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은 서쪽은 허드슨강, 동쪽은 이스트강, 북쪽은 할렘강이 흐르는 섬입니다. 사방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강과의 경계에는 많은 피어 (부두, pier)들이 여러 군데 있죠.
그중 맨해튼 남쪽 로어 맨해튼 지역에 있는 피어 17에는 특별히 미국 내 가장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는 풀턴(Fulton)이라는 수산 시장이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1822년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에는 관리가 잘 되지 않았던 때라 늘 이곳은 생선 비린내와 담배 연기, 나무 태우는 냄새로 자욱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수산 시장으로 자리를 지켜 왔음에도, 점점 높아지는 로우 맨해튼의 부지값을 버티지 못하고 브롱스 (Bronx) 지역으로 이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로어 맨해튼은 그 유명한 월 스트리트,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있는 곳이니, 당시에 개발 압박이 굉장히 컸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큰 건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원래는 1907년 지어진 이래로 미국 내 가장 큰 수산 도매 시장 역할을 했었지만, 풀턴 수선 시장이 브롱스로 옮겨지면서 땅과 함께 건물도 개발의 대상이 되었죠. 사실 이 건물은 1995년 화재가 난 적이 있어 소실된 부분이 많았는데, 하워드 휴(Howard Hughes)라는 회사에서 개발을 주도하면서 타지 않은 건물 구조물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 비슷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건물, 틴 빌딩 (Tin Building)로 재탄생시켰다고 합니다. 새로 지을 때에는 건물 위치도 32 피트(약 9.7 미터) 정도 강 쪽으로 더 가깝게 이동했다고 하네요.
여기에 틴 빌딩 프로젝트를 맡은 다른 사람으로 장조지 봉게리텐 (Jean Georges Vongerichten)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뉴욕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미쉘린 투 스타의 장조지 (Jean Georges)의 오너로서 이 외에도 여러 레스토랑 브랜드를 전 세계적으로 거느린 프랑스 셰프이자 사업가로 잘 알려져 있었죠. 사실, 새로 재탄생될 틴 빌딩이 현대식 푸드 홀이자 마켓 플레이스로 바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란히 등장한 ‘장조지’라는 이름은 틴 빌딩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한 이름이었습니다.
그 후 대대적인 오픈한 작년 (2022년) 10월 틴 빌딩은 '틴 빌딩 바이 장조지'(Tin Building By Jean-Georges)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장조지의 손을 거쳐서인지 틴 빌딩은 그의 프렌치적 감성에 걸맞은 레스토랑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식 비스트로인 ‘티브라세리’ (T.Brasserie), 이탈리안에 프렌치를 섞은 ‘더 프렌치맨스 도우’ (The Frenchman’s Dough), 인도식 도사와 프렌치식 크레페가 섞인 ‘크레페 앤 도사스’ (Crepes & Dosas)와 같은 레스토랑이 있죠. 여기에 비간 레스토랑 ‘시즈 앤 위즈’(Seeds & Weeds), 일본식 스시집 ‘시쿠’ (Shikku), 멕시칸 ‘타퀴토’ (Taquito)까지 종류별로 다양했습니다.
틴 빌딩에는 레스토랑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가게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는데요. 디저트 가게는 기본이고, 빵 가게, 치즈 가게, 해산물 가게, 식료품점까지 먹는 것과 관련한 모든 종류의 식당과 가게가 모여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화려한 조명 아래 유리 쇼케이스에 진열되어 있어서인지, 깔끔하고, 불쾌한 음식 섞인 냄새도 없어, 차분히 돌아다니며 구경하기에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이런 지나치게 럭셔리한 가게들과 분위기가 오히려 아쉽다는 일부 평론가들의 의견도 있었는데요. 유럽식 퍼블릭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식료품 종류들을 틴 빌딩에서 대부분 찾아볼 수 있어 이곳은 확실히 유럽 마켓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기는 합니다만. 쇼케이스에 정갈하게 진열된 치즈와 해산물, 고기 덕분에(?) 시끌벅적하고 여러 냄새들로 뒤엉킨 시장보다는 역시 백화점 푸드 코트에 온 듯한 생각이 더 지배적이게 드는 것 같습니다. 또 가게 종류는 많아도, 종류 당 가게가 하나씩 뿐이라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과 신선도 등을 ‘비교하고 고르는’ 재미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가족과 먹을 일상 장보기용 가게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틴 빌딩이 ‘퍼블릭 시장’이 아니라서 갖는 특별한 장정도 있습니다.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다양한 식료품 브랜드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와, 특별한 선물이나,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장보기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지요. 이탈리안 마켓 플레이스인 잇탈리 (Eataly)도 틴 빌딩과 유사한 점이 많지만, 잇탈리는 이탈리아 문화와 브랜드를 소개하는데 집중하는 반면, 이곳 식료품 코너에는 프랑스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먹거리들이 있다는 차이가 있어서 더 다양함의 범위가 큰 느낌이 듭니다.
새로운 틴 빌딩에 대한 평가들이 나뉘기는 하지만, 역사를 가지고 있는 건물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 보다도 평화로운 부두가 근처에 있다는 점만으로도 방문해볼 만합니다.
로어 맨해튼은 자유의 여신상, 거버넌스 아일랜드로 가는 페리 선착장과 가까우니, 뉴욕에 가실 기회가 되신다면 틴 빌딩을 한 번 방문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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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New York Times, I Ate My Way Through the Tin Building’s Restaurants. Here’s Where to Go, Pete Wells, 11/22/2022
New York Times, Jean-Georges Vongerichten to Put His Stamp on the Tin Building, Florence Fabricant, 10/05/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