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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호 Oct 22. 2023

떠난이들_8-1

이창호 연작소설_되돌아온이들

목적


1


우주시내 한 초등학교, 정문 앞에는 어린 학생들과 인사하는 부모들로 붐볐다. 준호는 엄마와 꼭 끌어안고 인사했다.

"아들, 사랑해. 친구들과 재밌게 놀아."

"응, 엄마 사랑해. 갔다 올게, 안녕."

준호와 헤어진 민하는 발길을 재촉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민하는 사물함에서 조끼를 꺼내 입었다. 탈의실에서 창고를 지난 민하는 마트 계산대에 섰다. 학보사 동기 소개로 서울의 한 신문사 그래픽기자로 일하던 민하는 준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집 근처 마트로 직장을 옮겼다. 민하는 아침 일찍 준호 등교를 도와주고 마트에서 5시간 근무한 뒤 오후 3시 반쯤 다시 데리러 간다.

민하가 마트 근무를 마치고 준호를 데리러 가는데 전화가 왔다.

"잘 지내시죠? 지난번에 국세청 계약직 가능하면 가고 싶다고 했었죠? 나라일터에 보니까 대변인실 7급 직원 뽑는데요."

"그래요? 고마워요, 확인해볼게요."

진풍이었다. 민하는 건혁의 아내에게 접근할 생각이었다.


2


건혁은 민하가 내부 고발한 사실에 분이 풀리지 않았다. 또 자리가 비자, 업무량이 늘었고 이점에서도 민하를 원망했다. 특히 건혁은 먹잇감이 사라진 지금 상황이 싫었다. 며칠 뒤, 혜성신문은 민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면접을 진행했고 사흘 뒤 신입직원이 출근했다.

"안녕하세요, 가을이라고 합니다."

가을은 수줍어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건혁은 가을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걸스데이 멤버 유라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건혁은 속으로 웃으며 민하가 나간 걸 고마워했다.

‘민하 그년은 예쁜 것도 아니구나. 앞으로 회사 다닐 맛 좀 나겠어.’

건혁은 가을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기도, 묻기도 했다. 가을이 대학 표지 모델이었다는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3


전철역 앞 오래된 건물의 경양식집, 내부를 둘러보던 민하는 맥주를 마시는 진풍을 보았다.

"내가 고마워서 술 한 잔 산다니까, 여기 밥집 아니에요?"

"아니에요, 여기 소주도 팔고 안주도 다 있어요."

며칠 전, 민하는 기다리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국세청 대변인실 시간선택제 다급 채용시험에 최종 합격하였습니다.’

다급은 공무원 7급을 의미하고 시간선택제는 근무시간이 주 40시간 이하로, 민하는 주 35시간을 기본으로 근무하는 조건이다.

"근데 국세청에 들어가서 무슨 작전이 있어요?"

"아니요, 저도 아직 계획은 없어요. 일단 제가 자기 아내랑 친해지는 것만으로도 무섭지 않을까요?"

"여기 생활 정리하는 게 쉽지 않을텐데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아들 학교부터 알아봐야죠."


4


세종시의 한 초등학교, 70대 아동안전지킴이는 학교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학교 뒤뜰 쪽으로 나가다, 쓰러진 청년을 보고 깜짝 놀라 그 사람을 깨웠다.

"저기, 선생님이세요? 왜 여기 누워 있어요? 얼른 일어나세요. 저기요!"

청년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아동지킴이는 119에 신고한 뒤 힘겹게 심폐소생술을 했다. 소방이 출동 중 아동지킴이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청년이 벌떡 일어났다.

"아 선생님 저 괜찮습니다. 혹시 신고하셨으면 취소해주세요. 수업 준비 때문에 먼저 가보겠습니다."

청년은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아동지킴이는 등교하는 학생들을 위해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문 앞, 민하는 준호와 인사를 나눈다.

"준호야, 엄마 오늘부터 국세청 공무원 된 거 알지? 학교도 더 가깝고 여기가 공부하기 더 좋을거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알겠지?"

"응 엄마, 잘 다녀와."


5


민하의 업무는 혜성신문 때와 비슷했다. 국세청이 발표하는 보도자료에 그래프, 표, 사진 등 일러스트 작업이었다. 업무는 어렵지 않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준호도 담임선생님이 좋다며 학교에 적응하는 것 같았다.

건혁의 아내와 별개로 세종시 생활에 민하는 만족했다. 계약기간 2년을 채우고 더 근무하고 싶었다. 3개월쯤 지난 뒤 인사이동이 있었다. 시간선택제인 민하는 해당이 없었지만 건혁의 아내는 자리를 옮겼다. 월요일, 민하의 사무실에 3명이 새로 왔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인사하는데 민하는 한 사람만 보였다. 건혁의 책상 위 액자에서 본 그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부가세과에서 근무하던 세미입니다. 대변인실 근무는 처음이라 잘 부탁드려요."

세미는 9급 공무원 시험을 보고 들어와 6급까지 빨리 승진한 케이스다. 5급 승진을 하려면 대변인실 근무가 도움이 된다고 들어 자원했다. 청장 직속인 대변인실은 자신의 업무능력이 뛰어나다면 고위직 눈에 띄기 좋은 곳이다.

<파동> 배민채 2023. 12.


6


혜성신문 편집부 회식, 가을이 입사한 뒤 처음 갖는 자리였다. 가을은 소주를 채운 잔을 쌓은 탑주를 5잔 마시고 취기가 올랐다. 8잔 중 3잔은 건혁이 대신 마셨다. 편집부 선배들은 입사를 축하한다며 가을에게 모두 술을 따라줬다. 대학생활 나름 술 잘 마시기로 유명했던 가을이지만 버티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옆에서 계속 말을 붙이는 50대 선배가 정신을 더 혼미하게 했다.

"가을이라고 했지? 아이유가 부른 너의 의미 알아?"

"네 알죠."

"원래 그게 산울림 노래야,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이거도 알지?"

가을은 속이 울렁거려 "들어본 거 같다"고 대답하고 화장실로 갔다.

2차 호프집에서 가을은 힘겹게 버텼고 끝나자마자 택시를 잡았다.

건혁은 회식을 마치고 자기 방에 누워 가을이 모델이었던 대학 표지를 찾아 보고 있었다.


7


"민하 씨는 여기 오기 전에 어디 살았어요?"

"우주시에 살았어요."

"어머나, 거기 우리 남편 사는데."

"아 그래요? 주말 부부시구나."

민하와 세미는 가벼운 대화를 나눌 정도로 가까워졌다.

저녁시간 한 고깃집, 새 직원들이 왔다며 대변인이 회식을 열었다. 처세에 능한 세미는 술도 시원하게 잘 마셨다. 민하는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며 잔을 들었다 놨다 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세미는 취기가 올라와 기분도 좋고 직원들과 대화가 조금 편안해졌다. 새로 온 자신을 편하게 대해줘 고맙다며 세미가 술잔을 돌렸다. 스스로 한 잔 마시고 옆 직원에게 한 잔을 권하는 식으로 세미는 넉잔을 연거푸 마셨다. 민하에게도 잔이 돌아갔다.

취기가 오른 민하는 소변을 보고 화장실에 잠깐 앉아 있었다. 세미는 화장실로 들어서며 누군가와 통화했다.

"응 자기야, 아직 회식 중이지. 2차까진 하지 않을까."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민하는 건혁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세미의 말을 듣고 민하는 건혁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나도 사랑해, 끝나고 바로 자기 아파트로 갈게."


<떠난이들> 시즌2 <되돌아온이들> 2편은 상하로 나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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