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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ny May 30. 2023

푸짐하고 따뜻한 미국식 아침식사의 모든 것: 다이너

Metro Diner

업스테이트 뉴욕에서 요리 학교를 다니던 시절, 화려한 맨해튼 시티와는 차로 3시간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 푸킵시(Poughkeepsie)에 살았던 적이 있다. 학교만 덩그러니 있는 산골짜기라, 어딜 가려면 무조건 차로 이동해야 했다. 답답한 것을 못 참았던 나에게는 곤욕의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운전할 수 있는 친구가 원하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따라다니며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당시 늘 같이 있었던 친구는 함께 공부하는 룸메이트 언니었는데 삶의 경험이 많고 호기심도 많은 사람이라 새로운 곳을 함께 다닐 수 있었다. 언니와 다닌 곳들 중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다이너”(Diner)였다. 예전부터 브런치 가게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언니는 미국식 아침 식사를 탐구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래서 다이너는 언니에게 식사 그 이상의 사업 아이디어와 영감을 줄 수 있는 곳이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계속 즐길 수 있는 푸짐한 블랙커피와 우유

그런 언니와는 다른 경험과 관심이었겠지만, “다이너”는 당시 나에게도 특유의 여유로움과 투박하지만 푸짐한 지역 인심 같은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너무 이르지 않은 오전 시간에 가면 늘 백발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님 한 두 분은 꼭 식사를 하고 계셨고, 아기와 함께 온 젊은 부부부터 교복 입은 학생들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 식당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또 일행과 함께 오는 사람들도 많지만, 남들 신경 쓰지 않고 홀로 자신의 속도에 맞게 여유롭게 식사하시는 단골손님분들도 꽤 많았다.

너무 시끄럽지 않고, 또 너무 조용하지 않은 공간에 빼놓지 않고 꼭 주문하는 3불짜리 블랙커피를 시키면, 서버는 늘 컵의 바닥이 보이기가 무섭게 주전자를 들고 다니며 미소로 블랙커피를 리필해주었다. 비록 개인적으로 에스프레소 라테를 즐겨마시는 편이지만, 다이너에 오게 되면 블랙커피와 우유를 대충 비율에 맞게 섞어도, 왠지 그것이 원래 내가 원하는 맛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들로 구워서 알맞게 색이 난 팬케이크 위에 잘 익혀진 베이컨

다이너에는 햄버거, 프렌치 프라이스, 클럽 샌드위치, 베이컨과 팬케이크, 계란과 와플까지 미국 아침식사로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음식들이 다 가능하다. 심플한 레시피와 조리법이겠지만, 먹어보면 의외로 주방장의 조리 실력은 꽤나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다이너에는 늘 뜨거운 그리들 (Griddle)이 준비되어 있고 (그리들 위에 구운 햄버거 패티와 팬케이크는 프라이팬과 비교 불가라는 사실), 아무리 간단한 레시피와 조리 테크닉이라고 해도, 몇 십 년 일해 온 주방장의 손맛은 아무나 얻을 수 없는 경험의 때가 함께 묻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의외로 인스타그램용 브런치 가게들보다 훨씬 더 훌륭한 팬케이크를 맛볼 수 있을지도.

유럽식 아침식사와 구분되는 오믈렛은 부드럽기보다 색이 진한 미국식 부침개 스타일이지만, 내가 원하는 입맛대로 토핑을 선택할 수 있어 단골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한다.


“다이너”의 푸짐함과 투박함이 포킵시 같은 시골 동네에만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다이너는 여러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식당의 한 형태이자 미국의 문화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여러 매체의 주장에 따르면 다이너의 첫 시작은 1871년 워터 스콧 (Water Scott)이라는 로드 아일랜드 지역의 기업가가 당시 말이 끄는 사륜마차를 변형해 샌드위치, 커피, 파이, 달걀 요리를 판매했던 것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이런 방식이 인기를 끌고 많은 곳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여러 곳 운영 되다가, 시대에 맞춰 변형된 뒤 오늘날의 다이너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더 이상 사륜마차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그 흔적이 남아있듯 전통적인 다이너는 늘 건물 모서리가 뾰족하지 않고 둥글게 커브가 져있어서, 마치 이동식 컨테이너 같은 느낌이 든다.


그 후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요리학교 졸업과 동시에 시골 같은 포킵시를 떠나 화려한 맨해튼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두 발로 언제든지 원하던 곳을 갈 수 있는 대도시에 정착하면서 새로운 맛집만을 찾아다니느라, “다이너”도 자연스럽게 멀어져만 갔다.

맨해튼 100번가에 위치한 Metro Diner

그러다가 언젠가 늘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집 앞 “다이너”를 가볼 생각을 하게 된 날이 있었다. 백발노인분들의 세월과 비교할 수 없는 짧은 추억이긴 했지만, 트렌디한 맛집과 한 잔에 7불 하는 스페셜티 커피 보다 미국 할머니가 해줄 것 같은 팬케이크에 무한으로 따라주는 블랙커피가 갑자기 마시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추억에 이끌려 ‘메트로’(metro)라는 집 앞 아무 다이너에 들어갔다.(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은 뉴욕 타임스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꽤나 역사가 깊은 유명한 다이너였다.)

처음 갔지만, 매번 갔었던 것처럼 다이너의 클래식들이 진하게 묻어나있는 곳이었다. 둥근 모서리의 건물 입구를 들어가면 바 테이블 자리와, 부스(booth)로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나뉘어 있고, 다이너의 트레이드 마크인 붉은색 인테리어에, 역시나 나이 드신 노인분들이 혼자서 혹은 둘이서 식사 중이신 바로 그런 그림이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평화로운 소음의 레벨, 메뉴는 다 읽기도 어려워 많지만, 역시나 아침 식사 클래식은 미국식 오믈렛과 팬케이크이다. 특별히 평소에 자주 시키지 않은 초코칩도 추가하고, 바나나도 추가하고, 어울리지 않지만, 베이컨도 억지로 추가해서 완성한 평범한 아침식사에 가득가득 채워주는 블랙커피의 인심에 한번 더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최근 기사들을 보면, 역사가 깊은 몇몇 다이너들이 도시의 높아지는 부지값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다고 한다. 다이너는 일부 미국인들에게 아침 식사 그 이상의 장소로서 일면식 없었던 이웃을 알아가는 커뮤니티적 공간이자, 특별할 것 없지만 필수적인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참 서글픈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 수가 줄어들었다 한들 두터운 단골손님들이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는 다이너는 꽤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도시로 상경한 자식이 늘 따뜻한 엄마 밥이 먹고 싶은 때가 있듯, 다시 다이너로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미국 어느 지역을 놓더라고 구글 맵에 “Diner”라고 치면, 수천 개의 리뷰가 증명하는 오래된 다이너들이 한 두 개씩은 꼭 있을 것이다. 미국 로컬 같이 아침식사를 즐기고 싶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평범한 날 늦은 아침 다이너에 꼭 방문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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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 https://www.nytimes.com/2016/11/23/nyregion/diners-new-york-city.html

2. https://en.wikipedia.org/wiki/Diner

3. https://www.pastemagazine.com/food/the-history-of-the-american-d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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