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 오빠는 6살 율이에게 모진 말을 잘한다. '못생긴 게, 먹으면서 쳐다보지 마 더러워, 바보 같은 게'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아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동생을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은 자기 마음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특히 타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나이의 율이에게 그런 말들은 독약과 같다.
오빠가 본 못그렸네 그림
처음 오빠가 바보 같다고 말했을 때는 울었다. 하지만 그 말이 반복되자 조금씩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 정말 바보야?
의심 가득한 표정의 아이를 꼭 안으며 속상하겠다며 마음을 토닥여줬다. 그리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한다.
율아, 믿지마. 그건 사실이 아니야.
'
살다 보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타인을 놀리는 말, 자신의 낮은 자존감이 더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타인을 밟고 서는 말, 누군가를 조종하기 위해 던지는 칭찬과 비난의 말들을 들을 때가 있다.
가슴도 없는데 왜 속옷을 입어?
사람 구실 못하는 걸 데려와서 내가 사람 만들어 놨지.
네가 그러고도 엄마야?
넌 좋은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내 말 좀 들어.
지금까지 그런 말들에 반응하면서 살아왔다. 나의 못난 몸을 확인하며 부끄러워했었고 나의 미성숙한 과거를 소환해서 다시 괴로워했다. 좋은 엄마라는 간판을 달기 위해 종종 거리며 살아왔고 부탁 같은 강요에 휘둘리며 살았다. 누군가 바보라고 놀리는 소리에 나 바보 아니라고 악을 쓰거나 때론 펑펑 울기도 하고 바보로 보이지 않기 위해 애썼던 삶이다. 난 율이가 그런 피곤하고 소모적이며 불행한 삶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믿지마 사실이 아니야'라는 말만으로는 힘을 얻지 못한다.
배가 많이 고픈 날이 있다. 그런 날 집에 돌아오면 허기를 달래는 것에 급급해서 아무거나 먹는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공들여 만든 건강한 요리를 먹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먹다 남은 과자 봉지에 손을 대기도 하고 컵라면에 물을 붓기도 한다. 안다. 이런 것들로 배를 채우면 저녁시간에 입맛이 없어져서 건강한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배가 고픈 것은 못 참겠다.
존재를 확인해주는 말. 이것은 마음의 공복감을 채워주는 말이다. 마음이 헛헛하면 주변에서 말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거르지 않고 주워 먹는다. 그런 말이라도 주워 담아서 존재를 확인하려고 든다. 그런 사람들에게 '믿지마, 사실이 아니야.'라는 말은 그냥 굶어 죽으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평소에 마음의 허기를 채워놓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먹고 싶은 말, 필요한 말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단, 칭찬으로 허기를 채워서는 안 된다. 칭찬도 또 하나의 판단이다. 칭찬으로 채운 허기는 꼭 탈이 난다. MSG 가득한 음식만 찾아다니는 꼴이 된다. 밑 빠진 독처럼 먹어도 먹어도 계속 허기가 가시질 않고 타인의 인정만이 나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내 존재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판단과 평가를 뺀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잠자기 전이나 아침에 율이를 깨울 때 '여기 있네'를 말한다.
율이가 여기 있네. 말랑말랑 배가 여기 있네, 감은 눈이 있네, 꼬물꼬물 거리는 손가락이 있네, 토실토실 엉덩이가 있네 하면서 자신의 신체 감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일상에서는 '마음있네'를 한다. 슬퍼? 행복해? 짜증 나? 더 놀고 싶었어? 너한테 소중한 것이었구나...
신체 감각과 느낌, 원하는 것에 집중하게 하는 훈련은 마음에 밥을 먹이는 일이다. 밥을 든든하게 먹은 마음은 아무 말이나 믿지 않는다.
바보 같은 게, 못생긴 게
'내가 좋아하는 오빠가 그런 말을 해서 속상하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닌데. 오빤 날 잘 모르네. 난 그 말 안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