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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Oct 19. 2021

여기, 내가 있어.

지옥으로 이끄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둘째 율이가 하원 할 시간이 되어 어린이집에 갔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어린이집 앞 놀이터에는 율이와 같은 반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덕분에 아이들의 부모들은 집에도 가지 못하고 작은 놀이터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서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 오늘은 친구들이 많아! 나 놀다 갈래!


집 근처 놀이터에 가면 아이는 가장 먼저 함께 놀 친구들을 찾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그러다가 자기 또래 아이들이 없으면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 율이를 보면 늘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어린이집 친구들이 집에 가지 않고 놀고 있을 때는 되도록 놀이 시간을 확보해준다. 그런 날이면 아이는 '엄마도 내 친구 엄마랑 놀아도 돼~'라며 큰 은혜를 베풀듯 얘기한다.


평소에는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하지 않는 편이다. 최근 들어 아이는 놀이하는 자신을 곁에 바짝 붙어서 관찰하는 엄마를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엄마와 있을 때와는 다른 모습의 자신을 들키는 것이 부끄러운지 자꾸 엄마는 다른 데서 놀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그날은 부모들이 많아서 마땅히 앉아 있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근처에 서 있다가 우연히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하게 됐다.


 놀이터에는 8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2~3명씩 서로 모르는 아이들처럼 따로 놀고 있었다. 그 안에서 미묘한 긴장감이 계속 감돌았다.


그러다가 결국 사건이 터졌다. 같이 놀던 두 아이 중 한 아이가 울먹이고 있었다. 술래를 피하던 은진이가 뒤에 있던 소윤이를 못보고 밀쳤던 것이다. 소윤이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울먹이며 은진이가 자길 밀어서 떨어질뻔 했다는 얘기를 했다. 그 순간, 은진이는 얼굴이 굳어지고 몸이 얼어붙었다. 당황해서 말도 못 하고 쭈뼛거릴 뿐이었다.


'많이 놀랐겠다. 눈물도 막 나려고 하네. 어디 보자. (가슴에 손을 대보며) 심장이 엄청나게 빨리 뛰네. 만져봐 소윤아.'



소윤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해서는 자기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본다.


'어? 진짜 빨리 뛰어요!'


나는 소윤이 손을 잡고 가슴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말했다.


'정말 놀랐네. 다행이다. 떨어지진 않았어. 그래도 심장은 많이 놀랐나 봐. 이렇게 뛰다가는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가겠네~ 가슴을 쓸어서 다시 내려보내자.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꿀꺽해 심장이 제자리로 가게 '


그리고 은진이의 손을 잡아서 소윤이의 가슴에 손을 올려줬다. 은진이는 가만히 심장을 느끼며 한참을 집중했다.


'정말 빨리 뛰어요...'


커진눈을 한 은진이에게 소윤이가 많이 놀랐나보다고 얘기했다. 그제야 은진이도 긴장이 풀렸는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율이 엄마, 그런데 저도 심장 많이 뛰어요.'



은진이가 뛰는 가슴에 손을 대고 있는 곳에 소윤이 손을 가져다 댔다.



'엄청 빨리 뛴다!'



아이들은 서로의 심장을 확인하고 서로 많이 놀랐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놀이를 하며 급하게 피하다가 실수로 그런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소윤이가 말했다.





우리 다시 놀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른들은 실수하기가 쉽다. 우는 아이, 즉 피해자가 생기면 가해자를 찾기 바쁘다. 상황을 빨리 마무리하고 평화를 되찾고 싶어한다.


하지만 누가 그랬어?! 사과해!라는 말을 하며 원인을 제공한 아이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고 화해를 강요하는 것은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어른이 하라고 하니 아이들은 앵무새처럼 말을 따라 하고 억울한 마음이 있어도 서로를 껴안으며 화해를 할 것이다. 이런 화해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다. 친구가 밀었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여전히 서운하고 짜증이 난 상태로 마무리가 된 상태여서 비슷한 일이 또 생기면 '쟤는 날 미워해요. 자꾸 밀어요. 짜증 나요. 쟤랑 놀기 싫어요'를 말할 것이다. 일부러 한 것이 아닌데 자신의 입장을 말하지 못한 아이는 억울한 마음에 미안하다는 말을 더욱 하기 싫어진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 서로를 이성적으로 이해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미 서로에게 상대는 나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이 되어있고 서로의 입장이나 사정을 아무리 설명해도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다.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가며 부정적인 감정을 강화하기 시작하고 결국 내가 만든 막장 드라마 속 주인공을 선택한다. 그때는 생각을 멈추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 나를 돌보고 안전함이 회복되야 상대의 마음과 긍적적 의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생각에 빠지지 않고 나를 돌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관찰하기 이다.



내 심장이 뛰고 있어. 하나, 둘, 셋... 많이 놀랐나 봐.

너 때문에 죽을 뻔했어. 네가 사람이야? 어떻게 친구를 밀어?

쉬~~~ 심장이 뛰고 있어. 괜찮아. 놀랐지.

너 일부러 날 민 거지?

쉬~~~ 하나, 둘, 셋. 심장아 괜찮아... 숨을 크게 마시고 꿀꺽.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내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다 망했어! 이제 끝났어!

지옥으로 빠지는 생각들이 물밀 듯 밀려올 땐, 가슴에 손을 대고 심장이 뛰고 있음을 느껴보길 바란다.


그래 내가 여기 있어. 나의 마음이 여기 있지. 이 생각은 모두 사실이 아니야.





숨을 크게 마시고 꿀꺽!







한 시간 반의 놀이가 끝나고 돌아가는 은진이를 봤다. 은진이는 신발을 신고 가만히 자기 가슴에 손을 대보고 있었다.







그래 여기 내 심장이, 마음이 있어.



우리에게는 생각과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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