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무상

인명재천

by 김윤철

"별 일 없제?"

"별 일 있을 끼 뭐 있나?"

"여기는 별 일 있다."


"인생 백 세 시대에... 이제 갓 일흔인데..."

"인명재천이다. 니 한테는 일부러 아프다 소리도 안 했다. 코로나 때문에 오지도 못 한다. 계좌번호 찍었다."


암이 무서운 것은 자각 증상이 없다는 것이다. 안 무서운 암이 있겠냐만은 특히 췌장암은 발견이 어렵다고 한다. 연 전에 같이 모임한 친구가 발병 진단 석 달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정말 절친인데 망할 놈의 코로나 때문에 조문도 할 수 없다! 힘이 쭉! 이럴 때 일수록 힘을 내야한다. 나도 아직 완치 판정 못 받은 몸이다. 마음을 다잡는다.


은행에 들렀다 탄천으로. 억지로라도 힘을 낸다. 철봉 앞에서 스트레칭 중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낯 익은 모습의 어르신. 구부정한 자세에 약간은 저는 듯한 걸음걸이. 아무리 마스크로 얼굴을 숨겨도 바로 알아 볼 수 있는 분이다. 부인이 폐암으로 별세 하시고 갑자기 늙었다고 한탄 하시던 분. 내 등의 상처를 보시고 처남 같다며 친동생 처럼 대해 주시던 분이다.


멀리서 마스크 내리고 인사를 드리니 하이 파이브 시늉만으로 반가움을 표현하신다. 표정을 모르니 답답하다. 마스크 쓰고 뽀뽀하듯 영 개운하지 못 하다. 코로나 사태 직전 이 분과의 삽화 하나.


매일 같은 시간에 함께 운동 하시는 분이 샤워만 하시고 옷장도 비우지 않으신 채 외출. 운동 끝나고 샤워까지 마치고 나오는 길에 다시 만났다.

“어디 다녀오셨습니까?”

“커피 한 잔 해야지.”

“가시죠.”

오백원짜리 동전 하나 넣고 커피 두 잔. 시간만 나면 마시는 커피 탓에 주머니에는 항상 잔돈이 준비 되어 있다. 아날로그 방식.

한 모금 마시는 얼굴에 쓸쓸함이 가득하시다.

“할멈이 내가 보고 싶은 모양이다.”

“네! 무슨 말씀을!”

이 분 상처하신 지 몇 년 되신다.

“할멈이 부르는지 어제 아침에 일어나다 넘어졌다. 침 맞고 지금 물리치료실 다녀오는 길이다.”

“....”

“운동도 못 하고 점심이나 먹고 집에 가야겠다.”

칠 십 년 연륜으로도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 하던 기억. 복지관 식당까지 안내만.

이분의 할멈은 비어가 절대 아니다. 그리움, 아쉬움, 그리고 먼저 간 일에 대한 약간의 원망 등등. 사랑이 듬뿍 담긴 애칭이다.


그래도 턱걸이 30개. 다섯 개씩 나누어 여섯 번. 젊은 사람들과 모양새는 많이 다르지만 나이 칠십에 이 정도면 건강 양호다. 정리 운동 중 폰이 날 찾는다. 미국 사는 외손녀의 전화. 집 밖을 못 나가니 심심한 모양이다. 근 30분 통화.


코로나가 만든 신 풍속도 하나. 가까이 있는 지인은 못 만나지만 멀리 있는 친구들은 자주 만난다.

특히 폐를 조심해야 하는 나는 친구들의 걱정 거리다.

"잘 있제? 조심해라!" 폰이 바쁘다.



자목련 지던 날


어젯밤엔 잔바람도 없었는데

아파트 현관 앞의 자목련이 보이지 않는다

돌아보니 벌써 4월의 끝자락

꽃잎은 바람에 지는 것이 아니라 세월에 지는 것이다


결혼 사십 주년

분 넘치는 욕심에 잔고 확인 하는 손

실핏줄 드러나는 주름 덥힌 손등

잡은 만큼 가는 시간이 아니라서

욕심 따르지 못한 손의 핏줄이 더 아리다


부지런한 경비 아저씨 쫓아간 목련 꽃잎처럼

내게도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이전 16화코로나 시대의 운동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