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의 이스트 빌리지를 지나가다 구식 네온사인이 하나가 눈길을 끌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은 아마도 비니에로스 ‘Veniero’s’의 이름까진 아니었더라도, ‘Since 1894’라는 바로 옆 작은 간판 때문이었는지 모르죠. 130년 된 이탈리안 빵집이라니. 오랜 역사 때문에서 인지 구식 네온사인은 어느세 살아있는 박물관 간판 같은 느낌이 들게 합니다.
‘비니에로스’는 그 이름처럼 1894년 오픈 이래로 이탈리안 출신 비니에로 가의 가족이 3세대째 운영해 오고 있는 빵집입니다. 두 번의 바통 터치 후 지금은 창업자인 안토니오 비니에로의 조카 손자인 로버트 비니에로씨가 주인이라고 합니다.
이곳 특징 중 하나는 페이스트리 류, 쿠키 류, 케이크 류, 젤라또 류 등 가짓수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온 손님들은 주문대 앞을 서성이는 반면, 꽤 다양한 단골들은 각자의 스타일 대로 고민하지 않고 원하는 메뉴를 자신 있게 주문하곤 하는데. 모든 이들의 취향이 이중 하나쯤은 있어서 그런지, 어떤 사람은 치즈케이크, 어떤 사람은 카놀리 (cannoli), 또 어떤 사람은 생일 케이크를 주문하러 늘 붐비게 되는가 봅니다.
뉴욕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이탈리아 이주민들은 1880년 후반에서 1910년에 사이 이탈리아의 경제적 어려움을 피해 들어와 할렘을 비롯한 브롱스, 로어 맨해튼 쪽으로 많이 정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니에로스의 창업자인 안토니 비니에로도 그 인파들 중 하나로 15살 때부터 캔디 공장에서 일하고 배우다가, 1894년이 되서야 비니에로스를 열기 되었다고 하네요. 메뉴도 손님들의 권유에 의해 ‘에스프레소와 함께 마실 비스코티(biscotti — 이탈리안 아몬드 쿠키)’식으로 한 두 가지씩 늘어면서 오늘같이 다양해졌다고 하죠. 당시는 전기도 없었고, 가게 뒷마당에서 석탄을 땐 오븐으로 쿠키를 구워내고, 말이 끄는 수레로 얼음을 들여와 사용했었다면 상상이 가실까요?
지금은 그 뒷마당이 카페 공간으로, 석탄 때던 오븐은 멋진 현대식 오븐으로 대체되었지만, 비니에로스의 모든 쿠키, 타르트, 케이크는 여전히 16명의 제빵사 손에 의해 전통 방식으로 완성되고 있다고 합니다.
비니에로스의 디저트 종류가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어려워 직원의 추천 메뉴 네 가지를 시도해 보았는데요.
1. 티라미수 (tiramisu): 럼인지 코냑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알코올과 마스카포네 크림치즈의 부드러움, 그리고 쌉싸름한 코코아 파우더, 그리고 적당히 달달한 맛의 밸런스가 꽤나 훌륭했습니다.
2. 스트로베리 쇼트 케이크 (Strawberry Shortcake): 쇼트 케이크는 일반적으로 촉촉한 스펀지케이크에 생크림과 딸기를 얹은 작은 기본 케이크인데요. 이곳의 쇼트 케이크 역시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달지 않은 디저트를 좋아하는 어른들의 입맛에는 좋을 것 같군요.
3. 치즈케이크 (Cheese cake): 개인적으로 묵직한 느낌의 크림치즈로 만든 전통 방식의 치즈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비니에로스는 이탈리아식으로 리코타 치즈를 사용해서인지 가볍고 포슬포슬해서 부담가지 않아 후식으로 좋습니다.
4. 카놀리 (Cannoli): 이탈리아의 대표 디저트인 카놀리는 튜브 모양의 튀긴 페이스트리 과자에 크림 필링을 채워 먹는 디저트입니다. 비니에로스의 대표 디저트 중 카놀리는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데요. 단단한 리코타 크림치즈 필링과 바삭한 페이스트리 과자가 자꾸 생각나는 맛입니다.
요즘에는 미국 전역 (심지어 하와이와 알래스카까지)에서 배송이 가능하다고 하니, 비니에로스의 인기가 엄청난가 봅니다. 사실 맛 자체만 보면 요즘 더 훌륭한 가게들이 많겠지만, 오래 자리를 지켜온 가게 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의 기억, 역사와 스토리까지 얹었을 때 그제야 비니에러스의 맛은 완성되는게 아닐까요?
최근 New York Times 2022년 12월 27일 자에 비니에로스에 대한 소개 기사가 실렸습니다. 사실 그 기사의 내용 보다 이곳을 더 빛나게 하는 것은 수많은 댓글로 표현된 고객들 저마다의 비니에로스와의 추억이 아닐까 합니다.
뉴욕에 놀러 오신다면 비니에로스의 카놀리와 에스프레소 한 잔 어떠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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