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곤 레스토랑 (Margon Restaurant)
어느 날 미얀마 출신의 친구와 타임스퀘어 근처에서 급히 끼니를 때워야 할 일이 생겼다. 그 친구는 미국과 서구 문화에 자연스럽게 섞이기보다 소수문화와 문화적 다양성에 특별히 더 관심이 참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이 친구와의 식사 자리는 늘 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음식들을 자연스럽게 먹을 때가 많다.
친구의 취향을 고려해 우리의 레이더 망에 오른 것은 쿠바 음식을 파는 ‘말곤’(margon)이라는 레스토랑이었다. 구글에 비친 식당 외관 사진은 마치 한국의 오래된 기사 식당 같은 분위기를 풍겼는데, 관광객이 가장 많은 곳이라 할 수 있는 타임스퀘어 근처에 있어 더 아이러니 하게 느껴진다.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다면 들어가지 않을 곳 같지만, 현지인들의 1,000개 넘는 후기가 더 호기심을 자아냈다.
외관을 마주하고 다시 한번 주저했지만, 역시 친구와 함께해서 더 대담해졌고, 덕분에 주문대 앞까지 오는데 성공! 관광객은 역시나 없었고, 토요일에 한산한 걸 보니 확실히 뉴욕 노동자들의 데일리 카페테리아임에 분명했다. 이런 생각을 체 하기 무섭게 좁고 긴 통로 벽에는 샌드위치 메뉴판과 요일마다 다른 음식을 팔고 있는 데일리 스페셜 쿠반 메뉴판이 따로 걸려있었다. 아무래도 후자의 경우는 매일 식사를 하러 오는 고객을 고려한거겠지. 많은 후기에서는 데일리 스페셜로 판매하는 콩, 스튜와 밥에 튀긴 플랜테인 (요리용 바나나)을 사이드로 꼭 먹어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에게 이곳은 매일 오는 곳이 아니기에, 고민하지 않고 쿠반 샌드위치(쿠바노: Cubano)를 주문했다.
사실 쿠바노 샌드위치의 기원은, 1800년 후반에서 1900년도 사이에 많은 쿠반 노동자들이 가까운 미국 플로리다 주로 자주 왕래를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공식적인 기록 없는 자연스러운 문화 교류였기에 정확한 기원을 알기는 어렵지만, 어떤 이들은 원래 쿠바에서 만들어져, 플로리다에 맞게 살짝 변형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애초부터 문화적 왕래 이후 플로리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란에도 일관적인 것은 바로 레시피인데, 쿠바노 샌드위치는 기본적으로 기다랗고 평평한 하얀 빵에 햄, 로스티드 포크, 스위스 치즈, 살라미(옵션)의 속재료 넣고 무쇠 그릴에 살짝 눌러 구운 뒤 피클과 머스터드소스로 마무리하는 것으로 동일하다. 이곳 말곤의 쿠바노 역시 똑같은 구성으로 조리 방식도 똑같았지만, 포일로 감싼 벽돌을 그릴 위에 얹어서 눌러주는 것은 가게의 투박한 분위기와 유난히 더 잘 어울렸다.
그와 더불어 눈길을 끈 것은 카페 콘 레체(Café con leche)인데, 쉽게 말해 우유가 들어간 커피라고 할 수 있다. 비율은 에스프레소에 스팀 밀크를 반반 혹은 우유를 더 적게 섞은 것으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모두 즐겨 마시는 커피이긴 하지만, 쿠바의 카페 콘 레체는 특이하게도 설탕을 넣어서 달달하다는 특징이 있다. (문화적 경험을 위해 주문한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카페 콘 레체를 담아주는 종이컵이 탐났기 때문이라는 편이 더 설득력 있을 지도. 뉴욕의 대표 투고 (to-go) 일회용 종이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식 블루 컵에 대한 뒷 스토리도 꽤 흥미진진하답니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니 오리지널 컵이라면 “We Are Happy To Serve You”라고 쓰여 있어야 하더군요. 우리가 받은 것은 “Thank You Have a Nice Day.”)
카페 콘 레체를 만드는 장면을 관찰하는 것도 꽤 즐거웠는데, 빨간 유니폼을 입은 아주머니께서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골고루 잘 섞기 위해 핏쳐와 종이컵에 왔다 갔다 번갈아 옮기는 장면은 흡사 현란한 칵테일 쇼를 관람하는 것 같았다. 음식을 먹으면 바로 일어나야 할 것 같은 투박한 좌석에 앉아, 대각선으로 잘라진 샌드위치 한 입,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우리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은 아니지만, 분명히 특이하고 새롭다. 역시 문화라는 요소를 덧입은 음식은 왠지 더 맛있고 특별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내가 만약 타임스퀘어 근처에 일을 했더라면 나의 루틴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피클과 머스터드가 들어간 신맛 강한 쿠반 샌드위치를 선호하지 않지만, 이곳이라면 다른 메뉴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여느 아저씨들처럼 데일리 스페셜에 튀긴 플렌테인을 도전해보리라.
연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친구를 바라보며 나의 마음도 함께 기쁨으로 넘쳤다. 친구의 취향에 맞는 제안을 한 나 자신에게 칭찬했다기보다, 오히려 나의 의외의 취향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나는 시간이 지나도 새로운 것을 먹어 경험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구나.
다음은 어떤 레스토랑에 가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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