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40대 혼자남의 점심밥 먹은 이야기
"방어 좋아하세요?"
"좋아합니다."
그렇다. 나는 방어를 좋아한다. 매해 겨울이면 방어를 먹었다. 대방어의 기름진 고소함. 그 맛을 잊지 못했다. 좀처럼 웨이팅을 하지 않는 나지만, 작년에는 망원역 근처 방어 맛집에 가기 위해 7시간 웨이팅도 강행한 바 있다.
하지만 올겨울은 좀처럼 방어를 먹을 기회가 없었다. 방어 가격이 올랐다. 찾아보니 어획량이 줄었는데, 수요는 급증했단다. 방어 맛을 알아버린 '맛잘알' 코리안들이 겨울이면 습관처럼 방어를 찾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가격이 오르니, 나같이 천한 신분에 있는 이들은 방어를 먹기가 힘들다. 내 주변에도 모두 천한 신분들뿐이다.
하지만 난 이틀 연속으로 먹었지롱.
사실 이틀 중 첫날은 계획된 방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갑자기 찾아오는 행운도 있는 법이다. 회사 선배가 '급 한 잔'을 제안하며 '내가 쏜다!'를 시전했다. 아무리 선배가 쏘는 거라지만, 평소 같으면 MZ의 끝자락 세대로서 '금요일 술자리를 제안하시군요. 몰지각합니다. 싫습니다'를 외쳤겠지만, 그는 메뉴로 '방어'를 제안했다. 거부할 수 없다. "좋습니다. 선배와의 오랜만의 술자리. 정말 기대됩니다" 가야지. 암, 가고말고.
두 번째 날은 계획된 방어였다. 그 전주 나는 연말연초를 함께 보낸(이제부터 그를 ‘연말연초남’이라 하겠다. 연말연초남 관련 이야기 두 편: [오늘 점심은] 2025년 마지막날, '복지리', [퇴근길 한끼] 번외_새해 첫날 감자탕) 친구에게 방어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자고로 방어는 함께 먹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 그래서 작년 말 10년 만에 연락이 온 대학 후배에게도 연락해 함께 보기로 했다. 이 새로운 게스트는 "오빠 나 친구 없어. 나 좀 불러줘"라고 해서 앞으로 자주 불러보려고 한다.
이틀 연속 방어. 삼성 이재용 회장도, SK 최태원 회장도, 현대차 정의선 회장도, 심지어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도 부럽지 않다. (사실 부럽다. 개부럽다.)
어쨌든! 이틀 연속 방어라니. 성공의 맛이다.
토요일 오후 세 시. 사당역 '우리회포차'. 오픈런을 약속했다. 설레는 마음에 약속 10분 전쯤 도착했다. 그런데 멀리서 벌써부터 무리 지어 있는 마치 방어를 낚기 위해 작당모의를 하고 있는 듯한 '방어사랑인간무리'가 보였다. 불안했다. 서둘러 입구에서 입장 대기를 걸었다. 7번째.
다행히 오픈 후 십 분쯤 지나 입장할 수 있었다. 당당히 들어온 우리는 대방어를 주문했다.
역시 고소했다.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선홍빛 살점. 쫄깃함까지 완벽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거의 모든 테이블이 방어를 시켰다. "방어, 너도? 야 나두!" 모든 테이블에 행복한 웃음이 가득했다. 우리가 들어오고 얼마 후 웨이팅이 시작됐는데, 추운 날 밖에서 기다리는 이들의 표정에서조차 기대감이 보였다.
만족스러운 방어였다. 성공한 기분이었다. 엄마아빠! 나 올겨울도 방어했어!
P.S. 사실 방어를 먹기 위해 자주 찾는 단골 횟집이 있었는데, 작년에 갑자기 폐업했다. 동네 횟집으로 남녀노소 모두 자주 가는 곳이었는데 아쉽다. 사장님이 어디선가 행복을 전하고 계시길 바라본다.
P.S.2. 인터넷에서 본 방어 관련 글. 방어 먹으면 안 된다는 글.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기 때문에 공격을 먹으라는 글. 쓰레기 같은 글. 하지만 샤워할 때 생각나는 글. 그래서 샤워하며 나도 모르게 키득하게 하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