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함께 딸이 미국으로 떠났다. 마음 한 구석이 빈 듯 허전함. 사진을 정리하다 나도 과거로 여행. 가장 즐거웠던 기억. 산사나이 흉내를 내던 시절의 사진들이다. 암벽, 빙벽. 그러나 무엇보다 아련한 느낌은 캠프파이어! 불 앞에서 부르던 산노래들. “산에는 마음이 있어 산사나이의 보금자리.....” “서른 전에 암벽을 한 남자는 무조건 잡아라. 그러나 서른 넘어 암벽 하는 남자는 무조건 피해라.” 당시에 무슨 격언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리끼리 하는 말이었다. 정상적인 소시민이라면 결혼과 함께 취미생활과도 자연스레 멀어진다는 내 생각. 결혼 이후 나 혼자 야영을 해 본 기억이 없다.
이십 년도 더 된 기억. 관절 다친 산 선배 위문 당시. 대 선배님의 말씀! “집에 누우나 산에 누우나 똑같은데 저 놈 어쩌나!” 지금은 실감 나는 말이다.
마침 딸의 미국 초청. 멀리 떨어져 걱정이 하느니 사는 모습도 보고 딸 키운 보람도 느껴보란 말! 소시민의 가장 걱정거리. 먹고사는 것! 산업화, 근대화 세대의 푸념! “안 먹고 안 입고 너희 키웠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 우리 세대 모두의 삶의 방식이었다. 우리 삶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아보기로 아내와 합의. 두 개의 캐리어에 짐을 잔뜩 담았다.
다행인 것은 나는 등에 난 십 센티는 될 것 같은 흉터에 비해 항암 치료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흡에 곤란을 느낄 정도로 폐를 많이 떼어냈지만 전이는 되지 않은 것이다. 육 개월마다 받는 정기 검진 외에는 다른 치료가 없다는 말. 이십일 남짓의 여행은 조금도 어려움이 없다. 짧은 기간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있을 것도 아니고. 즐거운 마음만 가진 채 미국으로. 실제로 이후 수술을 한 번 더 했지만 석 달씩 미국을 두 번 더 다녀왔다.
미세먼지는 겨울에 더 심해지고 여름은 잠잠해진다. 겨울 여행이면 더 좋았겠지만 날짜가 맞지 않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행지
산타모니카, 한인촌, 라스베이거스, 후버댐, 그랜드캐년, 레드락캐년, 레돈도 비치, 할리우드, 로데오 거리, 디즈니랜드 등 LA 인근의 관광지 등
정신없이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가장 부러웠던 것은 큰 땅덩이도 도로 바로 옆에 있는 석유 채굴기도 아니고, 오염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맑은 하늘과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이었다. 많은 별은 미국에서도 보기 힘들다. 마음에 흡족한 것은 그랜드캐년에서 LA로 오는 차 속에서 본 하늘뿐이었다. 미국도 오염되었다는 얘기!
모든 것이 마음 하기 나름이다. 아내 손 잡고 다니니 모든 걱정이 사라진다.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도. "레드락 캐년" 산길도 힘들기 보단 즐거웠다. 숨 가쁜 것도 잊었다. 특히 미국에는 벽난로 구경이 쉽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는 하기 힘든 캠프 파이어 기분내기. 모처럼 젊은 시절의 산산나이 흉내.
비 오는 수요일. 아침 일찍 우산과 함께 걷기 운동. 비 피할 수 있고 시원한 다리 아래에서 팔 굽혀 펴기로 근력 운동. 샤워까지 하고 나니 할 일이 없다. 코로나 이후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용이한 야외 운동 외에는 집콕 모범생이다.
