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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철 Jun 14. 2022

사랑과 미더움 사이 그 어드메 쯤

저녁 시간

오늘도 아내는 제일 마지막으로 찌개 냄비를 들고 비어 있는 구석 자리로 간다.  그리고 식구 모두에게

찌개를 덜어 주고 마지막으로 수저를 든다. 아내의 좌석은 가장 구석지고 불편한 자리다. 


평수 작은 서민 아파트. 아직 캥거루를 벗어나지 못 한 두자식들과 함께 하니 아내가 고생한다는 생각.

오늘은 꽃게를 넣은 찌개. 가장 맛 있는 등껍질은 내 찌개 그릇으로. 


씩씩하기만 하던 아내가 어느 순간 부터인가 애들 눈치를 보는 듯한 느낌. 

딸애가 대학을 졸업하고, 막내가 군에서 전역을 하고 난 다음 부터가 아닌가 하는 내 생각.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 곁에 있다는 자식들의 미안한 마음을 안쓰러워 하는 아내의 배려가 나 같은 무딘 눈에는 눈치를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한 것인지, 애들 어릴 때는 호랑이 같이 굴던 아내의 기억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영어에는 눈치란 단어가 없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요즘 TV만 틀면 나오는 먹방과 건강 프로. 대다수가 비만과 관계가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이건 우리집과는 전혀 네버 상관 없는 것들이다. 많이 먹는 것 자랑하는 것 같은 먹방을 보며 우리 애들은 병적으로 적게 먹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입밖으로 내면 돌아오는 막내의 말! "소식이 장수의 지름길." 


아내는 약간 섭섭한 마음도 있는 모양이다. 자식에게는 못 하는 말들을 내게 푸념을 한다.

"깨작거리지 말고 좀 맛 있게 먹어 봐라."

"맛 있다 소리라도 좀 해 봐라."

집안 내력인지 우리 식구 모두 식탐이 없다.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고 주는 대로 불평도 하지 않는다. 

부부는 닮아간다는데 아내만  40년의 결혼 생활에도 전혀 나를 닮지 않았다. 그런 아내도 나이 탓인지 식사량이 많이 줄었다. 당연히 아내가 정성을 다해 만든 밑반찬들이 좀체 줄어 들지 않는다. 그래도 하루 한 가지씩은 새로운 반찬을 만든다. 따라서 아내의 사랑들은 냉장고를 몇 번씩이나 들락거린다.


파김치 한 가닥을 밥위에 얹는 나를 보며 하는 아내의 말.

"당신 친구나 부인 들은 이런 김치는 혼자 한끼에 다 먹더라. 파김치 하나가 뭐꼬! "

나는 병원식을 오래 먹어서 짜고 매운 맛들을 잃어 버렸다. 그런데 애들은 또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저녁 시간의 삽화 하나!

오늘 따라 찌개가 맛 있다. 내 수저들은 찌개 그릇 중심으로. 찌개가 맛 있으니 밑반찬이 더 많은 느낌.

"이 것 다 먹어라!"

바닥에 조금씩 남은 반찬들을 가리키며 아내가 몇 번 같은 말을 되풀이 한다.


일본말 같은 순우리말의 사투리.

"떠리미!  마지막을 치우는 떨이!"


처음에는 밑반찬 떠리미. 후에는 약간 성질이 났다.

전혀 화낸 표정이 아닌 웃음 띈 얼굴로 하는 나의 말.

"내 입이 쓰레기 통이냐?  남은 건 다 내입으로 들어가냐?"


어색한 웃음으로 받는 아내의 대답.

"얼굴이 축나 보여서 그렇지."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딸애의 웃음.

"정말 오랜만에 활짝 웃어본다."


잘 안다. 속 아프다 소리 하기전의 이런 잔반은 당연히 아내의 몫이었다. 위염으로 병원 들락거린 후에 이런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몫. 그래서 전혀 감정 없는 할배 개그 해 보았다. 성장한 자식들의 마음에 조그마한 잔소리가 되지 않기를 비는 나도 자식 눈치?


설거지 후 아내는 내일 담글 배추를 절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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