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숨 쉬면서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다시 말해봐. 엄마 도움 필요한 것 아니야? 엄마는 그렇게 소리 지르면서 말할 때는 도와주고 싶지 않아!
그냥 좀 찾아줘!!! 으앙 으아아....
정확하게 말해야 도와주지. 길고 색깔 여러 가지 인 게 뭐야. 더 설명해봐.
몰라, 그냥 찾아줘
그러니까 그거 펜 아니야?
그건 엄마 생각이지. 아니야!
맞아 우린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 그래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야 찾을 수 있어...
울음과 비명이 계속되고 길고 긴 대화가 오고 갔다.
그리고 마지막 대화
율아 엄마 도움이 필요했어? 원하는 걸 한 번에 딱 알아듣고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답답했어?
응! 답답했어.
엄마도 돕고 싶었어. 그런데 큰소리로 소리를 지르니까 돕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더라. 엄마한테는 친절이 필요했어.
그런데 왜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어?
어?
왜 예쁘게 말하라고 했어. 다음에는 엄마도 친절이 필요하다고 얘기해줘.
난 도움이 필요하다고 얘기할게.
아이가 찾았던 물건은 나와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어린이집에서 활동용으로 보내준 것인데 실에 밀랍을 코팅한 것처럼 생겼었다. 나도 설명하기 힘들었을 물건. 이것을 자세하게 말해보라고 했을 때 밀려오는 답답함이 짜증을 불렀나 보다. 하지만 앞으로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나올 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낼 수는 없다. 설명을 더 자세히 하거나, 내가 직접 나가서 물건을 찾아 보여주며 상대에게 알려줘서 다음에 쉽게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다른 물건을 가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한 사람이, 지금 바로, 한 가지 방법만으로 해결해 줘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 이 순간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아이가 배웠으면 좋겠다. 자신의 바람을 이룰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길 바랬다. 그리고 타인이 기꺼운 마음으로 도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도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얘기를 듣기 위해서는 이미 아이 마음에 펼쳐진 지옥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런데 아이의 빨개진 얼굴과 호통만 듣고 나도 내 마음의 지옥으로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마음의 지옥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아이에게 예쁘고 착하게 말하라고 했으니...
엄마, 지금 내 마음이 예쁘지 않아.
마음이 울고 있을 때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더 크게 웃는 나였다. 어둠의 그림자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사랑받지 못할까 봐 햇살만 받으며 큰 아이처럼 밝게 얘기하고 많이 애썼다. 그렇게 40년을 살다가 사십이 되어서야 맘 편히 울고 화내며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됐는데 이런 삶을 아이에게 넘겨줄 뻔했다. 하지만 다행히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렀고 다양한 선택지가 많다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엄마, 지금 내 마음이 지옥이야. 도와줘.
아이의 호통은 나를 괴롭히고 아프게 하려는 공격이 아니라 도움을 요청하는 비명이었다. 아이에게 삶의 기술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아이의 마음을 꼭 안고 지옥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주고 나서 알려줘도 늦지 않다. 발바닥이 뜨거워서 동동거리고 있는 아이에게 웃으며 허리 펴고 바른 자세로 서있으라고 말하는 것은 지옥을 온몸으로 느끼라고 다그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단, 아이의 마음으로 들어갈 때는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그곳이 따뜻하고 향기로운 곳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난과 책망, 판단과 미움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아이의 마음에서 바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내가 그곳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평소에 마음의 길을 잘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삶의 순간순간에 단단한 끈을 연결해 둬야 한다.
나는 마음 지옥에서 지금 이 순간으로 나오는 길을 잘 알고 있을까? 나는 삶의 어떤 순간에 끈을 연결해 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