걸여야만 한다. 아니 그냥 가만히 있으면 걱정이란 놈이 달려든다. 뿐만 아니라 입에 맞지 않는 병원 식사. 제대로 누울 수도 없을 만큼 불편한 몸! 해서 걷기라도 해야만 한다. 먹고 자기 위한 투자. 거의 하루 다섯 시간 이상을 걷고 또 걸었다. 등산하던 가락에다 직업병도 한몫했다는 생각. 직업 특성상 시간마다 긴장한다. 한 시간 쉬면 몸이 반응한다. 걸어라! 아니 움직여라! 과거 같으면 종소리. 요즈음은 음악. 40년여를 그렇게 살았으니 당연지사.


다시 한번 급하면 통한다. 몸이 옆구리 통증에 적응하면 행동반경이 넓어진다. 병원에 조성된 공원. 사람 드문 한적한 곳, 옛날 같으면 당연히 담배 생각.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옆구리 구멍 내고 담배 생각도 우스운 얘기. 과거 몇 번이나 금연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 그러나 지금은 아예 생각조차 없다. 지금이야 병원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입원 일주일 전. 담배와 라이터를 버리면서부터 그랬다. 금단 현상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담배는 중독이 아닌 그냥 습관이란 생각! 병원에서도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수술 후 몇 달까지 금연 여부를 묻는 전화를 주신다. 나는 당연히 금연. 십 년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 담배 생각은 전혀!


저녁이면 당연히 취침! 내 몸이 고달프니 아내의 잠자리와 식사는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환자 침대 옆의 쪽잠. 식사는 어떻게 했는지? 지금에서야 미안하고 고맙다.




20대 즈음에 권태훈이란 분의 "단"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단전호흡을 하면 초인적인 능력이 생긴다는 내용. 소설의 형식을 빌어 자신의 체험을 기록한 것이라는데, 지금은 소설 정도로 생각. 그러나 당시는 거의 매일 열심히 수련했던 기억. 옛 말씀에 남자는 도적질 외에는 다 배워놓으란 말이 있다. 그 몇십 년 전의 수련이 수술에 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무슨 대체 의학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건강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 위안 정도. 병실이니 당연히 수발드는 분을 제외하면 모두가 환자들. 그것도 암 전문 병원이니 중환자들이다. 수술 전에 다른 치료를 하는 분들도 있다.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 수도 있다.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 요즘 말로 멘털 강화. 단전에 정신을 집중하니 아픔이 분산되는 효과도 있다. 아픔을 잊을 수는 없지만 고통 감소. 잠도 잘 온다. 오늘도 단전을 바라보며 잠을 청한다. 내일의 아침 점호를 생각하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