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날아온 메시지가 쏘아 올린 꿈같은 하루
아침이었다. 단체 채팅방에 편집장이 유튜브 콘텐츠를 공유했다. 제목은 'Vacance Mixtape : 미뤄둔 책을 읽으며'였다.
화면에는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음악은 한적한 시골길을 거니는 누군가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클래식기타 노래들이었다.
화면 바로 밑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댓글은 1년 전에 'yeah'라는 알파벳이 두 번 반복되고 4자리 숫자가 붙은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 달았다.
'최근 6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에게서 이제 저를 더는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어요.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세상이 무너져 내렸고, 사랑과 인생에 무력감을 느꼈어요. 한동안 이별노래만 듣다가 제가 가장 행복하던 시절에 즐겨 듣던 ode가 생각나서 퇴근길 우산을 폄과 동시에 재생버튼을 눌렀는데, 노래를 들으며 빗속을 걷다 보니, 문득 내 인생도 슬픔찌꺼기만 있는 게 아니라 낭만적인 동화 같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어요. 먼 훗날에 오늘 남긴 댓글을 보며 미소 짓고 싶어서 댓글을 남겨요.'
댓글을 갈무리해 편집장이 있는 채팅방에 보냈다. 편집장은 "그럴 줄 알았다ㅋ 댓글에 빠질 줄"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눈꽃님은 "네가 댓글 여자인 척하고 쓴 거 아님?ㅋㅋ"라고 농을 했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아침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잠에서 깬 적이 언제였지?'
기분 좋게 출근해 오전 일과에 집중했다. 앞서 마친 작업의 일부 추가할 게 있어 그 일을 마치고, 앞으로 한 동안 바쁠 일거리를 맛보기로 처리했다. 전화업무도 있어 오전이 빠르게 지나갔다.
우동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남은 점심시간 잠을 청할 요량이었다. 지난 세월 수백 번도 더 들여다본 '무한도전'을 틀어놓고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무빙'의 '봉석'이처럼 노란색 패딩점퍼를 입고 있었다. 대학 친구들이 여럿 나왔다. 장소는 고물상이었다. 고물상에서 나는 친구들과 무슨 운동경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장애물들이 나타나 친구들과 그곳을 지나가야 했다. 나는 친구들보다는 신체능력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앞장서 장애물을 제거하거나 다리를 건너는 친구들의 손을 잡아줬다.
나는 갑자기 나타난 난코스에서 두 명의 친구가 장애물을 벗어나도록 도와줬다. 그리고 내가 그 장애물을 벗어나자, 마치 자물쇠에 키를 넣어 푼 것처럼 빗장이 풀렸다.
그래서 내 뒤에 있는 친구는 자연스럽게 장애물에서 벗어났다. 나는 뒤돌아 그 친구를 가만히 바라봤다. 대학 새내기 때 만나 6년째 되던 해 헤어진 첫사랑이었다.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이제 그냥 지나가도 돼."
그녀는 "그럼 안 되는데"라고 말하고서 공중의 한 곳만 응시하고 있었다. 나를 잊은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그녀는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녀는 교통사고가 난 것 같았다. 휠체어 앉아 있었고 장애물이 무서웠는지 울먹이고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꿈속에서 그녀는 나의 동생과 친구였다. 내 동생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기쁘게 "빨리 왔나 보네"라면서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휠체어를 밀고 갔다.
나는 그녀가 다쳐서 몸이 불편하다는 인지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엉엉" 울었다. 얼마나 슬프게 울었는지 온몸이 다 떨릴 정도였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깨어났다. 어쩔 때는 자주 그녀 꿈을 꿨다. 요즘에는 그녀 꿈을 꾸지 않는다.
어쩌면 오늘 편집장이 보낸 문자메시지는 이 꿈을 꾸기 위한 '빌드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연인이 건넨 농담이 그녀에 대한 내 의식을 깨운 것 같다.
댓글에 적힌 '6년 동안 사귀었다'는 걸 보고 나는 바로 그녀를 떠올렸다. 아이디를 이루고 있는 'yeah'는 그녀의 이름 두 번째 글자다.
봉석이와 고물상, 장애물이 꿈속 소재로 쓰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 동생이 나온 건 그녀가 유학 가는 동생에게 외국 가면 못 먹을 거라며 사준 최후의 만찬(?) 때문일까.
즐거운 아침 받은 메시지에서 시작한 나의 하루가 이렇게 글로 마무리되다니, 행복한 하루다.
오늘은 10월의 마지막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