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어떤 사람은 배워, 어떤 사람은 구름, 어떤 사람은 안 움직여. 이게 뭐야?"
외손주들과 놀아주러 미국까지 날아온 할애비는 손주들과의 나들이에 마냥 신이 났던 모양이다.
미국은 아동 학대법이 매우 엄하다. 10살 이하의 어린이를 혼자 두면 친권을 뺏길 수도 있다.
등, 하교도 보호자가 함께 해야 한다. 덕분에 나도 미국 구경 몇 번 했다.
오늘은 앤데믹 이후 처음 하는 손주들과의 하는 등굣길. 즐거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 노래 한 구절.
옛 팝송. "글랜 캠벨"의 "타임" 첫 구절.
"some people run, some people crawl, some people don't even move at all."
미국서 태어났지만 우리말부터 먼저 배운 초등 2학년 외손녀가 영어 발음 R과 L이 구별 안 되는 할애비의 흥얼거리는 소리에 의문을 표시한 것이다. 영어 정말 어렵다. 손주들에게 놀림받을 일만 남았다.
"어떤 사람은 달리고, 어떤 사람은 기어가고, 어떤 사람은 아예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그럼 나는?
기어가도 될 사람이 달리는 사람 흉내 내려하는 은퇴 노인이 아닐까?
병원에서 금연 문자가 왔다. 고맙다. 퇴원 시 병원의 주의 사항은 금연과 민간요법 맹신 금지 딱 두 가지다. 그만큼 담배가 해롭다는 말. 그래서 얼마간은 금연 문자를 정기적으로 보내준다. 마침 오늘은 육 개월의 정기 검진 있는 날. 아내 손 잡고 모처럼 장거리 외출.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 나란히 동승. 갑자기 누군가 등을 떠민다. 돌아보니 나를 제치고 앞으로. 그때 깨달았다. 에스컬레이트는 편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고 더 빨리 가기 위한 수단이다. 다음부터 에스컬레이트 탈 때는 아내와 나란히가 아니고 아내 뒤에! 노 빨리빨리!
조금 늦어도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다름이 없다. 좋습니다. 육 개월 뒤에 봅시다.
나는 병원 신세 후 조금만 달려도 숨이 가쁘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달리고 있다. 집 앞의 8차선 도로.
30초 정도의 파란불. 학생들이 달린다. 이유는 등교. 나는? 길 건너면 학생들은 학교로 나는 노인복지관으로. 오후엔 그냥 빈둥거린다. 나는 은퇴한 백수. 급할게 하나 없는 몸이다. 왜 달렸을까?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싫어서? 글쎄다!
운동 후의 상쾌한 기분으로 집에 오는 길. 골목을 들어서니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나는 은퇴한 교사, 마음이야 뻔하지만 낯 선 도시 한 구석진 곳. 늙고 병든 몸으로 한 소리 하기도 쉽지 않다.
돌아서 큰길로. 멀고 먼 인생길 무에 급해서!
반 세기 전, 훈련병 시절. 그때는 담배 일 발 장전이란 시간도 있었다. 라떼의 전설. 50분의 고된 훈련. 미군들이 쓰던 M1 소총은 내 체격에는 무리였다. 꿀 맛 같은 휴식 시간. 모두가 일 발 장전. 혼자 별 사탕. 모양 빠진다는 생각. 그래서 시작한 담배. 담배의 폐해가 그렇게 강조되지 않던 시절이니 남 보다 약간은 늦게 배운 담배였다. 그러나 50년 뒤 의사님의 말씀. "담배를 피워 허파꽈리가 망가졌습니다. 허파는 불가역성이라 조심 하며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가슴에서 올라오는 후회와 함께 10년째 금연 중. 아직도 담배 연기는 구수하다.
빨리빨리 가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