시간 때우기 겸 여행사진 정리 중 음악회 포스터 사진 한 장 발견. 기타 연주에 참여했던 음악회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중에 열린 음악회. 건강에 신경 쓰는 사람은 바이러스와 같은 사태에 민감하다. 특히 메르스 역시 폐와 상관있는 병이다. 몹시 조심하며 “낙타 고기 먹지 말라.” 등의 해결책에 분노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도 사람 모이는 음악회에 스스럼없이 참여한 것은 메르스에 대한 두려움보다 기타 배운 후 처음 사람들 앞에 선다는 기대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환갑 넘은 나이. 한 마디로 주책! 아니 조심 이랬자 공기 청정기 앞에서 책이나 보고 밖에 나가지 않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도 없었다. 지금 같으면 도저히 겁이 나서 참여 하지 못 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름조차 없이 누구 외 10명이라 적힌 포스터지만 덕분에 학교 강당을 꽉 메운 청중들 앞에서 리듬 쳐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음치에 가까워 노래는 할 엄두를 내지 않는다. 그리고 이후 이렇게 큰 무대에 설 기회는 없었다. 한 마디로 모르는 것이 약이었다.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했던 육 개월 간격의 정기 검진. 조영제를 먹고 사진을 찍고 물을 마셔 배출하고! 좀은 힘든 검사를 하고 맞은 검사 결과! 하늘이 노래진다는 말 실감! “왼쪽 폐에 조그만 종양이 있습니다. 조금 지켜봅시다. 커지지 않으면 악성이 아닙니다.” 커지면 어쩌란 말이냐? 저 번은 오른쪽 폐였다. 모든 병이 마찬 가지겠지만 폐는 조심할 방법도 없다. 숨 안 쉬고 사는 재주는 없으니까. “두 번째는 다르다. 저 번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의사 선생님이 지켜보고 있으니 커지기 전에 떼어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내의 위로가 가장 큰 힘이다. 자식들에게는 비밀.
반찬에 도라지와 더덕 요리가 자주 등장하고 자연산이란 뽕나무 상황버섯 차까지! 이런 것 좀 사지 말라니 지인에게 얻었단다. 그 비싼 것을 누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아내의 마음! 이런 것은 떼어내기 직전에 말하면 안 될까! 스트레스가 가장 큰 건강의 적이라는데. 결과만 말하면 다시 수술하고 미국도 두 번이나 다녀오고 지금도 정기검진 다니며 야외운동 열심히 하고 있다.
늦둥이가 있으면 재미있는 일도 많다. 애들이 인공지능을 어디서 구해왔다. 아침이면 한 마디! “헤이 구글! 오늘 날씨?” 날씨에 따라 우산, 물, 한약 등을 챙겨 운동을 나간다. 하루 6 천보 목표. 워밍업과 근력운동을 하고 있으면 폰이 울린다. 중앙재해대책본부와 경기도에서 코로나 조심 메시지가 온다. 몹시 고맙다. 하지만 “모르는 게 약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 그러나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과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감사!
“여기 왜 이래?”
“수술했습니다.”
“어디?”
“폐.”
“암?”
“예!”
“나도 이거 대장암입니다. 저 사람은 세 번이나 했습니다.”
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곳. 어르신들이 모이는 노인복지관 체육관 락커룸. 샤워 후 머리 말리며 서로의 흉터를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다.
내 폐 안에 암세포가 자랄 수도 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스트레스가 있을까? 더 큰 것은 이 것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곳도 없다는 것이다. 아내 외에는 쉬쉬 한다. 특히 가까운 자식들은 걱정시킬까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내도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은 느낌. 이 곳은 다르다. 동병상련. 같은 수술 경험이 있는 분들이 하는 위로는 정말 다르다. 진심이 느껴진다 할까?
“사람들 모두 매일 몇 만 개의 암세포가 만들어진다. 면역력 떨어지면 걸리고 건강하면 그냥 지나가는 거야. 김 선생은 젊고 운동 열심히 하니 안 걸려.” 정말 고맙고도 믿고 싶은 말이다. 역시 스트레스는 말 통하는 사람을 통해서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
요즘 언론사마다 동물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텔레비전에는 개는 훌륭하다. 등 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프로도 많고, 사람이 주인공인 프로도 반려동물을 안 키우는 인물들이 없을 정도다. 사람은 상처를 주지만 동물은 배신하지 않는다. 이 또한 사람의 이기심이 아닌가 생각. 텅 빈 집에서 주인 오기만 기다리는 반려동물은 행복할까?
마침 미국 사는 딸이 집에 일이 있다며 구조 신호를 보냈다. 첫 째 때는 산후조리를 아내 혼자 하고 왔다. 이 번에는 나도! 반려동물을 쓰다듬을 때 스트레스가 제대로 감소한다는 얘기. 나는 이해 불가. 아내도 저 털, 저 배설물! 스트레스 더 받는단다. 역시 우리는 라떼!
개 엄마, 고양이 아빠가 아닌 손주들 할마, 할빠 노릇하러 간다. 동물과의 입맞춤보다는 손주들의 재롱이 열 배는 나을 거란 믿음으로 다시 미국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