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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Jul 02. 2021

작은용기2_내가 듣고 싶었던 말

부모가 되면 잊는 말들

박시가 요즘 친구랑 사이가 안 좋다는 말을 들은 남편은 나에게 달려와 호들갑을 떨었다.


남편: 들었어? 쟤 학교 얘기?

나: 응

남편: 그런데 가만히 있었어?

나: 가만히 안 있으면?

남편: 뭐라도 해야지!

나: 얘기 들어줬어. 친구들과 친해지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지.

남편: 뭐? 애한테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해? 그렇게 정의 내리면 친구 사귀는 게 어려운 일이 된다고!

나: 당신은 쉬웠어?

남편: 난 친구 사귀는 게 어려웠던 적이 없어. 제일 쉬운게 친구 사귀는 거지.

나: 난 지금도 인간관계가 어려운데...

남편: 선을 제대로 못 그으니까 그렇지. 넌 지금 경계가 불분명한, 선하나를 제대로 못 긋는 사람 하나를 만들어 내고 있어. 쯧쯧

나: 그래서 당신이 여기 있지. 당신한테 선을 확실하게 그었으면 지금 당신은 내 곁에 없을 수도 어.

남편: 뭐?

나: 나의 애매모호한 관계 맺기가 지금 우리의 관계를 만들었다고^^

남편: 참나... 말이 안 통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남편은 말끝을 흐리며 밖으로 나갔다.


난 '친구 사귀는 것이 제일 쉬운 일'이라는 남편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말은 친구 관계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을 모자란,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인간관계가 힘들 수 있다. 또는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어려워지는 관계도 있다. 특히 잘하고 싶은 마음,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 관계 안에서 더 힘들어지기도 한다. 그것이 제일 쉬운 일이라고 말하다니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그렇다면 남편이 쉽게 사귄 친구들은 지금 얼마나 남아 있을까?




물론 어떤 행동에 '어려운, 끔찍한, 괴로운'이란 단어를 붙이면 더 힘들고 엄두가 안 날 수 있다.


친구는 괴로워, 사람을 사귀는 것은 어려워, 인간관계 맺기는 끔찍해.


이런 생각에서 오는 두려움은 신뢰 관계에서 오는 편안함, 친밀한 관계에서 오는 따뜻함, 코드가 맞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과 기쁨이라는 감정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생각에 무기력을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넘겨주는 생각들이다.


친구와의 사이에서는 편안함과 기쁨이 있지, 하지만 의견이 맞지 않을 땐 괴롭기도 해.


처음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은 긴장되고 어려워. 하지만 그 불편한 시간을 견디면 나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든든한 친구를 만날 수도 있지. 내 친한 친구 00 이와 처음 만났을 때도 말 거는 것이 쉽진 않았어.


000 때문에 학교 가는 것이 끔찍해. 하지만 학교에 가면 다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지. 관계 맺기가 끔찍한 게 아니라 000과 내가 잘 맞지 않는 거야. 좀 거리를 두는 시간이 필요하겠다. 세상 모든 사람과 잘 지낼 필요는 없지.


이렇게 관점을 확장하는 생각을 하려면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




영어단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간. friend...박시는 친구가 정말 소중한가보다


'많이 힘들었겠다. 맞아 때론 어려울 때가 있어. 친한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 든든한 일인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한 친구가 한 반에 없어서 많이 외로웠겠다.'


내 마음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

힘들 때도 있다는 것.


이 마음을 인정해주고 주저앉아 슬퍼하는 아이 옆에 조용히 함께 있어줄 때 마음의 힘이 생긴다.



'친구를 사귀는 것은 쉬운 거야. 왜 어렵다고 생각해? 그냥 다가가서 같이 놀자고 얘기해.'


이 말은 마음의 힘을 키우는 말이 아니다. 때론 마음을 더 쪼그라들게 한다.












얼마 전 퇴근하고 집에 온 남편은 입맛이 없다며 소주를 꺼냈다. 심각한 표정으로 소주를 마시던 남편이 내가 옆에 앉자 회사 직원들을 관리하는 것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그리고 내가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 공감해주고 자기편에 서서 얘기해주기를 바랐다.


내가 만약 '난 동료와 지내는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던데? 그거 어려운 일 아니야. 그래서 어떻게 사회생활하겠어? 리더십이 그렇게 없어서 회사 운영을 할 수 있겠어? 내일 회사 가서 직원들에게 단호하게 당신 생각을 말해!'


라고 말했다면 남편은 자신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잠들 수 있었을까?


남편은 어린 시절에 받지 못했던 공감과 혼자 해결하며 버텨온 시간들이 길다. 그리고 시간들이 쌓여 당연히 해야하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냈다. 그런 점을 잘 알고 있고 안쓰럽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지만 당연시를 품은 채찍질 같은 말들이 아이에게 향할 때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그 말들이 아이의 마음에 들어가 평생을 떠들어 대며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들어야 하는 말과 듣고 싶은 말 모두가 필요하다.




오늘도 나는 내가 어린 시절 듣고 싶었던 말을 아이에게 해준다.







힘들겠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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