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생활에서 정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뿐이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마스크 쓰고 다니는 운동 길에 만나는 부부. 일흔은 훌쩍 넘기신 것 같은 노부부. 거동이 불편하신 마나님과 보조기구의 도움으로 함께 산책하시는 남편분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내 병상 경험 때문일까? 흔히 부부를 한 이불을 덮고 잔다는 말로 정리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아니다.
수술의 전리품! ㅎㅎㅎ전리품이라 해두자. 왼쪽 갈비뼈 사이에 기흉관 꽂았던 흔적. 오른쪽 등에 거의 10cm는 될 것 같은 수술 자국.
가까이 자다 잠결에 부딪치기라도 하면! 결과로 지금은 각방 사용.
집에 온 지 이틀째! 잠에서 깨자 정신이 아득!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아내가 잠들어 있는데. 2, 3m도 되지 않는 거리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잠시 정신을 놓았는지는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몸도 움직여지지 않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이건 아는 것이 힘이다. 퍼떡 차태현이란 배우 생각! 공황장애! 지금이야 연예인들을 통해 많이 듣는 말이지만 당시에는 생소한 말이었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으며 손가락부터 조금씩 움직여 보았다. 숨을 못 쉰다면 죽었지.
후지산 등반 시, 호흡 때문에 고생한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 이런 경험을 한 게 아닌가 생각. 3,500 고지를 지나 동료를 따라잡으려 빠른 걸음. 순간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던 기억. 주저앉아 호흡 고르기. 고산지대에서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 조금만 빨리 움직여도 숨이 가빠진다. 경사가 심해 정상이 빤히 보이는데 얼마나 멀게 느껴지던지. 산 너머에서 차가 기다리니 내려갈 수도 없고 산에다 통사정을 하던 기억. 마음을 가다듬고 우선 자리에서 일어나기부터. 앉아서는 생각 정리. 허파를 많이 잘랐다는 생각. 폐가 작아지니 숨이 차는 것은 당연지사. 호흡이 가쁘니 숨을 쉴 수 없다는 착각을 한 것이 아닌가 추측. 차태현 배우가 어느 오락 프로에서 한 말! “여기서 지면 고생 심하다.” 천천히 옷부터 입었다. 아내를 깨울까 망설이다.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밖으로! 다행히 구월 초라 밤이라도 춥지는 않다. 아직은 천천히 걷는 것조차 힘들다. 꾸부정한 자세로 오른쪽 어깨를 감싸며 집 근처의 고등학교로. 우리 막내가 다니는 학교다. 초기에는 밤에 참 많이도 찾은 곳이다 시간은 자정이 조금 넘었다.
교문을 들어서니 예상 밖으로 많은 사람들이 밤 운동을 하고 있다.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중 눈에 띄는 몇 사람! 뇌졸중을 앓으신 분이라 추측되는 분들. 거북한 몸으로 열심히 운동장을 돌고 계신다. 남들에게 보이기 싫은 모습을 어둠에 묻고 계시는 듯! 나도 내일부터.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니 그 전 생각은 잊었다.
공황장애란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극복했다는 내 생각! 다음 날 아내에게 말했더니 “깨우지 그랬냐?” 누가 뭐래도 부부는 한 몸이다.
“폐는 불가역성입니다. 조심하시면서 사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첫 정기검진 시 냉정하게 생기신 의사님의 말씀!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 병원에서 듣는 말 중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다. 불가역성. 바뀌지 않는다는 말. 쉽게 말해 고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군 시절 본격적으로 피우기 시작한 담배!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힘들지 않은 투병생활이 있겠는가. 그래도 내가 가장 힘들다는 느낌이다. 생각해 보라. 숨 쉬기를 어떻게 조심하란 이야긴가? 오염이 심할 때는 숨을 쉬지 말란 이야기? 수도권으로 이사를 와서는 우울증을 앓을 정도로 트라우마가 되었다.
조심하는 방법. 담배 끊기. 사람 많은 밀폐된 곳 피하기. 산소와 피톤치드를 제공하는 나무가 있는 곳으로 자주 가기! 이외에는 할 게 별로 없다. 숨을 안 쉬고 살 수는 없으니! 병원이 고마운 게 퇴원 후 얼마간은 정기적으로 금연에 대한 경고를 해 준다. 사실은 병원 신세 지면 담배 생각은 끝이다. 그래도 고맙다.
퇴직 직후, 고교생 늦둥이가 있으면 병원 생활이나 집에 있으나 별 차이가 없다. 간호사 오던 시간에 기상. 식사. 늦둥이는 학교로 나는 나무 찾아 삼만 리.
수술 직 후 얼마간은 고생 많았다. 출근 시간인데 갈 곳이 없다. 움직이기도 힘든 몸이니 멀리는 못 가고. 시골 생활과 옛 직업의 특성상 아는 사람은 많고, 초라한 모습은 보이기 싫고. 처음엔 가장 씩씩한 걸음으로 아파트 산책. 사람이라도 만나면 더 꼿꼿한 모습으로. 다행히 아파트가 산에 있어 오르막을 오를 수 있게 되면서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아파트 뒤쪽 걷기, 힘들면 나무 밑에 돗자리 깔고 단전호흡. 걷기, 단전호흡, 걷고 단전호흡. 단전호흡이라기보다는 명상과 복식호흡 정도. 무슨 믿음보다는 진통제를 사용 않으려는 정신 분산이 맞는 말인 듯.
조금씩 행동반경을 넓혀간다. 한 달 후부터는 높이 350미터 높이의 마을 뒷산 등산. 사철 푸른 침엽수가 있고 약수터가 있고, 친구가 있는 뒷산이 얼마나 가고 싶던지!
아파트 안을 돌 때는 뒤편의 나무 밑이 목표였고, 다음은 마을 뒷산. 등산 다음은 근력 운동. 한 걸음씩 완치라는 목포를 향하여 참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의 활력소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 마찬가지로 트라우마 역시 역설적이지만 내 삶에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